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유시민 참여로 '패닉'
국민참여당 유시민 전 장관이 뛰어든 경기도가 가장 큰 요동을 치고 있다. 그동안 유 전 장관의 출사표에 무반응으로 일관해 오던 김진표 최고위원은 11일 "기호 8번의 국민참여당 도지사 후보로 기호 2번으로 출마하는 500여 명의 시장·군수, 광역·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몇 명이나 당선시키겠느냐"면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합당해 기호 2번의 깃발로 MB정권을 심판하는 것이 국민과 시대의 요구"라고 '합당'을 제안했다.
김 최고위원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가치와 정신을 계승하는 뿌리가 같은 정당이기 때문에 민주당 지도부는 줄곧 합당을 요구해왔고, 민주당 내에서도 합당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유시민 쇼크'로 인한 다급함이 역력했다.
경기지사 선거에 뛰어든 한 후보 측에 따르면 최근 실시한 자체 여론조사에서 유 전 장관은 출마 선언 직후 지지율이 단번에 20% 대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로 인해 야권에서 선두를 달리던 김진표 최고위원은 지지율이 처음으로 한 자리수로 떨어지는 등 피해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다.
김 최고위원은 "어떤 룰을 정해도 유 전 장관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했으나, '선거연합'이 아닌 '합당'을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당위성 이상의 설명은 찾기 힘들었다.
특히 민주당 지도부가 유 전 장관과 국민참여당에 가하고 있는 "한나라당 2중대냐"는 식의 비판은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뒷북', 내지는 현재진행중인 선거연합 논의에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적 반응이라는 점에서 야권 연대의 맏형격인 제1야당의 대응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 '유시민 쇼크'에 민주당이 흔들리고 있다. 왼쪽부터 유시민 전 장관, 김진표 민주당 최고위원, 이종걸 의원. ⓒ연합뉴스 |
호남, 개혁공천 갈등
'텃밭'인 호남에서의 개혁공천도 '도루묵'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당초 개혁공천의 일환으로 '시민공천배심제'를 광주시장 후보 경선 등에 도입하려 했으나, 난립한 후보들 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도입 방식조차 결론 내리지 못하고 있다.
결국 광주지역 의원들이 11일 모여 지도부와 후보들의 주장을 조율해 시민공천배심제를 도입하되 경선 반영 비율을 30~40%로 낮추는 방안을 중재안으로 지도부에 제시키로 했지만, 경선 방식이 누더기가 될 가능성만 높아졌다. 또한 '일부 인사를 배제하려 한다'는 음모론까지 돌면서 경선이 이후의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게다가 광주시의회와 전북도의회는 군소정당과 정치신인에 대한 기회 보장 차원에서 채택된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에도 불구하고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개는 바람에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의 거센 반발을 사 선거연합 논의에 재를 뿌리기도 했다.
제주, 우근민 논란 확산 일로
우근민 전 지사의 복당으로 시작된 홍역은 단지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 전 지사의 성희롱 전력으로 여성단체 등 시민사회단체가 반발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나라당의 조롱까지 사고 있다. 제주지사 경쟁자인 고희범 전 한겨레신문 사장은 우 전 지사 복당에 반대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고, 지사 출마를 원하는 김우남 의원도 당 지도부와 갈등을 겪고 있다.
당 핵심 관계자는 "정당의 제1목표는 수권이고 당선 가능성이 가장 우선 고려돼야 한다"며 "여론조사를 보면 제주도민들은 우 전 지사를 가장 원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하지만, 제주발 폭풍이 야권 전국적인 선거연합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정치적 발언을 거의 하지 않던 제주 출신의 강금실 전 장관까지 개인 성명을 통해 우 전 지사의 복당을 맹비난하고 나서면서 지도부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가뜩이나 부패, 비리, 파렴치범, 철새 정치인들에 대한 도덕적 기준이 높아지면서 '클린 공천'이 선거의 기본이 된 터라 민주당의 '묻지마 영입', '묻지마 공천'은 상상 이상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고질적인 리더십 부재
이와 같이 민주당의 지방선거 스텝이 꼬인 데에는 '리더십의 부재'가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한 중진 의원은 "시민공천배심원제를 당에서 꺼냈을 때 '괜찮겠다' 싶었는데, 하려면 전국적으로 해서 일관된 룰이 적용되게 해야지, 여기 찔끔 저기 찔끔 하니까 여기저기 모두가 불만 아니냐"면서 "이렇게 복잡해서는 국민들의 관심도 끌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주류 대 비주류의 갈등으로 파생되고 있다. 이종걸 의원, 이계안 전 의원 등은 국민참여경선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고, 비주류 연대체인 '민주연대'도 이날 성명을 통해 "당원과 국민이 참여하는 역동적 경선을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당 지도부의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불만이 누적돼 있어 언제 폭발하지 모른다. 5명의 선출직 최고위원 중 김진표, 안희정 등 2명이 이미 출마를 선언했고, 송영길 최고위원도 '인천시장' 출마설이 나오고 있다. 이들이 경선 룰을 의결해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공천심사위원회 구성도 주류 중심으로 돼 있다는 점에 비주류 측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황이다.
비주류 측 인사는 "최고위에 박주선, 공심위에 우윤근 의원이 있지만, 이들 혼자서 뭘 할 수 있겠느냐"며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아 뭐라 할 수 없지만, 경선방식 결정에 따라 한 차례 크게 맞붙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주류 측에서는 "당헌과 당규에 따라 민주적 절차를 거치는 것인데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경선하자고 생떼를 쓰는 것 아니냐"며 "결과도 나오기 전에 정략적으로 반대부터 하고 보는 것은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발하고 있다.
야권 리더십도 부재
'5+4' 협의체에서 정책 합의 사항을 발표하는 등 야권연대가 순항하는 것 같지만, 곳곳에 갈등 요소가 잠복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우근민 복당'은 아직 '비난'과 '경고'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우 전 지사가 민주당 제주지사 후보로 선출되면 선거연합 붕괴의 균열점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광주·전북의 '선거구 쪼개기'에도 진보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민주당 지도부의 리더십 발휘를 촉구하며 시정을 요구했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지방의회 일이라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만 일관했다.
또한 정세균 대표가 아닌 김 최고위원이 기자회견을 열어 '당 대 당 합당'을 제안한 것도 의아한 대목이다. 김 최고위원은 "나도 지도부의 일원이고 지도부 모두 국민참여당과 합당해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것"이라고 말했지만, 합당 대상에 대한 예의라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민주당이 이와 같이 흔들리는 것은 그동안의 주류 대 비주류의 갈등이 '해소'가 아닌 '봉합'으로 일관해왔기 때문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게다가 지방선거 직후에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좌우할 수도 있는 전당대회가 배치돼 있어, 각 세력간 사활을 건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번 지방선거를 너무 낙관적으로 봤다"는 지적도 있다. 한 중진 의원은 "당 사람들은 믿고 싶어하지 않는 분위기인 것 같은데 어쨌거나 이명박 대통령은 꾸준히 지지율을 40%를 넘기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안이하게 보기 때문에 자꾸 무리수(우근민 복당)를 두거나 나쁜 상황(호남 선거구 쪼개기)을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패권주의'도 한 몫 하고 있다. 김진표 최고위원이 유시민 전 장관의 출마에 반발하며 '기호 2번 프리미엄'까지 언급하고 나섰는데 이는 5+4의 야권 선거연합 논의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김 최고위원은 "국민참여당과는 합당하되 정강과 정책이 다른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는 합당이 어려우니 5+4 정신을 통해 해결하면 된다"고 했으나, 사실상 "도지사 후보가 기호 2번이 아니면 경기도 지역 500명의 기초 후보가 어려워진다"는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제1야당 패권주의로도 읽혔다.
'5+4' 협의체에 참여하고 있는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시민사회나 진보야당이 전체적으로 왜소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가끔 민주당을 보면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태도를 보일 때가 많다"며 "민주당은 '희생을 강요한다'고 강변하지만, 민주당이 양보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민주당 내부 갈등은 이번 주말을 전후로 경선방식이 정해지며 한 차례 태풍이 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이라는 더 큰 파고를 '정세균 리더십'이 넘을 수 있을 것인가 현재로선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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