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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들의 신발로 1500일을 걸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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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들의 신발로 1500일을 걸어보라"

[세상이 'J'에게·①] "재능교육 선생님들을 생각한다"

재능교육 학습지노동자들이 스스로의 노동권을 찾고자 거리로 나선 지 2012년 1월 28일로 꼬박 1500일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서울 한 복판, 시청광장에서 보이되 보이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 오랜 한뎃잠에 몸도 마음도 축이 나고, 바닥의 한기도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언제까지 이들이 풍천노숙을 해야할까. 재능교육 노동자들을 위해 많은 이들이 그들을 지지하고 나섰다. <프레시안은> B급 좌파가, 작가가, 노동운동가가, 청년이, 혹은 당 대표가 그들에게 전하는 목소리를 릴레이로 싣는다.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재능out 국민운동본부에서 공동으로 기획했다. 그들이, 혹은 세상이 재능노동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편집자>

1500이라는 숫자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소리 내어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쁘고, 세다가 잊어버릴 만큼 많은 숫자이다. 입에 올리기는 쉬워도 어떤 것이든 천을 넘어서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사람의 뇌에는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100번쯤 반복되면 고랑이 파인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이뤄질 것을 간절히 바랄 때 백일을 작정한다. 집 떠난 자식의 무고함을 하늘에 비는 어미의 간절한 기도도 백일을 올린다.

그런데 백일을 열 곱이나 지나 1500날이 되도록 거리에 나앉은 이들이 있다. 2007년 12월 21일. 부당한 수수료 제도에 반발하여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한 재능교육 학습지 선생님들이 바로 그들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리에서 1500일을 보낸 그들의 절박함도 가슴이 먹먹하지만, 그 뜻이 하늘에 이른다는 백일을 열 번이나 넘기도록 추운 거리에서 나앉은 이들의 이야기를 귀에 담지 않는 모진 마음에도 몸서리가 처진다.

ⓒ정택용

재능교육은 인권을 가르치는가

재능교육이 어떤 곳인가. 아이들에게 학습지를 가르치는 곳이 아닌가. 통조림을 만드는 곳도 아니고, 자동차를 제작하는 곳도 아니다.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다. 그 학습지라는 것에는 노동자도 나오고, 인권이라는 것도 나올 것이다. 부당한 계약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선생님들을 1500일째 거리에 나앉아 있게 한 사람이 과연 '노동자'를 어떻게 규정하고, '인권'을 어떻게 가르칠지 궁금하다.

인권이란 무엇인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녀야 할 권리이다. 서로의 권리가 맞부딪칠 때는 어찌해야 하는가. 약한 사람의 권리부터 지켜 주는 것이 인권이다. 조난당한 배에서 누구를 먼저 구명보트에 태우는가. 돈 많은 사장인가, 힘이 센 사람인가. 재능교육은 우선 이 물음에 대답해야 할 것이다.

힘 있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을 쪼개어 부린다. 노동자들이 똘똘 뭉쳐 대들지 못하도록 '과장'이니 '반장'이니 '조장'에 '팀장'이란 걸로 나누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사장'이니 'BG장'이라는 해괴한 직위도 만들어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쪼개어 노동자를 이간시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하청직원'이니 '용역파견'이란 걸 만들어 일은 부리되 책임은 피하려는 얕은 수를 쓰고 있다.

엄연히 본사의 지시를 받고 거기서 임금을 받는 화물 트럭 운전자나 보험설계사, 학습지 방문교사, 외근직 A/S근무요원들에게도 '특수고용직'이라는 얼개를 뒤 씌워 노동자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다. 정시에 출근을 해야 하고, 날마다 직무일지를 써야 하고 지점장에게 전날 영업 결과를 보고해야 하며, 실적이 좋지 않으면 문책을 받아야 하는 개인사업자도 있단 말인가.

이 모두 노동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권리를 피해 가기 위해 만들어낸 술책에 불과하다. 노동자들을 쪼개어 서로 다투게 하고, 이상한 직책을 만들어 그들의 정체를 혼란시키는 일들은 조삼모사의 야바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욱 야비한 술책은 노동자들을 억누르는 일에도 제 손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힘없는 노동자들을 억누르기 위해, 돈으로 매수한 노동자들을 제 편으로 삼아 이들을 앞에 세워 싸움을 시킨다. 달동네의 철거민들을 쫓아내거나, 파업 중인 노동자들을 억누르는 일에도 힘이 있는 자들은 결코 앞에 나서지 않는다.

철거민의 남편이거나, 노동자의 자식일지도 모를 용역을 고용하여 싸우게 하며, 돈과 직위로 매수한 구사대를 앞세워 동료노동자들과 다투게 한다. 이것은 죄악이다. 돈으로 사람을 사서 싸우게 하는 짓은 더러운 짓이다.

아홉 가진 이가 하나 가진 이의 주머니를 털어서 열을 채우려는 비정한 자본의 욕망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약육강식의 정글로 만들어간다.

적어도 어린 아이들에게 학습지를 가르치는 재능교육은 이런 더러운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재능을 교육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월급 500원을 받은 선생님은 거리로 내몰고 기업은 100대 부자가 되는 재능을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는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1500일에 귀 기울이는 재능을 지니라

이제 1500일을 거리에서 절규하는 선생님들의 입을 막기 위해 용역이나 그들의 동료들을 내세우지 말고, 재능교육은 책임 있는 사람이 나서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인권은 약한 이의 권리부터 존중하는 것이요, 대화는 상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 아이들 곁을 떠나 1500일을 거리에서 보낸 선생님들에게 무엇을 더 양보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가진 것이 무엇이 있어 더 내놓으라고 압류하고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단 말인가. 단단한 돌마저 거리에 던져지면 바람에 부서지고 추위에 얼어붙을 1500일이라는 시간에 대해 무심할 수 있는 '비정한' 재능이 걱정스럽다.

"비판을 하려거든 상대방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 본 후에 하라."는 인디언 속담을 인용하여 굴종과 양보를 강제하시는 분들에게 말한다. 그 인디언 속담을 거리에 나선 동료들에게 쓰기보다 자신의 양심에게 들려주기를 권한다. 거리에서 1500일을 겪어야 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내놓으라고 하기 전에, 그들의 신발을 신고 1500일을 걸어보라. 아니, 단 하루라도 얼어붙은 거리에 그들과 앉아 이야기를 나눠 보기 바란다.

속담도 바다 건너 아메리카 것을 좋아하시니, 아메리카 이야기 한 도막을 전한다. 노예 해방의 분위기가 무르익던 아메리카에서 어느 농장의 흑인 노예가 주인에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자유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주인이 동전을 던져 결정하자고 했다. 주인이 말하기를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내가 이기고, 뒷면이 나와도 내가 이기고, 동전이 똑바로 서면 네가 이긴 것이다.'

자, 이런 계약을 따를 수 있겠는가. 자꾸 계약대로 따르라고 말하지 말고, 그 계약이 바로 되었는지를 따져보기 바란다. 계약대로 하자는 말에 앞서 1500일을 거리에서 절규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바로 '재능 있는 교육'이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 이에 대해 재능교육 측은 법원 및 검찰, 관련 행정기관이 모두 학습지 교사는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판단하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 재산압류와 관련해 재능교육 측은 학습지 교사들이 위법행위를 계속함에 따라 법원을 통해 가처분위반사항에 대한 간접강제금을 부과하고 압류조치를 단행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2011년 9월, 강종숙 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취하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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