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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성이 문화 소비의 주도자일까?

[김작가의 음담악담] 남녀문화탐구생활, 근대와 탈근대의 경계

직업의 특성상 거의 매주 크고 작은 공연을 관람하게 된다. 그런데, 갈수록 현상들이 나타난다. 여성 관객의 비율이 계속 높아지는 것이다. 모던 록이나 포크 등, 이른바 여성 취향의 음악은 물론이거니와 한 때 남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하드 코어 공연의 경우도 갈수록 여성 관객의 비중이 는다. 실제로 인터파크나 티켓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콘서트의 남녀소비자 비율도 절대 다수로 여성 관객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여성 관객의 비율이 80%이상을 차지하는 공연에서 남자 관객들은 대부분 여성 관객의 남자친구에 불과하다는 말이 농담만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어디 공연뿐인가. 영화관에 가도 마찬가지다. 최근 제작되는 많은 영화들이 남성 관객보다는 여성 관객들을 겨냥하고 있으며, 실제 극장에서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도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있는 게 사실이다. TV드라마, 라디오, 출판, 전시, 연극, 뮤지컬 등에서도 여성들은 남성을 제치고 강력한 소비집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이라 여겨지던 스포츠 시장에서도 여성의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대체로 여성 관객의 비중이 높았던 농구나 배구뿐만 아니라 프로 야구 경기장에서도 삼삼오오 응원을 벌이고 있는 여성관중의 모습을 보는 건 더이상 낯설지 않다.

▲대중음악 공연장의 지배자는 여성이다. 그러나 그들을 지배하는 이는 남성 뮤지션인 경우가 많다. 그랜드민트 페스티벌을 참관하며 열광하는 여성 관객들의 모습. ⓒ뉴시스

대중문화 주도권은 여성이 쥐고 있나

한국 뿐 아니라, 세계 어딜가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영국이나 일본의 공연장에서 마주친 관객의 성비는 남녀가 비슷한 비율로 섞여있거나 오히려 남성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 해 일본에서 라디오헤드의 공연을 봤을 때 남녀성비는 어림짐작, 7:3 정도였다. 공연을 함께 본 일본의 지인이 "오늘은 여자가 참 많네요"라며 놀랐던 대목에서 일본 남성들의 활발한 공연 관람 문화를 짐작할 수 있었다.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이 음악, 책, 영화 등 문화적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하는 모습은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기에 다소 충격으로 다가오기까지 했다.

이런 현상을 바람직하다고만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급은 수요를 좇기 마련이다. 여성들이 시장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기호에 맞는 문화 상품이 주로 출시되고 홍보의 최전선에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의 90% 이상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뮤지컬의 경우 홍보와 마케팅은 철저히 20-30대 여성을 대상으로 행해진다. 음반 및 콘서트 시장에서도 가수 섭외부터 마케팅 과정은 철저하게 여성팬들을 중심으로 기획된다. 성비에 대한 타깃이 모호한 기존의 록 페스티벌과 달리, 여성 취향의 뮤지션들이 주로 무대에 서고 진행도 여성 관객 중심으로 이뤄지는 그랜드민트 페스티벌은 시작한 지 3년만에 전석 매진이라는 성과를 낳았다. 기존의 음악 페스티벌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성공사례다. 여성들이 주로 듣는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인물이 맡는 게 당연해진지 오래다. 시장권력이 여성에게 편중되면서, 남성들은 점점 소외되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럴수록 남성들은 대중문화 소비에서 주도권을 박탈당하고, 소비에서 멀어지며, 이로 인해 남성들을 위한 대중문화상품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는 순환구조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대중문화의 주도권을 여성들이 장악한 것이 분명하지만 아이러니한 사실이 있다. 그 영역은 어디까지나 소비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소비하는 대중문화의 생산자는 대부분 남성이다. 우선 음악을 보자. 이른바 여성향의 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 대부분은 남성이다. 특히 20-30대 여성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감성적 음악의 생산자들에게서 그런 경향이 보인다. 대중문화시장의 핵심 계층인 20-30대 여성들이 선호하는 음악은 절대 다수가 남성 뮤지션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불리워진다. 아직 여류감독이라는 말이 존재하고 있을 정도로, 영화 감독의 대부분은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드라마 산업에서도 PD는 남자고 작가는 여성인 경우가 대다수다. 여성은 문화 소비와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지만, 정작 생산에서는 소외되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혹은 생산에 참여하더라도 최종 결정권과 생산권력의 정점은 여전히 남성들의 몫이다.

그 많은 남성들은 어디로 갔을까

여기서 하나의 질문을 던져보자. 문화 생산을 주도하지만 정작 소비계층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그 많은 남성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왜 그들은 대중문화를 소비하지 않는가. 이 의문을 풀고자 몇몇 집단을 상대로 인터뷰를 해봤다. 우선, 서울소재 예술대학의 시나리오 창작과 학생들을 상대로 토론 수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남학생들의 여가는 압도적으로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혼자 게임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물론 단순했다. 게임이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정복과 지배의 욕구를 게임을 통해 해소한다는 것이다. 반면 여성들의 경우 대중예술을 소비함으로써 동일시, 또는 대리만족의 욕구를 해소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즉, 문화 창작자 혹은 생산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들에게 친밀감을 느낌으로서 현실에 없는 남성성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끼고 또한 많은 동년배 여성이 소비하는 대중문화를 자신도 소비함으로써 그 집단에 속해있다는 동일시의 욕구를 만족시킨다는 것이다.

의문은 여전했다. 그렇다면 남성들은 왜 대중문화 시장에 참여하지 않는가. 답을 구하기 위해 인터넷 랜덤 채팅 사이트를 통해서 10여명의 20대 남성, 여성들과 인터뷰를 했다. 평범하게 대학에 다니면서 '스펙'을 쌓고 있거나, 일반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는 이들이었다. 대중 문화를 소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남성들은 공통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이라 답했다. 학교 다닐 때는 장래에 대한 고민 때문에 적극적으로 문화 생활을 할 여유가 없고, 직장 다니면서는 잦은 회식 및 주택 마련에 대한 고민 때문에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고민은 남성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그런데 똑같은 고민에 대해 여성들은 다른 답변을 하고 있었다. 그런 고민 때문에 오히려 대중문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소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 밝지 않은 현실을 음악,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잊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문화 생활을 통한 자기 충족을 통해 얻는 쾌감이 적지 않음을, 그들은 공통적으로 답하고 있었다.

왜 같은 상황에서 다른 행동이 나타나는 것일까. 대중문화소비에서의 성비의 불균형은 한국 사회가 근대와 탈근대의 충돌지점에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일지도 모른다. 근대의 가치는 성공이다. 탈근대의 가치는 행복이다. 성공이란 현재가 아닌 미래의 가치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욕구를 희생할 때, 성공은 이루어진다. 또한 성공은 자신이 아닌 남의 시선에 의해 부여되는 가치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혹은 안정적 중산층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33평 이상 아파트와 중형차는 자신의 만족보다는 타인과의 비교를 위해 추구되는 기호다. 하지만 행복은 현재의 가치다. 여기에 미래를 향한 고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타인의 시선도 개입할 여지가 없다. 오직 지금 자기 자신을 만족시킴으로서 발현되는 가치다. 그리고 많은 대중문화 상품은 그런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다.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기호품으로 존재한다.

근대와 탈근대, 음울한 문화시장

아직 한국 사회의 무의식에 뿌리내리고 있는 가부장 제도는 남성들을 근대의 가치에 옭아매고 있다.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짊어지게 될 가장으로서의 굳건한 지위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해야한다는 당위를 요구한다. 즉, 성공이라고 하는 근대적 가치가 대다수 남성들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반면 가부장 제도, 또는 성공에 대한 책무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여성은 대중문화 소비를 통해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대중문화, 즉 예술이 근대 이전부터 여성들의 교양으로 여겨져 오기도 했던 점도 여성의 대중문화 소비에 있어서 무의식적 동인이라 볼 수 있다.

▲지난 10월 10일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두산-SK 3차전의 시구자로 나선 걸그룹 소녀시대의 윤아. 남성들의 대중문화 소비 행태가 줄었다고 하지만 이 역시 단언하기 어렵다. 걸그룹 열풍의 근원에는 성인 남성들의 열광이 있었다. ⓒ뉴시스
그러나 남성은 오직 근대를, 여성은 탈근대를 살고 있다는 암울한 이분법적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 성공보다는 행복을, 즉 탈근대적 욕망을 추구하는 남성들 또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대중음악계 최대 화두였던 걸 그룹 센세이션이 대표적인 사례다. 계속 지적했다시피, 남성들은 대중문화를 소비하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에 '걸 그룹은 안된다'는 게 지난 몇 년의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폭발적 인기, 그리고 올 한 해를 장식했던 걸 그룹들의 성공사례는 그런 인식이 변화의 지점에 있음을 보여준다. '남자가 무슨...'이라는 기존의 인식이 무색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증거인 것이다.

그들의 성공이 20대와 30대, 혹은 그 이상 남성들의 관심과 지지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라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IMF 이후 그리고 현 정부하에서 전통적인 남성성, 혹은 가부장주의가 급격히 몰락하고 또한 위협받는 현실에서 남성들의 무의식 또한 탈근대로 넘어가고 있음이 최근의 대중문화 시장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긍정적과 부정적, 어느 쪽의 배경에서 기인하는 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그런 흐름 자체는 당연한 일이다. 근대와 탈근대가 부딪히면 역사가 흐르는 방향은 자명한 법이니까. 이미 근대/탈근대 논쟁이 어느정도 정리된 서구 사회에서 대중문화 시장의 성비가 균형을 이룬다는 건 그런 흐름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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