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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권이 외치던 선진국이 '선지국'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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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권이 외치던 선진국이 '선지국'이 된 듯하다"

고 리영희 교수 49재 추모식…"고인의 가르침이 벌써 그리워"

"선생님, 이제 저승에서 편히 쉬고 계신가요. 선생님이 없는 대한민국은 너무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혼탁해지기만 하고, 민주주의는 날마다 후퇴되면서 살기가 팍팍합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추모사를 하다가 목이 매여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5일 타계한 고 리영희 한양대 명예 교수의 49재 추모식이 22일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 교수, 명진 전 봉은사 주지, 임채정 전 국회의장, 정연주 전 KBS 사장 등이 참석했다.

고인의 부인 윤영자 여사는 "이렇게 훌륭한 49재를 마련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며 "앞으로 남은 삶을 열심히 살겠다. 그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말끝을 흐렸다.

"고인이 이룩한 민주주의와 인권은 후진을 거듭하고 있다"

이날 참석한 인사들은 추모사를 통해 고인의 정신을 기렸다. 권태선 한겨레 논설위원은 "냉전적 수구언론들은 제 잇속을 챙기느라 스스로 권력의 시녀가 돼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며 "국토를 헤집고 국민을 편 가르며 대결을 부추겨온 권력은 오만한 독주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 백낙청 서울대 명예 교수가 헌화를 한 뒤 애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권 위원은 "그 사이 선생님을 비롯한 민주세력이 온갖 희생을 감내하며 이룩한 민주주의와 인권은 제동장치도 없이 후진에 후진을 거듭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런 불의한 세상을 끝내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할 우리의 힘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권 위원은 "어두운 시절 앞장서서 겨레가 가야할 길을 보여주었던 선생의 혜안과 죽비소리 같았던 가르침이 벌써부터 그리운 까닭"이라며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생님이 꿈꾸었던 유토피아가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는 날을 만들기 위해 함께 힘을 모으겠다"고 다짐했다.

박석무 이사장도 "날씨까지 무서운 추위로 겨울은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날만 계속되고 있다"며 "칠흑같이 어둡고 무섭던 군사독재 유신시절, 5공 폭압정치 속에서도 소신을 굽히는 일이 없던 선생님의 발자취가 더욱 크게만 느껴질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우리 후학들은 선생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조국의 통일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험난한 길에 몸을 사리지 않고 희생적으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이승에서의 모든 고통이나 힘들었던 일은 훌훌 털어버리고 평화롭고 조용하게 영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명진 "고인의 저서로 나의 인생도 바뀌었다"

명진 스님(전 봉은사 주지)은 고인의 저서인 '전환시대의 논리'를 언급하며 "80년대 구치소 독방에서 그 책을 읽고 나의 인생도 바뀌었다"고 회고했다. 명진 스님은 "그때까지 역사와 진실을 도외시하고 살았던 것이 변화하게 됐다"며 "하지만 이런 변화는 나뿐만 아니라 고인의 저서를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명진 스님은 "49재는 불교 의식으로 극락왕생을 비는 것"이라며 "하지만 오늘 서울로 올라오면서 드는 생각인데, 과연 고인이 우리가 빌고 원한다고 극락으로 갈까 싶다"고 말했다. 명진 스님은 "아마도 절대 극락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며 "고인은 이 세상을 극락으로 만들어보라고 우리에게 말할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명진 스님은 "고인은 시퍼런 눈으로 나를 나무랄 듯하다"며 "고인이 극락왕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혹여 여기 앉아 있는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간다면 꿈속이라도 나타나 꾸짖는 무서운 스승이 돼 한국 사회가 조금이라도 올바른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지켜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명진 스님은 특유의 비유로 현 정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명진 스님은 "구제역으로 하늘에는 영문 모른 채 죽어간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땅에는 짐승이 흘린 피로 피범벅"이라며 "이것이 이명박 대통령이 바라는 선진국인가"라고 반문했다.

명진 스님은 "선진국을 부르짖지만 정작 선진국에서는 멀어지고 있다"며 "선진국이 아니라 이젠 '선지국'이 된 듯하다"고 비꼬았다. 명진 스님은 "그럼에도 더 많이 갖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고, 증오와 미움과 갈등만이 가득한 게 현재 우리 사회"라며 "짐승들이 죽어가면서 흘린 피와 눈물이 우리에게 앞으로 어떻게 돌아올지 걱정이다"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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