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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줄기'인가, '핵폭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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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줄기'인가, '핵폭탄'인가"

[메이데이 총파업, 도시를 멈추고 거리로] '베짱이' 총파업

총파업은 공장을 정지시키는 일반적인 파업과 다르다. 총파업은 더 나은 조건을 요구하기 위한 것도, 교섭을 위해 위협하는 전략도 아니다. 오히려 총파업은 현 체제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고, 현 사회 체제 자체를 중단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 체제에서 도저히 살 수 없다고 판단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2012년 5월 1일 도시를 멈추고 거리로 나가자!" 서울광장을 점령한 '서울점령자들'이 제안하고 30여개의 워킹그룹이 달라붙어 메이데이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날 비정규직, 백수, 실업자, 감정노동자, 예술가, 디자이너, 시인, 작가 등 다양한 목소리와 요구를 가진 이들이 거리로 나올 것이다. 'No Work, No School, No Housework, No Shopping'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5월 1일 하루를 도시를 멈추는 날로 만들기 위함이다. 4일 간 '메이데이 총파업' 연재를 통해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려고 한다. (☞ 메이데이 총파업 블로그)

천원짜리 숙련노동자

집 근처 텃밭에서 고구마를 키우던 시절이 있었다. 고구마가 굵어질 때 쯤이면 온 가족이 호미를 들고 나가 고구마를 캐오곤 했는데, 가을볕이 그리 시원하지 않은 동네에 살았기에 노을 질 무렵이면 얇은 셔츠 속이 땀으로 덥게 젖곤 했다. 추수의 마지막 공정은 고구마를 다 캔 밭에 무수히 깔린 고구마 줄기를 걷는 일이었다. 수레에 고구마 줄기를 몇 번씩 실어 집으로 나르고 나면, 다음날은 아침부터 고구마 줄기를 까야 한다.

고구마 줄기는 살짝 데쳐서 마늘 소금과 함께 볶으면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맛이 난다. 아주 연한 고사리 같달까. 그래서 엄청나게 좋아하는 식재료지만, 껍질을 까는 일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 고구마 줄기라는 놈이 꼭 안익은 고구마 마냥 껍질이 찰싹 붙어있기도 하거니와, 함부로 깠다간 그 연한 몸뚱이에 상처가 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손이 느리면 한입 크기로 자른 녀석 하나를 까기에도 1분이 넘게 걸린다. 그런데 이 까다로운 놈들을 쉽게 다루는 숙련노동자들이 있으니, 길가에 새벽부터 좌판을 깔고 앉은 할머니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 할머니들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보도블럭에 주저앉아 껍질 벗긴 고구마 줄기를 500원~1000원 정도에 한 봉다리씩 팔곤 하는데, 그 정도 양이면 내게는 1시간이 족히 넘게 걸리는 양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게 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깎아달라고나 안하면 그나마 다행. 제값 받고 파는게 한 시간에 한 봉지 정도면 다행이다. 내 1시간 만큼의 노동이 천원 정도에 팔리는 셈이다. 그리고 고구마 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 말고도 많다. 만약에 화폐가 생산성의 대가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면, 맛있는 식재료를 가공한 숙련노동자에게 쥐어진 버스비 보다 적은 돈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체력이 뛰어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공부를 많이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CEO,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백수, 영세상인, 일하기 싫은 사람 등등. 그들은 당연히 서로 다른 강도의 노동을 하고, 다른 정도의 보수를 받는다. 우리는 이들의 격차에 대해 그들의 생산가치 격차라고 믿기 쉽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떨까? 그러니까 사람을 기본으로 놓고, 그 사람들에게 주어진 사회가 그들의 생산성에 격차를 만든다고 말이다. 만약에 모든 인간이 각각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각자가 놓인 차별적 위치는 빼앗김에 의해 생겨났을 것이다. 물론 그 빼앗김이라는게 강도나 소매치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특정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더 유리한 룰에 의해 "공정하게" 발생한 것이지만. 껍질을 깐 고구마 줄기의 가격이 천원이 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나물과 핵폭탄

우리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그만큼 더 세상에 기여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고구마 줄기와 비교하기는 뭐하지만, 핵미사일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먹지도 못하고 가지고 놀 수도 없는(그리고 그래서는 안되는) 이 물건의 본래 가치는 맛있는 고구마 줄기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일까? 나는 그 물건이 어떤 생산적인 효과를 냈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가 없지만(물론 전쟁 억지력이 있다거나 탄두를 달여마시면 정력에 좋다던가 하는, 내가 모르는 효용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그것이 사람들을 많이 죽였으며, 그것이 고구마 줄기보다 훨씬 비싸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는 것도. 나물과 핵폭탄 중에 소중한 것은 분명 나물이다. 하지만 돈을 받을 수 있는 일은 명확하게 핵폭탄 쪽이다. 그리고 산업이 발전하면 할수록 나물의 맛은 점점 떨어지고 핵폭탄의 양은 점점 늘어난다.
▲ ⓒ수유너머
일하지 않는 자에게 기본소득을

사실 우리는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알고있다.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고, 사람들이 뭔가를 만드는 능력은 굉장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자동차 한 대를 다섯명이 만들던 시대가 가고, 한 사람이 다섯 대를 만드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동차 한 대를 타고 다니던 사람이 다섯 대를 동시에 타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문제라는 이야기다. 일을 해야만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도덕이나 상식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룰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도덕적이라면,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금융업에 종사하는 이에게 왜 돈을 주겠는가? 무기를 만들거나 환경을 파괴하는 일에 왜 돈을 주겠는가? 오히려 아무것도 파괴하지 않는 백수들이야 말로 돈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사람들에게 일하라고 소리치는 것보다 일 좀 그만하라고 말려야 한다. 겨울을 버틸 식량을 모으겠답시고 강바닥을 파헤쳐대는 멍청한 개미새끼의 창고에서 식량들을 빼앗아다 여름내내 띵가거리는 베짱이들에게 나누어줘야 한다. "아무 파괴도 하지 않은 대가"로 말이다. 백수와 예술가의 시간, 잔업을 거부한 노동자의 여가시간에 대가를 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기본소득을 말이다. 그리하여 더 많은 베짱이를 만들어내야 한다.

사회의 룰이라는 건 생각보다 그리 상식적이지 않다. 유한한 자원을 파괴하고 공존을 해치는 대가로 더 많은 임금을 주고, 그것도 모자라 인구를 더 늘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사회다. 이 룰을 바꾸기 위해선, 제한된 숫자의 승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승자가 되기 위한 조건들을 바꾸자고 우겨보는 거다.

오는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베짱이가 되겠다고 선언한 이들이 있다. '총파업'이라는 구호 아래 모인 백수와 예술가, 게으름뱅이 노동자들이 이 날을 일하지 않는 날, 수업 없는 날, 집안일 없는 날, 소비하지 않는 날로 만들고 의미 없이 거리를 배회하겠다고 한다. 나 역시 그 자리에 동참할 계획이다. 인터넷을 끊고, 아무 것도 구입하지 않고,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말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이들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보낼 것이다. "철없는 놈들"에서부터 "총파업이 장난인줄 아냐", "노동으로부터 탈주해선 안된다"까지, 예상할 수 있는 뻔한 시선들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멋있는 훈계와 비난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하려는 사람들을 뜯어말리고 다닐 것이다. 핵폭탄보다 고구마 줄기가 더 맛있다는 걸 우린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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