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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왕의 귀환', 종복은 있고 감시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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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왕의 귀환', 종복은 있고 감시자는 없다

[분석] 이건희 회장의 전격 복귀, 문제점은 없나

한국 사회의 절대 권력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24일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수장 복귀가 시사하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복귀 사실을 언론에 알리며 이 전 회장 복귀가 시사하는 바를 명확히 요약했다. '책임경영 강화'가 그것이다. 바꿔 말하면 회장님의 그룹 통제는 계속 이어지리라는 얘기다. 3세 경영 승계도, 삼지모(삼성을 지켜보는 모임) 등 경영진 감시집단과의 상생 경영도 물 건너갔다는 뜻이다. 권력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전 회장은 이번 복귀로 한국 사회에 공개 선언했다.

이 전 회장의 복귀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섣불리 짐작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 못지 않게 부정적인 면이 크다는 게 삼성을 지켜보는 이들의 평가다.

전격 복귀 선언의 이유 : 거칠 게 없다

이 전 회장의 복귀는 전격적이었다. 삼성그룹 출입기자 누구도 발표 전에는 낌새를 채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위원장)는 전격 복귀 선언의 이유로 "더 이상 은퇴 운운하는 연기를 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론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이 전 회장이 판단했다는 뜻이다.

김진방 교수는 "무엇보다 작년 마지막 날 대통령이 실시한 사면이 가장 컸다"며 "공식적으로 알려진 범죄 사실이 이번 사면으로 완전히 면죄부를 받았다. 복귀에 지장이 없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경제적으로는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삼성자동차 부채 문제가 사실상 해소됐다는 판단이 섰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생명 상장으로 부채 문제를 둘러싼 채권단과 소송 가능성이 사라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 1999년 삼성자동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우리은행, 산업은행, 외환은행 등 국내 주요 채권단은 2조4500억 원대의 손실을 입은 대신 삼성생명 주식으로 이를 보전받았다. 채권단은 주당 7만 원에 삼성생명 주식 3500만 주(17.65%)를 보유하고 있었다. 현재 이들 주식의 장부단가는 3만 원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삼성생명이 상장 후 주당 10만 원만 넘어도 채권단은 손실을 보전함은 물론, 8000억 원이 넘는 평가차익을 얻을 수 있다. 시장이 예상하는 삼성생명의 예상 공모가는 주당 1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이 전 회장 복귀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셈이다.

김진방 교수는 "그 동안 형식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던 삼성자동차 부채 문제가 삼성생명 상장으로 인해 말끔히 사라지게 됐다"며 "소송 자체가 무의미해지면서, 이 전 회장 복귀에 부담을 주던 요인이 제거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8년 4월 22일, 경영쇄신안을 발표하던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 그는 이 자리에서 은퇴선언을 했다. 그러나 이번 복귀선언으로 그는 이 말이 거짓이었음을 한국 사회에 알렸다. 어떠한 사전 설명도 없이. ⓒ뉴시스

외부적 의미 : 삼성공화국 재확인

무엇보다 이 전 회장이 자신있게 복귀를 선언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한국을 '삼성공화국'으로 확실히 인식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가 지었으리라고 추정되는 죄들은 거의 전부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법정에서 확인된 죄는 나라에서 사면해줬다. 이 전 회장 스스로가 자신을 한국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절대권력이라고 확신하지 않고서는 이 같이 과감한 결정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이 전 회장은 사면 이후 첫 공식 행보였던 CES에 참석해 언론을 상대로 "사회 각 분야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면 후 채 열흘이 지나지 않아서다. 스스로의 죄를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국민들에게 호통을 친 것이다.

김진방 교수는 "결국 이 회장은 '언터처블'임이 이번 복귀로 입증됐다"며 "한국 사회에서 재벌, 특히 삼성은 사회 어느 부분도 견제할 수 없는 집단임이 그간 증명돼 왔다. 이 전 회장은 이 재벌권력의 구심점"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그간 삼성으로 대표되는 재벌 권력은 여론의 견제를 받는 집단이 아니라 친재벌 분위기 조성을 주도하는 집단이었다"며 "이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음을 이 전 회장이 확인한 후 다시 전면에 나선 것"으로 해석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삼성그룹 총수일가가 결국 외부와 아무런 소통을 하지 못하는 폐쇄적 집단임이 입증된 것"이라며 "이 전 회장의 복귀를 반대하는 이들이 한국 사회에 분명히 있음에도 이들을 설득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내부적 의미 : 3세 경영승계 없다

이번 이 전 회장의 복귀로 이재용 부사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는 사실상 사라졌다는 게 삼성을 오랜 기간 지켜본 이들의 평가다.

김상조 교수는 "이 전 회장의 복귀로 증명된 건 이재용 부사장의 총수 등극은 아버지가 살아있는 한 불가능하다는 것"이라며 "이 전 회장뿐만 아니라 이학수 전 전략기획실장 등 주변 가신도 자신의 권력을 넘기는 걸 원치 않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상조 교수는 "앞으로 삼성그룹 내부 권력구도는 이 전 회장이 후계자들을 지켜보는 가운데, 3세들 간 승계경쟁이 더 가열될 것"이라며 "이 전 회장과 전 전략기획실 가신들이 경영권 다툼을 조종하면서 자기 권력을 유지해가는 불안한 과도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김진방 교수도 "일각에서는 이번 복귀를 이 전 회장이 이재용 부사장으로의 승계작업을 마무리하려는 것으로 해석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승계작업은 어차피 실권을 가진 이 전 회장이 회장자리에 오르지 않고도 가능하다. 승계를 미루기 위한 결정이 맞다"고 평가했다.

김진방 교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흔쾌히 권력을 물려준 일이 있느냐"며 "현대그룹이 그랬듯, 이 전 회장은 이번 복귀를 계기로 더욱 강력한 체제 구축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문제점은 없나

이 전 회장의 복귀가 결과적으로 삼성그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토요타 사태를 리더십의 부재로 이해한다면, 이 전 회장의 복귀가 일견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의사결정 과정 자체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만만찮다.

김상조 교수는 "삼성그룹이 이처럼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외부와 얼마나 열린 소통을 했는지 알기 어렵다"며 "삼지모 등을 만들면서 삼성 스스로가 분명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했으나, 이번 일로 그간 약속이 모두 거짓말이었음이 입증됐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또 "지난 2008년 4월 22일, 특검 수사결과가 밝혀진지 5일 후 이 전 회장을 비롯한 그룹 수뇌부는 경영쇄신안 10개 항목을 발표했다. 그 중 1~3번이 총수일가 퇴진이었다"며 "지난 12월 이미 이재용 부사장이 승진했고, 이번에는 이 전 회장이 복귀했다. 결국 2년전 경영쇄신안이 완전히 없던 일로 됐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 전 회장 복귀에 앞서 삼성그룹은 지난 2년 간 경영쇄신 약속이 이뤄지도록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리고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전 회장이 복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며 "토요타 사태 등을 핑계로 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스스로의 권력을 믿고 외부와 소통을 게을리하는 오늘의 삼성은 오히려 더 큰 위기에 빠질수도 있다고 김상조 교수는 경고했다.

그는 "이번 의사결정을 주도한 건 결국 이학수 전 부회장으로 대표되는 전략기획실 사람들"이라며 "이 전 회장이 특정 가신집단의 인의 장막에 포위돼 매우 왜곡된 정보를 갖고 폐쇄적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상조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오히려 삼성그룹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며 "토요타 사태도 결국 발생한 문제를 빨리 오픈하고 정상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폐쇄적으로 은폐하려다 커진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모든 사람은 오류 범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외부의 지적을 통해 그 오류를 체크하고 수정할 수 있는 매커니즘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과거 재벌의 위기가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일로 빚어진 게 대표적 사례다. 삼성의 문제도 극단적으로 좋은 결과와 극단적으로 나쁜 결과만 발생한다는 데 있다. 이는 이 전 회장에게도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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