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집회'가 합법이 된 첫 날인 1일 저녁 8시 환경운동연합이 주최한 '4대강 사업중단 촉구 캠페인.'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소공원 앞에 모인 70여 명의 시민 중 몇 사람이 손을 들었다. 그 중 70대 노인이 마이크를 들었다. 그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4대강을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당장 4대강 사업을 중단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 모인 시민들은 그의 발언에 환호로 답했다. 이 곳에 모인 시민들은 저마다 손에 촛불을 들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흘러라 강물, 들어라 민심', '7.3 다시 광장으로', '국민을 이기는 대통령은 없습니다', '강은 흘러야 강입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이날 열린 야간 집회에서는 차벽이나 전의경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무전기를 든 사복 차림의 경찰관 5~6명만이 촛불을 든 시민 주위를 돌아다닐 뿐이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야간에 집회는 고사하고 1인 시위만 해도 방패로 둘러싼 뒤, 저항하면 연행을 하던 경찰들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이날 도로 쪽에 노란색 폴리스 라인만을 설치했을 뿐이었다.
▲ 1일 열린 '4대강 사업중단 촉구 캠페인' 야간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 ⓒ연합뉴스 |
서울에 신고된 집회 89건, 실제 열린 야간 집회 단 3곳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의 야간집회금지 조항(10조)이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6월 30일자로 폐기됐다. 이에 7월 1일부터 야간집회가 전면 허용됐다. 서울 곳곳에서는 이를 자축하는 야간 집회가 열렸다. '4대강 사업중단 촉구 캠페인' 역시 그 일환이었다.
시민단체 '강남촛불'은 오후 7시 30분께 서초구 강남역 5번 출구 앞에서 '강남촛불 2주년 기념 야간문화제'를 열었다. '성미산대책위원회'는 오후 7시 마포구 성산동에서 홍익대 재단의 성미산 개발에 맞서 '성미산 지키기 주민 결의대회'를 열었다. 모두 야간에 진행된 집회였다.
그간 보수언론과 한나라당, 경찰 등에서는 "야간에 집회가 열리면 치안이 불안하다"며 야간집회금지법 폐지를 반대해왔다. 당장 야간집회금지법이 폐지된 1일에도 한나라당 안경률 의원은 "민생치안에 투입돼야 할 경찰이 매일 밤 60여 건 정도 열리는 야간집회의 질서유지를 위해 전국 곳곳 집회장소에 투입되게 됐다"며 야간 치안 불안을 우려했다.
경찰청도 1일, 지난달 신고 된 7월 개최 야간집회 신청 건수는 서울 1081건을 포함해 전국에서 3442건이 접수됐다고 발표했다. 이중 7월 1일에 서울에서 집회를 개최하겠다고 신고 된 건수는 89건이었다. 하지만 이날 열린 야간집회는 단 3곳에 불과했다. 전국적으로는 경찰집계 4곳에서 야간 집회가 열렸고 653명이 참가했다. 나머지는 집회가 아예 열리지 못하도록 먼저 집회신고를 내버리고 실제 집회를 하지 않는 유령집회, 혹은 방어집회인 셈이다.
지난해의 경우 신고된 집회가 실제로 열린 비율은 2.7%에 그쳤다. 유령집회가 실제 집회보다 훨씬 많은 상황이다. 경찰이 우려하는 '치안 공백'이 엄살에 불과한 이유다.
"집회가 원래 많은 것처럼, 부작용 있는 것 처럼 선전"
이날 '4대강 사업중단 촉구 캠페인'에 참석한 박주민 변호사는 "그간 말하는 자유도 우리에겐 있지 않았다"며 "이렇게 모여서 이야기를 하니 정말 좋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에서는 전국적으로 오늘만 신고 된 야간 집회가 100건이 넘는다고 했지만 실제 열린 야간 집회는 6건에 불과하다"며 "집회가 원래 많은 것처럼, 부작용이 있는 것처럼 선전해 혼란을 야기해온 게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박주민 변호사는 "48년 만에 야간집회가 합법적으로 열리게 됐다"며 "앞으로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부분에 대해 해결하도록 노력하자"고 촉구했다. 이날 야간집회는 밤 9시 30분까지 진행된 뒤 시민들이 자진해산하며 마무리됐다. 야간집회를 주최한 환경운동연합은 17일까지 이 곳에서 계속해서 야간집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경찰은 야간 '집회'에 대해서는 보장한다는 방침이지만, 행진 등 '시위'를 시도할 경우에는 단속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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