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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의 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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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의 지연

[한윤수의 '오랑캐꽃']<221>

14개월을 끈 사건이 있다.
아마도 발안 센터 역사상 최장기록일 것 같다.
쉬운 사건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첫째 감독관이 우유부단했고
둘째 센터 직원이 계속 바뀌어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졌고
셋째 사업주가 끈질기게 저항했기 때문이다.

Ⅰ 감독관의 우유부단


인도네시아 사람 수파조는 전자회사에서 1년 9개월 일하는 도중에 45일간 휴가를 받아 고향에 다녀왔다.
그러나 막상 퇴직하자 회사에서는 퇴직금을 주지 않았다. 중간에 휴가를 가서 계속 근무한 기간이 1년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이런 경우는 퇴직금을 주는 게 당연하다. 왜냐? 휴가는 근로기간이 단절되는 게 아니라 계속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파조가 그 회사에서 1년 9개월 근무한 것으로 고용지원센터의 기록에도 적시(摘示)되어 있으므로 퇴직금을 주는 게 맞다.


하지만 목소리 큰 사장님이
"퇴직금 줄 게 없어요. 일단 퇴사했다가 다시 입사했다니까."
하고 억지를 부리자 감독관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기 시작했다.
"글쎄요. 과천(노동부 본부)에 질의를 해봐야겠는데요."
답답하지만 감독관이 상급기관에 질의하겠다고 나오는 데야 어쩌랴. 별 수 없이 기다리기로 했다.


그는 본부에 질의했다고 떡먹듯이 말했다. 하지만 회신을 받지 못했다는 식으로 한 달 내내 변명했다.
"아무래도 담당관이 휴가를 갔지 싶어요."
50일이 지나갈 무렵 그는 다시 질의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요번에는 반드시 회신을 받아서 꼭 결론을 내릴 겁니다."
결국 4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야 감독관이 말했다.
"(본부에서) 나보고 그냥 결정하라는데요."
"그러게요! 어떻게 하실래요?"
"확정해야죠. 돈 주라고."
감독관은 수파조에게 퇴직금을 주라고 사업주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사업주는 주지 않았다.


▲ ⓒ한윤수

Ⅱ 담당자의 잦은 교체


나는 우리 센터 직원인 K주임에게 체불금품확인원을 발급받아 민사소송을 진행하라고 시켰다.
하지만 갑자기 K주임이 사직했다. 로스쿨에 합격해서 학교에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사건은 H계장이 이어 맡았다. 그러나 H계장이 교통사고를 당하여 입원하는 바람에 다시 N간사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N간사는 민사소송 절차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법률구조공단에 소송의뢰하는 것이 늦었다. 결국 민사소송에 대해 잘 아는 K과장에게 사건이 넘어갔다. 그러느라고 또 3개월이 흘러갔다.

Ⅲ 사업주의 끈질김


소송 도중에 사업주가 계속 이의를 제기하여 재판을 질질 끌었다.
수파조는 답답해서 죽으려고 했다.
왜 아니겠는가!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로 시작되는 햄릿의 유명한 독백에서 <재판의 지연>은 죽고 싶은 5 가지 이유 중 하나다!

"폭군의 횡포와 세도가의 멸시, 버림받은 사랑의 고통스러움, 재판의 지연, 관리들의 오만, 유덕한 사람에게 가하는 저 소인배들의 불손,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참고 지낼 것인가?"

하지만 굴러가는 달걀도 서는 모가 있다고,
결국 끝이 왔다.
형사처벌 받기 직전에 사업주가 찾아온 것이다. 퇴직금 전액을 지급할 테니 처벌 받지 않게 해달라고. 또한 가압류한 아파트도 풀어달라고.
무려 1년 2개월 14일만이었다.

그날 수파조의 통장에는 202만원이 *입금되었다.

*입금 : 입금은 되었지만 과연 수파조가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옛날 핸드폰 번호로는 연락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입금된지 아느냐고? 사업주가 수파조의 통장으로 송금한 은행영수증을 갖고 왔으니까. 나는 그 영수증을 보고 소송을 취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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