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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이런 적이 없다' 하셨나요?
[조선 질경이 이소선] <끝> '그 시절'엔 그래도…
"딱 사흘 만 모두가 집에서 안 나오면 된다. '아프다'고 하거나 '일이 있다'고 하거나, 아무튼 핑계를 대고 딱 사흘만 전체가 집 밖으로 나오지 말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세상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노동자의 요구를 이렇게 우습게 알지 못한다.
여정민 기자
2008.12.05 10:15:00
그 새벽, 국수집 앞에 어머니가 서 계신 까닭
[조선 질경이 이소선] <8> "그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소선 어머니! 마흔에 홀로 되신 어머니가 이제 여든이라니, 믿기지 않는 현실에 못난 아들 최종인, 안타까움과 눈물이 앞섭니다. 어머니의 훌륭한 삶 앞에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아니 저만이 아니라 그 누가 무슨 말을, 어떤 언짢은 말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너
최종인 삼동친목회 회원
2008.12.04 08:37:00
"갔다가 꼭 다시 와요, 알았지?"
[조선 질경이 이소선] <7> '까만 바바리 노동자' 이야기
이소선 어머니 하면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가끔 살아가면서 세상일에 지칠 때, 이소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다시 마음을 추스르곤 한다. 나는 친어머니 말고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어머니라는 호칭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소선
신순애 전 청계노조 간부
2008.12.03 07:52:00
"당신은 누구의 편인가?"
[조선 질경이 이소선] <6> 그 어머니와 그 아들
생각 컨대 올해는 살아있다면 전태일이 환갑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전태일의 환갑과 어머니의 팔순을 함께 잔치로 벌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전태일이 살아 있다면 그 효심에 어머니의 팔순을 얼마나 걸팡지게 차려 드렸을까. 아무쪼록 어머니의 여생이 편안, 건강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2008.12.02 07:52:00
두 분의 어머니께
[조선 질경이 이소선] <5>
어머님! 11월도 중순이 지나 가을의 끝자락 이 깊은 밤에 조용히 어머님을 불러봅니다 어머님! 어머님 가신지 벌써 16년 반 돌아가시기 한 주일 전 어머님께서는 말기 위암의 그 고통을 감추시고 몸단장 곱게 하시고 형들 앞세우고 안양 교도소로 특별면회를 오셨지요 그때
이수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2008.12.01 07:45:00
"자신보다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리셨다"
[조선 질경이 이소선] <4> 용기를 주신 어머니
고난의 시대를 헤쳐 오면서 어머니는 너무나 크고 힘든 일들을 떠맡아 해오셨고, 팔순을 눈앞에 둔 지금과 또 앞으로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고 존경하는 이소선어머니에 대해 새삼스레 내가 한 번 더 말을 보태는 이유는, 어머니의 삶이 자
이영교 인혁당 유족
2008.11.30 09:16:00
"어머니, 기억하시죠?"
[조선 질경이 이소선] <3> "한울타리에서 살자"
그 엄동설한에 여의도 한복판에 천막치고 우리들에 상징 빛바랜 한울삶 깃발 펄럭이고 '명예회복법과 의문사진상법을 제정하라'고 외치면서 422일 동안 단 한 번도 게으름 부리지 않고 천막에서 지낼 때를 말입니다. 잠이 안오면 밤새 내일 무엇을 어떻게 해아 할지
배은심 유가협 회장
2008.11.29 09:53:00
어머니가 주시던 월급 5만원
[조선 질경이 이소선] <2> "돌아보니 당신이 늘 옳았습니다"
전태일동지가 일으킨 놀라운 기적 중 하나는 자신의 어머니를 수많은 사람들의 어머니로 만든 일일 것이다. 아마도 내가 아는 수백 명, 아니 내가 모르는 수천 명이 자신의 친어머니 외에 또 다른 어머니를 갖고 있을 것이다. 바로 이소선어머니다. 내가 처음 이소선 어머
안재성 <청계 내 청춘> 저자
2008.11.28 10:2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