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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그들은 왜 싸움꾼이 돼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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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그들은 왜 싸움꾼이 돼야 했나?

[기자의 눈] 용산·두리반·명동, 줄잇는 재개발 분쟁 이유는?

상권이 형성된 지역의 재개발 사업은 늘 문제가 된다. 거리로 내쫓긴 세입자들이 한겨울 영하의 날씨에 길바닥에서 지내기도 한다. 칠순을 훌쩍 넘긴 노인이 손자뻘 청년들에게 얻어맞는 일도 생긴다. 세입자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권리금 때문이다. 2009년 용산 참사가 그랬고, 홍대 앞 '두리반'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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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와 두리반 농성은 둘다 오랜기간 터전으로 생활해오던 가게가 하루아침에 철거되면서 시작됐다. 억대의 권리금을 지불하고 들어온 상인들로서는, 오랜기간 시설비를 투자하고 장사를 해온 세입자들로서는 재개발이 말 그대로 재앙이다.

하루아침에 사라진 자신의 터전, 그 책임은 누구?

용산 참사 희생자인 이상림 씨도 마찬가지였다. 용산4구역에서 26년을 넘게 식당을 운영해 왔다. 막내아들인 이충연 씨와 새로 사업을 한다고 2006년 10월, 식당을 호프집으로 바꿨다.

호프집으로 업종 변경을 하며 낡은 건물을 한 달 동안 공들여 증·개축 했다. 전세금을 빼서 공사비에 보탰기에 건물 옥상에 가족이 함께 살 작은 집도 만들었다. 그렇게 쓴 공사비만 억 단위였다. 무리하게 대출도 받았다.

▲ 용산 참사가 발생한 남일당 건물. ⓒ프레시안(최형락)

하지만 그렇게 투자한 호프집이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돼 무일푼으로 쫓겨나게 됐다. 장사를 하려면 최소 억 단위의 권리금이 있어야 하는데, 재개발 시행사와 건물주는 맡겨놓았던 보증금과 소정의 이사비만을 제시하며 떠나기를 종용했다. 이상림 씨가 자신의 가게 앞에 세워진 용산 남일당에 망루를 짓고 올라간 이유다.

이상림 씨와 함께 망루에 올랐다 사망한 용산 참사 희생자 고 양회성 씨, 고 윤용헌 씨, 고 한대성 씨, 고 이성수 씨도 모두 같은 이유로 망루에 올랐다.

홍대 앞 '작은 용산'으로 불리는 칼국수집 '두리반'도 마찬가지다. 두리반 사장 안종녀 씨는 5년 가까이 운영해온 가게 규모의 절반이라도 좋으니 다시 장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며 집기가 철거된 두리반에서 남편과 단 둘이서 농성을 시작했다.

안종녀 씨는 2005년 3월께 권리금 1억3000만 원을 주고 이 곳 식당에 들어왔다. 하지만 재개발 시행사는 보상금으로 300만 원을 제시했다. 다시 가게를 시작하는 건 고사하고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부부로선 석 달 생활비로도 빠듯한 돈이었다. 버티고 버티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용역 업체 직원들에 의해 강제로 두리반에서 '철거'당했다.

이에 앞서 함께 시행사의 명도 소송(경매 등을 통해 부동산을 낙찰 받고 대금을 지급한 후 6개월이 지났음에도 인도명령 대상자 등이 부동산의 인도를 거절할 때 매수인이 관할법원에 부동산을 명도, 즉 건물을 비워 넘겨달라고 제기하는 소송)에 법적 대응을 진행했던 인근 상가 11세대는 1심 패소 뒤, 300만 원에서 많게는 2000만 원을 받고 떠났다.

그렇다고 떠난 이들이 다시 다른 곳에서 장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어딜 가든 억 단위의 권리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으면 '좌판'도 깔지 못하기 때문이다.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 마련한 종잣돈을 구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안종녀 씨도 두리반을 시작할 당시, 권리금 마련을 위해 찜질방 청소부터 막일까지 닥치는 대로 했다.

안종녀 씨가 추위에 떨며, 더위에 허덕이며 전기가 끊긴 상태에서 500일을 넘게 두리반에서 농성한 이유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런 사회를 살아야 할까

해결이라면 해결일지 모르겠지만 용산 참사로 고인이 된 유가족들에게는 35억 상당의 보상비와 앞으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임대상가를 제공하기로 했다. 35억 원은 죽은 다섯 명의 목숨 값이었다. 두리반의 경우 농성 531일 만에 시행사가 인근 지역에 점포를 살 수 있는 돈을 마련해주는 것으로 해결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개발 과정에서 권리금을 두고 발생하는 마찰음이 사라진 건 아니다. '용산이 끝나면 홍대에서, 홍대가 끝나면 명동에서', 이런 식으로 끊이지 않고 분쟁은 발생하고 있다. 임대차상가보호법, 도시재정비사업 등이 근본적으로 세입자의 권리금을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14일 서울 중구 명동 세입자 11명이 커피점 '마리'를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 상인들이 요구하는 내용은 1년 반 전 두리반 사장 안종녀 씨, 그리고 2년 반 전 용산 참사 이상림 씨가 요구한 것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가게 규모의 절반이라도 좋으니, 서울 지역 어디라도 좋으니 다시 장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권리금은 기존의 점포 운영자가 새로운 운영자에게 가게를 넘겨주면서 받는 금액이다. 기존의 점포운영자는 권리금을 받는 대가로 새로운 운영자가 점포를 넘겨받을 수 있도록 건물주와의 임대차계약을 도와주고, 기존시설 및 고객들을 다음 운영자에게 승계함을 도와주는 것이다.

권리금은 상인들 간의 묵시적으로 인정하는 금액으로 정해진 가격도 없고 법적으로 보장되는 금액도 아니다. 가장 적절한 권리금을 산정하려면 많은 부분을 복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중론이다.

실재 권리금은 바닥 권리금과 영업 권리금, 시설 권리금, 기타 권리금 정도로 구분해서 생각 할 수 있지만, 그것조차 정확한 답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말 그대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셈이다. 그렇다보니 법제화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건 사실이다.

▲ 홍대입구역 앞 두리반 전경. ⓒ프레시안(최형락)

하지만 그렇다고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권리금을 이대로 방치한다는 것 역시 문제다. 명동 커피점 '마리'에서 만난 배재훈 명동3구역 세입자대책위원장은 "두리반처럼만 된다면 500일이든, 1000일이든 이곳에서 농성을 하겠다"고 했다.

용산참사, 두리반, 그리고 이번엔 명동 '마리'다. 평범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이자, 언니이자, 동생이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사회 구조 밖으로 튕겨 나가 '거리의 투사'가 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사회 속에서 살아야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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