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선 이웃 일본 상황을 남의 일로만 생각하기 어렵다. 과거 일본에 떨어진 핵폭탄으로 아직도 고통 속에 살고 있는 한국 내 원폭 피해자들은 더욱 그렇다. 이들은 자신의 가족들과 자신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며 일본 내 피폭자들을 걱정하고 있다.
"핵이라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한정순(53)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은 "일본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 뉴스를 접한 이후 뉴스를 계속 틀어놓고 보고 있다"며 "피폭자가 늘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핵이라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며 "피폭을 당한 사람들은 한평생을 고통 속에서 지내야만 한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한 회장은 "뿐만 아니라 피폭 가족, 그리고 후손들 역시 늘 핵의 공포에 시달리며 살아야 한다"며 "그런 걸 생각하니 이번 원자력 발전소 폭발로 피폭을 당한 사람들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한 회장은 원폭피해 2세대로 부모 모두가 원폭피해자다. 일제의 식민지 수탈로 인해 피폐해진 합천에서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건너갔던 그의 가족은 원폭투하 당시 히로시마에서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삼촌과 언니, 오빠 등 총 열세 식구가 한 가족을 이루어 살았다.
▲ 일본 북동부 지진 발생 나흘째인 14일 후쿠시마현 니혼마쓰에서 생후 1년된 어린아이가 방사능 오염 검사를 받고 있다. ⓒ뉴시스 |
당시 핵폭탄이 떨어지던 곳에 있던 가족들은 심각한 화상을 입는 등 부상을 당했다. 피폭 후유증이 심했던 아버지는 심근경색으로 투병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피폭 후유증으로 3남5녀였던 형제는 현재 2남4녀만이 남았다.
물론 한 회장도 피폭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30대 초에 대퇴부무혈성괴시증으로 인공관절을 이식한 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다. 그는 현재도 수시로 병원을 찾고 있다. 한 회장은 자신의 병이 피폭으로 인한 유전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피폭 2세대 중 절반 이상이 10살 이전에 사망해"
실제 국가인권위가 2004년 조사한 '원폭피해자 2세의 기초현황과 건강실태 조사'에서도 피폭자 후손 중 일부가 1세 못지않게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원폭 피해자 중 10%인 7만 명이 조선인이었다.
조사대상 4080명 중 7.3%인 299명이 사망했고 이들 중 절반 이상(52.2%)이 10세 미만에 삶을 마감했다. 살아있는 2세 중 19명은 정신지체, 척추이상 등 선천적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또 같은 연령대의 일반 국민에 비해 각종 질환에 노출될 위험성 역시 높았다. 남성의 경우 정상인에 비해 빈혈 88배, 심근경색 및 협심증 81배, 우울증 65배, 정신 분열증 23배의 발병률을 보이고 있고 여성 역시 심근경색 및 협심증 89배, 우울증 71배, 유방양성종앙 64배, 천식 23배 등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생존한 원폭 피해자 1세도 각종 질병의 발생빈도가 높기는 마찬가지였다. 인권위가 원폭 피해자 1세 1256명에 대한 우편설문조사 결과 이들은 우울증 93배, 악성 암 70배, 빈혈 52배, 정신분열증 36배, 심근경색·협심증 19배 등 발생빈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 회장은 "피폭 후손 중에는 장애를 가진 분들이 많다"며 "일반적으로 피폭으로 인한 피해는 유전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주위를 봐도 핵으로 인한 피해자들뿐이다"고 밝혔다. 한 회장은 "단순히 부모님이 피해자라는 이유로 고스란히 그 고통을 후손들이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들은 후유증도 후유증이자만 피폭자라는 주위의 차가운 시선도 견뎌야만 했다. 핵이라는 것은 정말 무서운 존재"라고 덧붙였다.
ⓒ뉴시스 |
"새로운 피폭자들이 우리와 같은 고통 겪을 거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피폭 1세대인 심진태(68)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사무국장도 "핵은 끔찍한 존재"라고 했다. 그는 두 살 때 원폭피해를 당했다. 경상남도 합천이 고향인 아버지가 일본에 의해 강제 징용돼 히로시마에 가면서 함께 갔다가 이와 같은 참사를 당한 것.
심 국장은 "당시 아버지는 핵이 떨어지고 나니 고향 생각 밖에 나지 않으셨다고 했다"며 "일본이 항복한 뒤 피폭자의 신분으로 고향을 찾았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심 국장은 "하지만 한국에 온 뒤로는 원폭의 원자도 이야기하지 않았다"며 "유전된다는 이야기가 나돌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심 국장은 "차라리 일본에서 핵이 떨어졌을 때 죽었으면 됐는데,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이 살아있는 내내 나를 따라다니고 있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심 국장은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 폭발을 두고 "방사능이 유출되면 상황은 정말 심각하게 된다"며 "사람들은 핵의 위험을 잘 모르는 거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심 국장은 "꼭 큰일을 치러야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 거 같아 안타깝다"며 "한국도 정신 바짝 차리고 삼척 등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곳을 한 번 더 검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심 국장은 66년이 지났음에도 피폭자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을 두고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심 국장은 "과거 핵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서 또 다시 피폭자가 나왔다는 게 매우 안타깝다"며 "우리처럼 피폭자들은 수십 년 동안 알 수 없는 병마와 싸워왔는데, 새로운 피폭자들이 우리와 같은 일을 겪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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