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박원순 시장을 두고, 시민과 소통에 주력한다며 환영하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시장 임무 첫날, 무상급식을 실행하고, 번개로 주말에 누리꾼들과 산행을 하기도 했다. 또한 16일에는 역대 최초로 인터넷을 통해 취임식을 진행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이런 행보를 두고 "과거 시장의 또 다른 전시행정 업그레이드 버전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며 "박 시장이 정말 지향해야 할 시정 지표를 향해 세부과정을 꾸려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16일 서울YMCA 주최로 열린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 무엇을 해야 하나' 토론회에서는 서울시정의 방향과 과제를 중심으로 박원순 시장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조명래 교수를 비롯해 김수현 세종대 교수와 서왕진 서울시 정책특보가 자리했다. 김수현 교수는 서울시 인수위원회 위원장 격인 희망서울정책자문위원장을 맡았고, 서왕진 정책특보는 희망서울정책자문위원회의 총괄간사를 맡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주어진 '시대정신', 즉 지향해야 할 시정 지표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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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시장마다 시대적 과제가 있었다"
"역대 서울시장을 보면 시대적 과제가 있었다. 그 시대적 과제를 선도적으로 이행하고 집행한 시장은 성공한 시장으로 평가받았다. 반면 시대적 과제를 잘못 이해하거나 시행하는 데 집행력이 떨어지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김수현 교수는 '시대정신'의 예로 1966년~1970년에 시장직을 역임한 김현옥 전 시장을 예로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불도저'란 별명으로 불릴 만큼 추진력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김 교수는 "김현옥 전 시장은 그 시대에 맞는 역할을 해냈다"며 "서울이 한국의 견인차 역할을 하기 위한 틀거리를 만들기 위해 성실히 일했다"고 평가했다.
김현옥 전 시장이 서울시장을 맡을 당시 서울시는 자고 일어나면 인구가 기하급수로 불어나는 시절이었다. 1960년에 서울시 인구는 244만 명이 있었지만 1966년에는 379만 명, 1970년에는 543만 명으로 10년 사이 두 배가 넘는 인구가 증가했다. 그렇다 보니 수도 서울은 교통난, 주택난 등 도시문제가 심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김 전 시장은 서울 시내와 외곽으로 나가는 주요 도로를 건설하는 데 주력했다. 삼청터널, 사직터널, 남산 1,2호 터널을 비롯해 마포대교, 서울역 고가도로 등을 건설했다. 대한극장 앞 등 재임 기간에 144개의 보도육교가 가설됐다. 청계 고가도로도 그가 가설했다. 그뿐만 아니라 북악스카이웨어, 강변도로 등도 그가 만들었다.
또한, 서울 시내 무허가 건물 13만 동 중 4만여 동을 양성화라는 이름으로 현지 개량하고 나머지 9만여 동을 경기도 광주군내 대단지를 조성, 이주시킨다는 명분으로 철거했다.
김 교수는 "물론 김 전 시장이 판자촌을 밀어내는 등 여러 문제는 있었지만 당시 서울시가 필요로 하는 일을 잘해냈다. 한 마디로 시대적 과제를 제대로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1960년대엔 도로를 놓는 게 시대정신이라면 지금은 도로를 뜯는 게 시대정신"
김수현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 시절도 언급했다. 김 교수는 "당시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을 복원시켰다"며 "물론 그것이 자연형 하천인지, 조경형 하천인지는 여러 의견이 있으나 분명한 건 당시 청계천을 복원하는 게 시대정신이었고 이명박 시장은 그것을 잘 읽었고 성과를 이뤄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1960년대에 청계천 위에 도로를 짓는 게 시대정신이었다면 2003년에는 청계천 위에 도로를 뜯어내고 생태를 복원하는 게 시대정신이었다"며 "오세훈 전 시장에게도 그런 부분에서 시대정신이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하지만 오세훈 전 시장은 여전히 토건형, 전시형 사업을 지속했다"며 "이 때문에 결국 시대정신, 즉 시민의 기대가 정체되는 상황이 돼 버렸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제시기에 부응하는 게 필요했지만 이게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니 박원순 시장에게 그 공이 넘어가게 됐다"며 "당장 박 시장이 해야 할 일은 정체된 서울을 소통시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전 시장 때부터 시대정신과 어긋났다. 이 때문에 누적된 문제인 뉴타운 문제, 서울시 부채 문제 등을 수습해야 한다. 또한 양적 팽창을 통해 발생한 양극화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과제가 있다. 그리고 서울시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비전을 펼쳐야 하는 과제도 있다."
박 교수는 "생태 중심, 사람 중심으로 시정을 펼치는 게 박원순 시장의 시대정신"이라며 "서울시민은 박원순 시장에게 이런 방향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스템의 정착화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박 시장이 이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건 무엇일까. 이날 참석한 패널들은 이구동성으로 '시스템의 정착화'를 부탁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박원순 시장이 해야 할 일은 이명박-오세훈 전 시장의 패러다임을 넘을 수 있는 혁신적 시스템 도입이다"라며 "이런 걸 요구하는 게 아직 시기상조일 수 있지만,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임승빈 명지대 교수는 "우선 지금은 새롭게 무엇을 만든다기보다는 지금 시정에 대해 제대로 다시 검토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야 다음 시장이 누가 오던지 시스템 안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왕진 서울시 정책특보는 이러한 의견에 공감하며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 특보는 "지난 10년간 서울시정에서 시민사회 단체와의 소통은 거의 사라졌다"며 "서울시가 지금 안고 있는 25조 원의 부채는 그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 특보는 "무너진 거버넌스를 어떻게 세울지를 고민 중"이라며 "이것이 가질 수 있는 구체성의 부족, 실제 시정에 반영할 수 있는 한계, 시민의 참여 제한 등의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 특보는 "하지만 시정에서 행정의 힘은 너무나 막강하고 지배적이다. 압도적이고 강력한 힘이기에 현실적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외부 전문가, 시민 등이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통해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서 특보는 "서울시 행정에 감시와 책임을 더욱 부여하기 위해 절대 공개해서는 안 되는 정보 말고는 모든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라며 "부가적 행정 비용과 행정 집행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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