정말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일들을 '자유민주주의'라는 깃발을 높이 든 정부가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일까? 자유민주주의라는 게 이처럼 강퍅하고 메마른 정치이념이었던가? 우리 헌법에 명시되어 있고 자유민주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단호히 수호해내겠다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게 지금 같은 체제라는 말인가? 몇 번이고 눈을 비비고 고개를 흔들게 된다.
도대체 이 지구 상의 어느 자유민주주의 국가 정부가 박근혜 정부처럼 정치적 상대자를 절멸해야 할 '악'으로 낙인찍고 배제하려 하나? 사상의 자유도 양심의 자유도 집회의 자유도 쉽게 무시되는 자유민주주의, 노동조합과 같은 결사의 자유도 허락받아야만 행사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파업권과 같은 시민들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기본권마저 밥 먹듯 훼손하는 자유민주주의,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방어적 민주주의'(또는 '전투적 민주주의')라는 게 있기는 하다. 이것은 나치 패망 후 새롭게 건설된 독일이 과거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주의가 히틀러 같은 독재자의 출현을 막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하는 가운데, 민주적 헌정 체제의 일정한 절대적 가치를 강조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적극적 방어의 기제들을 도입하면서 나온 개념이다. 위헌정당 해산청구 조항 같은 우리 헌법의 장치도 사실은 이런 방어적 민주주의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고, 실제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이 개념을 들이대며 통합진보당 해산청구를 정당화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임 검찰총장을 임명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엄격한 수호를 주문했던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에서이리라.
그러나 이는 기막힌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란 명백하고 현존하는 물리적 위협이 없는 데도 어떤 사람이나 조직을 그 체제의 적이라며 배제하고 벌하는 따위를 금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이석기 의원이나 그 일파같이 쉽게 동의하기 힘든 정치적 세계관을 가졌더라도 말이다. 이렇게 보면 다름 아닌 그런 일을 일삼고 선동하는 현 정부와 여당 그리고 조선일보 같은 주류 보수언론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가장 앞장서 위협하는 세력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 이런 정치적 도착이 또 있을까 싶다.
ⓒ프레시안(최형락) |
우리는 여기서 박근혜 대통령이 단지 생물학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독재자 박정희의 DNA를 물려받았음을 새삼 확인할 뿐이다.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의 헌법 이래 우리 헌법에 흔히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등치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은 유신 헌법이 처음이었고,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인 김기춘 같은 유신헌법의 정초자(定礎者)들은 정확히 바로 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수호를 명분으로 유신 독재체제를 정당화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바로 이 유신의 정치적 수사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제2의 유신 시대'라 해도 별다른 과장이 아니다.
유신 체제가 방어적 민주주의 개념을 도용한 것은 너무도 지독한 블랙코미디였다. 독일에서는 애초 민주적 절차에 의한 독재 체제의 등장을 막고 시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두었던 그 개념을 1인 종신 독재 지배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독일 헌법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die 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 free and democratic basic order)"라 한 것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엄밀하게 보자면) 엉터리로 번역해놓고는 엉뚱하게도 그것을 수호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이고 또 다름 아닌 유신 같은 체제를 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했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그런데도 민주적으로 선출되었다는 현 정부가 이런 일을 반복하고 있으니 차라리 딱하다고 해야 할까.
물론 1987년 6월 항쟁 이후 만들어진 현행 헌법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유신헌법의 표현을 그대로 담고 있기는 하다. 현행 헌법이 지닌 안타까운 한계라고 할만하다. 그러나 유신 독재 체제에 맞섰던 많은 재야운동과 학생운동이 악랄한 유신의 파쇼 체제에 맞서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을 외쳤던 것을 생각하면, 현행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은 유신 헌법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함도 명백하다.
여기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그야말로 제대로 된 의미에서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라고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은 유신 같은 전체주의 체제가 아님은 물론이고 시장을 절대화하고 재산권을 신성화하면서 시민들의 평등한 정치적 자유와 연대의 가치는 무시하는 좁은 의미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질서일 수도 없다. 제대로 이해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곧 '체제로서의 자유민주주의'에서는 무엇보다도 시민들이 누려야 할 보편적인 인권과 기본권의 보호가 그 어떤 정치적 목적이나 과정보다도 우선한다. 민주적 자기-지배의 원칙과 사회적 참여의 권리, 곧 복지의 권리도 최대한 보호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 집권세력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념적으로 경직된 특정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만 하는 우익 근본주의적 정치행태는 기껏해야 전형적인 '다수의 전횡'이고, 그래서 민주주의의 적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최근 벌어졌던 북한의 장성택 숙청 사건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음을 강조했단다. 맞다. 우리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는 장성택을 숙청하는 방식의 반인권적 사법 절차를 결코 용납하지 않고, 그런 점에서 우리의 체제는 북한의 체제보다 명백하게 우월하다. 그러나 지금 박근혜 정부는 아무런 맥락도 개념도 없이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칼을 휘두르며 이석기 의원을 남한의 장성택으로 만들려 하고, 공공성을 위해 헌신하려는 철도 노조원들을 말 안 들으니 굶어 죽어야 한다며 거리로 내몰고 있다. 서울을 평양으로 만들려는 모양이다.
방어적, 전투적 민주주의 개념의 참된 핵심 중의 하나는 바로 이렇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시도에 대한 시민의 저항, 곧 시민 불복종에 대한 헌법적 정당성의 인정이다. 우리의 우월한 체제, 바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우리의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결국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야 할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모두들 안녕하지 못한 이 세밑, 날씨마저 너무 춥다. 응답하라, 자유민주주의여!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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