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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떳떳한 권력' 앞에서 삼성은 약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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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떳떳한 권력' 앞에서 삼성은 약자다"

[인터뷰] 김용철 변호사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가 화제를 낳으면서 생긴 부작용이 있다. 김 변호사가 양심고백을 준비하는 대목을 다룬 이 책 앞부분을 읽은 독자들 가운데 일부가 삼성이 마치 전지전능한 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예컨대 삼성은 우리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들여다보면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식의 착각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조직은 세상에 없다. 공상과학 영화 또는 음모론 드라마에나 나오는 이야기다.

이런 착각이 위험한 이유는, 평범한 사람이 삼성 문제에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삼성 비리에 맞서려면 영화 속 주인공과 같은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오해를 낳는다는 것. 그러나 <삼성을 생각한다>가 무사히 출간돼서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사실만 떠올려도, 이런 착각은 허물어진다. 삼성이 천문학적인 돈과 광범위한 인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깨어 있는 시민 앞에서는 그저 수많은 기업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현대 사회에서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꺾을 수 있는 개인이나 조직은 없다.

"조·중·동이 단결해도 '의식 있는 시민'은 못 이긴다"

▲ 김용철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김용철 변호사가 7일 밤 <칼라TV> '정태인의 호시탐탐'에 출연해서 한 이야기도 이런 내용이다. 그는 "언론 시장을 장악한 <조선>, <중앙>, <동아>가 <삼성을 생각한다>를 외면했지만,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며 "이는 온라인 공간에 있는 광장을 기존 권력이 어찌할 수 없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을 생각한다>는 주요 언론이 이 책 광고를 거부했다는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의 힘으로 널리 알려졌다. 김 변호사가 이날 방송에서 "의식 있는 시민들의 힘"을 여러 차례 이야기한 이유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가 제안한 '삼성불매운동'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런 운동이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김 변호사는 "과거에는 불매운동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시민 의식'이 바뀌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게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삼성 금융 계열사들의 횡포를 제어하는 힘이 되리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이들 계열사는 국가 경제를 살찌우기보다 철저히 내수 기득권에만 안주해 왔는데, 그 배경에는 불합리한 보험 약관 등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 불매운동을 통해 이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으리라는 것.

"시민은 투표소 안에서만 주권자, 소중한 기회를 왜 낭비하나"

그러나 '시민 의식'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는 장은 결국 선거다. 김 변호사 역시 "시민은 투표소 안에서만 주권자 대접을 받는데, 그렇게 소중한 기회를 엉뚱하게 써버린다"며 안타까워했다. 삼성 비리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결국 투표라는 게다. 삼성 등 재벌 비리 앞에서 타협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정치세력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경제생태계에서 포식자가 돼버린 재벌을 견제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중소기업과 서민의 몫을 키울 수 있다.

▲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 ⓒ프레시안(김봉규)
그런데 과연 정치의 힘으로 재벌을 견제하는 게 가능할까. 전직 대통령조차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고백한 마당에 말이다. 김 변호사가 삼성 핵심부에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충분히 가능하다. 김 변호사는 이날 방송에서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삼성 구조본 내부 분위기를 소개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강력한 재벌 개혁 의지를 밝혔다. 그러자 삼성 수뇌부는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는 게다. 물론, 재벌 개혁 기조는 1년을 넘기지 못했다. 그 이유에 대해 김 변호사는 삼성 수뇌부가 온갖 인맥을 동원해서 김대중 정권 핵심부에 접근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는 김대중 정권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사례지만, 달리 해석하면 정치권력이 단호한 입장을 계속 유지한다면, 제아무리 대단한 재벌이라 해도 손 쓸 방법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삼성 개혁의 주인공은 '투표소 향하는 당신'"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간" 상황, 즉 재벌이 국가기구를 우습게 여기는 상황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아주 특수한 조건에서 비롯된 결과다. 재벌이 정치자금을 매개로 권력의 약점을 쥐고 있다는 조건이다. 이는 '재벌이 뿌린 돈에서 떳떳한 권력'이 나타나는 순간, 삼성을 포함한 재벌이 약자로 바뀐다는 뜻이다. 반칙을 통해 성장한 재벌에게는 공정한 경쟁의 규칙을 들이대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굳이 청와대가 나설 필요도 없다. 국세청이나 금융감독원만 제 구실을 했더라도 삼성이 지금처럼 법 위에 군림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국세청이나 금감원이 제 구실을 하게끔 하는 것" 역시 정치의 몫이다.

결국 이야기는 되돌아간다. 삼성 비리를 바로잡는 열쇠를 쥔 것은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이라는 게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용기가 아니다. 투표소에서 도장 찍을 자리만 제대로 찾아내는 의식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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