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5일 11시 59분
홈
오피니언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문화
Books
전국
스페셜
협동조합
대쪽 아나키스트 유림(柳林)을 생각한다!
[해방일기] 1946년 8월 4일
8월 3일 발표된 인민당의 3당 합당 제안에 대해 당일로 한민당의 논평이 나왔다. 한국민주당 선전부에서는 기자단 정례회견 석상에서 북조선공산당과 신민당이 합당하여 북조선로동당으로 신발족한데 대하여 이것은 국제 공산당이 표면상 해체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또
김기협 역사학자
2011.08.04 10:30:00
박헌영에게서 독립한 김일성
[해방일기] 1946년 8월 2일
제2차 세계 전 종전 전의 공산당은 어느 나라에서나 다른 정당과 다른 국제적 의미를 가진 존재였다. 코민테른의 인증을 통해 공산당이 성립되었고, 인증의 기준은 레닌의 이론을 따르는 것이었다. 즉 공산당은 노동 계급의 전위 정당으로서 집권할 경우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2011.08.02 10:21:00
종속과 독재의 발판이 된 민족 열등감
[해방일기] 1946년 8월 1일
7월 31일 오후에 종암예배당에서 전국학생총연맹(전국학련) 결성식이 열렸다. 이승만, 정인보, 김성수, 이극로 등이 내빈으로 참석했다는 이 결성식에서 고려대학교의 이철승이 대표의장으로, 서울대학교의 채만식과 유학생동맹의 박용만이 공동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연합국
2011.08.01 07:50:00
"해방 1년, 한탄은 하지만 후회는 않는다"
[해방일기] 1946년 7월 29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광복 1년이 되어 갑니다. 참, 지금은 '광복절'이란 말이 모두 입에 붙어 있지만, 그것은 정부 수립 후의 일이고, 그때는 '해방 1주년'이라고 했죠? 지금의 상황이 1년 전 갖고 계시던 희망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굳이 말씀 안 하셔도 잘 압니다. 선
2011.07.29 08:50:00
공산당의 '정판사 사건' 투쟁의 방향은?
[해방일기] 1946년 7월 28일
연초에 있었던 국군준비대와 학병동맹 탄압은 미군정의 양해 하에 경찰이 앞장섰던 일로 생각된다. 두 단체가 치안과 질서를 명분으로 경찰과 경쟁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정판사 사건은 이와 달리 미군정이 꾸민 일이고, 경찰은 그 지시를 받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5
2011.07.28 09:57:00
총으로 학생 죽인 "경찰에 표창!"
[해방일기] 1946년 7월 27일
정판사 사건과 뚝섬 위조지폐 사건의 공판을 법원 4호 법정에서 개정할 예정이던 7월 29일 9시에 수천 군중이 몰려들어 큰 소동을 빚었다. 이로 인해 개정은 몇 시간 뒤로 미뤄졌다. 법정에서 벌어진 일은 내일 설명하기로 하고, 오늘은 법정 밖의 소동을 먼저 살펴본다.
2011.07.27 10:24:00
좌익 5원칙과 우익 8원칙
[해방일기] 1946년 7월 26일
좌우 합작 제1차 본 회담이 7월 25일 열리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해 본다. 5월 25일 김규식, 원세훈, 여운형, 황진남 모임. 버치와 아펜젤러 배석. 원세훈이 공개. 6월 14일 김규식, 여운형, 허헌 모임. 약간의 합의 도달. 원세훈이 공개. 6월 22일 김규식, 원세훈, 여운형, 허
2011.07.26 09:37:00
박헌영 일당은 왜 좌우 합작을 반대했나?
[해방일기] 1946년 7월 25일
7월 25일에 좌우 합작 2차 예비 회담이 열리고 이어 제1차 본 회담이 열렸다. 미군 연락장교로 버치 중위가 참석한 반면 소련군 연락장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그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허헌의 결석이다. 허헌은 사흘 전의 예비 회담에도 참석하지 않았었다.
2011.07.25 08:04:00
美도 지지한 좌우 합작, 반대한 세력은?
[해방일기] 1946년 7월 22일
좌우 합작 회담 대표 10인이 7월 10일경까지 정해져 있었다. 그 구체적 선출 과정은 확인하지 못했다. 아마 이 대표들이 공식적 선출을 통해 특정 기관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우익은 비상국민회의와 민주의원, 좌익은 민전 지도부에서 비공식 논의로 적당한 인물들을 뽑은
2011.07.22 08:10:00
이북은 '남녀평등', 이남은 '공창 논란'
[해방일기] 1946년 7월 21일
일기 내용이 38선 이남의 상황에 너무 치우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6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북 상황에 관한 자료와 연구 성과를 충분히 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사실 해방 후 1년이 지나는 동안 이북보다 이남에서 새로운 일이 더 많이 일
2011.07.21 08:1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