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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현주소 보여준 '대의원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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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민주노총의 현주소 보여준 '대의원대회'

새 위원장에 조준호씨…전비연 추대 부위원장 후보는 낙선

21일 충남 천안시 상록리조트에서 열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민주노총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줬다.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담론 수준에서 이어지고 있는 민주노총 위기론이 그 실체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날 대의원대회에서 표출된 민주노총의 현주소를 장면 별로 구분해 정리했다.

***#1.대의원대회는 싸움판?**

본대회에 앞서 열린 사전행사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의 축사가 있었다. 권 의원은 민주노총의 초대 위원장이었다. 권 의원은 민주노총의 현재 모습에 대해 '선배 노동운동가'로서 갖고 있는 간단치 않은 고민을 축사에 가득 담아 냈다. 다음은 그 중 일부다.

"최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다른 때와 다르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오늘도 어느 때보다 많은 제도언론이 빠지지 않고 왔습니다. 여러분, 왜 그런지 알고 있습니까? 언론은 대의원대회가 제대로 되는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대의원대회가 단결투쟁을 외치면서 비정규직 투쟁을 얼마나 힘차게 결의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의원대회가 또다시 파행으로 끝나지 않는가를 보기 위해서 왔다는 말입니다."

대의원대회가 또다시 정파 간 갈등을 노출하며 파행 운행돼 일부 언론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섞인 발언이었다. 이런 우려는 근거 없는 노파심만은 아니었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2월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조합원들 사이에 주먹다짐이 오가며 난장판이 벌어지는 초유의 사태를 일반인들에게 보여줬다. "보수언론들의 민주노총 죽이기"라는 말이 핑계로만 들릴 정도로 민주노총의 치부를 스스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지난 10일 열린 정기 대의원대회에서도 비록 주먹다짐은 없었지만 정파 간 갈등이 노출되며 대회가 유예돼 1년 전 '악몽'을 그대로 떠올리게 했다.

이날 대의원대회에서도 정파간 불신과 대립은 여전했다. 하지만 대의원들 사이의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공개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물리적 충돌은 민주노총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각 정파들이 몇 차례 학습한 덕분일 뿐이었다.

***#2. "대회 장소 못 구하면 여의도에 천막이라도 쳐야지…"**

권영길 의원은 이어진 발언에서 민주노총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에 대해 말했다. 80만 조합원을 가진 1500만 민중의 대표조직이라는 민주노총 인사들의 구호가 현실에서 얼마나 수용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발언이었다.

"(대의원대회의) 장소를 구하기가 힘들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언제부터 민주노총이 그렇게 됐습니까? 어떻게 만든 민주노총입니까? 민주노총을 건설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동지들이 목숨을 던졌습니까. 정권과 자본의 칼질에 죽어가지 않았습니까?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합니까? 바로 민주노총 자신입니다."

실제로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 장소를 섭외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실무를 담당했던 민주노총 사무총국 관계자들로부터 "민간기관에서는 어디서도 장소를 빌려주지 않는다"는 푸념섞인 목소리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급기야 여의도 공원에 대형 천막을 치고 대의원대회를 치르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오기도 했다.

***#3. 미숙한 회의와 토론 문화 …"이것은 다수파의 횡포다"**

"의장, 발언 그만하라고 하세요", "표결합시다, 표결!"

대의원대회가 진행되던 중에 이같은 발언들이 심심찮게 터져나왔다. 일부 대의원들이 발언권 부여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의장(남궁연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발언신청도 하지 않고 그냥 자리에 앉은 채로 발언자를 겨냥해 비난 섞인 발언들을 쏟아냈다. 이는 또한 '표결'로 갈 경우 자신이 지지하는 의견이 관철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했다.

실제로 비난 발언을 한 대의원들과 반대 입장에 선 대의원들이 발의한 안건들은 대부분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민주노총 규약과 규정에 따르면, 안건은 대의원 30명의 서명을 받으면 회의장에서 제출이 가능하지만, 대의원 절반 이상이 안건 채택에 반대할 경우에는 상정되지 않는다.

안건을 발의한 한 대의원은 "도대체 회의를 누가 진행하는 거냐"라며 "이건 다수파의 횡포나 마찬가지"라고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비난성 발언은 대체로 민주노총 내부 의견그룹 중 다수파 진영에서 주로 나왔고, 상정이 좌절된 안건을 제출한 대의원들은 대부분 소수파에 속했다.

대회가 진행될수록 다수파에 속한 대의원들의 발언에는 집단적인 박수가 터져나오고, 소수파 소속 대의원의 발언이 있을 때는 이를 저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일이 반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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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1〉
〈사진 조준호〉

***신임 위원장에 기호 2번 조준호 씨 당선**

민주노총 신임 위원장-사무총장에 조준호-김태일 씨가 당선됐다. 부위원장에는 이태영, 윤영규, 허영구, 진영옥, 김지희, 최은민 후보가 당선됐다.

개표 결과 기호 2번에 출마했던 조준호-김태일 후보조는 전체 투표자수 686명(투표율 76.85%) 가운데 350표(51%)의 지지를 받았다. 반면 기호 3번으로 출마했던 김창근-이경수 후보조는 47%인 324표의 지지를 받는 데 그쳤다.

조준호 위원장 당선자는 "민주노총의 초석을 다지고 향후 10년을 준비하는 1년을 보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선출된 민주노총 임원들의 임기는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지도부 일괄사퇴에 따른 보궐선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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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런 선거유세는 난생 처음 보네…"**

이날 대의원대회에서는 대의원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임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연설을 시작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회의 도중 식사시간이 되면 정회가 선포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이날은 별도의 식사시간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의원들은 앉은 자리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선거 입후보자들의 유세를 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선거를 주관한 민주노총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같은 회의진행과 관련해 식사시간을 주면 대회 진행이 마냥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회 마감시간을 정해 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같은 설명은 매우 궁색해 보였다.

김밥을 삼키며 유세를 듣고 있던 한 대의원은 "이런 선거는 난생 처음 봤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고, 대회장 밖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또 다른 대의원은 "어떻게 해서든지 선거만 치러보자는 심산"이라며 노골적으로 회의 진행자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이번 대의원대회가 선거 입후보자에 대한 냉철한 검증의 장이 아닌 후보자 선출을 위한 요식절차로 전락한 것은 아니냐는 생각들이 이들의 불만 속에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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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2〉
〈사진 구권서〉

***"민주노총, 너무 실망입니다"**

신임 임원 선출 절차가 마무리되자 정회가 선포됐다. 소란스런 분위기 속에 스피커에서는 실망감이 잔뜩 배인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전국비정규연대회의(전비연) 구권서 의장이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비정규직 투쟁에 앞장서 온 전비연의 구 의장은 이번 임원선거 결과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했다. 전비연이 조직적으로 추대했던 이남신 부위원장 후보가 낙선했기 때문이다. 구 의장은 이 후보의 낙선을 '정규직 대의원들이 전비연을 외면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구권서 의장은 "해도 너무한 것 아닙니까? 대의원 여러분, 너무 실망스럽습니다"며 "아무리 정파선거라고 하지만, 이렇게 외면해도 되는 겁니까"라고 말했다. 구 의장은 대회장 밖에서 더욱 격하게 이번 선거결과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다른 안건 논의할 때는 보이지도 않던 대의원 50명이 갑자기 선거할 때 나타난 거 모르는 것 아니다"며 "선거할 때만 나타나는 게 민주노총의 참모습이냐. 해도 너무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정규직 투쟁을 하자는 것이냐 말자는 것이냐"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민주노총 규약에 따르면, 부위원장은 모두 7명(일반 부위원장 4명, 여성 할당 부위원장 3명)까지 선출할 수 있다. 대의원 각각에게 7표가 주어진다. 투표 결과 과반수(재석인원 기준)를 득표한 후보자만 부위원장으로 당선 된다.

예컨대 입후보자 중 5명만 과반수를 득표할 경우 부위원장은 5명이 되고 정원에서 남는 2명의 부위원장 자리는 공석이 된다. 모두 9명(일반 부위원장 후보 5명, 여성 할당 부위원장 후보 4명)이 부위원장 후보로 출마한 이번 선거에서 과반 득표자는 6명이었다. 따라서 신임 부위원장은 총 6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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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선거결과 나오자 마자 대의원대회 유예**

임원 보궐선거가 마무리된 직후인 22일 새벽 2시 경 대의원대회는 전격 유예됐다. 선거가 끝나자 다수의 대의원들이 자리를 뜨면서 성원미달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해 사업에 대한 평가와 결산 승인 △조직혁신안 승인 △올해 사업계획과 예산 승인 등의 주요 안건들이 이날 대의원대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신임 위원장으로 선출된 뒤 의사봉을 넘겨받은 조준호 위원장이 취임 직후 한 일은 본의아니게 "대의원대회가 성원 미달로 유예됐다"고 선언하는 것이 돼 버렸다.

한 대의원은 "이럴 줄 알았지만 해도 너무 한다"며 "위원장만 새로 선출하면 뭐 하냐"라고 동료 대의원들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또 다른 대의원은 "일반 조합원들이 선거에만 열을 올리는 대의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10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대의원대회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사무총국 사람들은 장시간 회의 진행으로 지친 표정을 지으며 장내정리를 하기에 바빴고, 선거에 승리한 선거운동본부 측과 지지자들은 뒷풀이를 하기 위해 인근 음식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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