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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간의 민노당 지도부 선거…무엇을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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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간의 민노당 지도부 선거…무엇을 남겼나

[기자의 눈]퇴행적 정파대립…네거티브 선거전만

민주노동당은 최근 정치권의 '유령당원' 논란에 "차떼기당이나 차비떼먹기당이나 마찬가지"라고 공격을 가했다. '진성당원'이란 말을 한국정치무대에 처음 등장시켜 '기간당원' '책임당원'이라는 아류작이 나오게 했다는 자부심이 가득 찬 비판이었다.

하지만 당 대표-사무총장-정책위의장 등 당 3역과 최고위원 등 지도부를 일괄 선출하는 민노당의 '큰 선거'를 보름간 지켜본 느낌은 민노당이 어느 새 기존 정당의 구태를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손색이 없는 당대표 후보들, 그러나…**

지난 5일부터 19일까지 전국을 훑은 당직 후보들은 20일부터 닷새간 진행되는 투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 대표 후보들의 면면은 나름대로 화려하다.

진보정당 소속 첫 구청장을 지내며 행정경험을 쌓았고, 진보정치 1번지라고 불리는 울산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됐다가 석연치 않은 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전 의원(조승수), 학출(대학생 출신) 노동운동가의 대명사 격으로 30년을 현장에서 버티며 민주노총 금속연맹 위원장을 지낸 도당대표(문성현), 운동권 동료들이 기성 정치판으로 몸을 옮길 때에도 진보정당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헌신한 외곬수(주대환)까지 누구 하나 빠질 것 없는 후보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후보들이 판을 짠 선거는 그다지 훌륭해 보이지 않았다. 유령당원이다, 장외투쟁이다 하며 우울한 소식만 정치권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상황, 멋진 선거를 펼치기만 하면 박수 받을 판국인데 민노당은 왜 이런 좋은 기회를 제대로 못 살렸을까.

***이슈는 없고 네거티브 선거전만**

가장 큰 이유는 진보정당다운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노당의 고질병인 '정파갈등'을 의식해서인지 실제로는 각 정파를 대표해 나온 후보자 대부분이 '정파갈등 해소'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통합과 조정"이 과도하게 강조된 탓에 선거 운동 기간에 "상대 후보도 다 훌륭하신 분", "우리 셋 중 누가 당을 이끌어도 잘 이끌어 나갈 것"이라는 주례사식 유세가 횡행했다. 후보 간 차별성이 강조되고 각자의 대안이 치열하게 경쟁되지 못하고 두루뭉실한 이야기들만 오가는 선거가 관심을 끌리는 없다.

물론 수면 위에서 유유자적하는 백조의 발이 물밑에서는 맹렬히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정파갈등 해소'라는 공약과 별개로 물 밑에서 각 정파는 '네거티브'한 방향으로 실력을 발휘했다.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 것이 선거 초반 쟁점으로 떠오른 조승수 후보의 '법적 자격' 논란이다.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조 후보가 피선거권이 없기 때문에 대표로 당선돼도 법적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취지의 중앙선관위 공문이 나오자 논란은 더 커졌다.

'조승수 구하기'에 전 당력을 동원했고 의원직을 박탈한 법원의 판결을 격렬히 규탄한 민노당에서 이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른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다른 후보 진영에서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해 문제를 더 키웠다는 후문을 보면서 더욱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경남 도지사 후보로 나서는 문성현 후보가 당 대표 후보로 나서는 게 맞느냐는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내용인즉 "당직-공직 분리 규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세 후보 모두 '당직공직 분리 제도'가 비현실적이며 삭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런 난타전을 관통한 논리는 각 정파가 평소 내세우는 이념이나 정책이 아니라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것뿐. 기존 정당과 '다름'을 강조한 민노당 선거에서 그들이 비판하는 '보수 정당'의 구태가 똑같이 재연된 셈이다.

***진보적 의제 공론화도 실패**

정파 갈등 수준에도 못 미친 '흠집내기'가 이슈라면 이슈로 등장한 사이에 후보 간 정책과 비전의 차별성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북한 인권 문제 등 국한된 분야에서 다소 이견을 보였지만 비정규직 문제, 양극화 문제, 지방선거 문제에서는 대부분의 내용이 대동소이했다. 굳이 민노당이 아니어도 한국 진보진영이 제출할 수 있는 원론적 모범답안 수준이었다는 얘기다. 모든 유세와 토론에서, 모든 후보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빼놓지 않았음에도 반향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이에 따라 비록 시청율이 낮은 시간대에 편성됐다지만, 텔레비젼과 라디오 토론까지 따낸 기회는 진보적 의제의 사회적 공론화로 이어질 리 만무했다.

차라리 원론적 대안만을 반복하기보다 고공투쟁으로 쟁취한 노사정 협약까지 배신당한 현대 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사측 앞에 절망하는 하이닉스 매그나칩 비정규직 노조 노동자들을 찾아가는 '실천력'을 보여주는 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의원단에겐 선거기간이 휴가기간이었나?**

8만 당원의 지지와 음지에서 고생하는 당직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스타의 반열'에 오른 의원들에게도 아쉬움이 남는다.

원내와 원외를 기계적으로 구분하고 있는 '규정'이 의원들의 방관을 해명할 수 있을까? 대중적 영향력이 남다른 의원이 직접 나서면 관심은 그에 집중되고 정작 선거는 뒷전으로 내몰릴 것을 우려해서였을까?

의원단이 적극적으로 진보정당 지도부 선출의 의미를 해석해내고, 이를 대중적으로 홍보하는 '치어리더' 역할을 솔선수범했더라도 이 정도까지 대중적 무관심으로 선거전이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진보 자민련' 될 수도…**

대표 후보들은 모두 "2012년 집권 전략은 사실상 무리"라고 인정했다. 민노당이 2004년 총선 13% 득표 직후 호기롭게 내놓았던 그 목표는 실현 가능성 없음이 확인된 셈이다.

목표를 현실화 못 시킨 것을 탓하자는 게 아니다. "이러다가 '진보 자민련'으로 전락하는 게 아 아닌지 걱정된다"는 어느 당직자의 자조처럼 지난 1년 6개월 간의 '하향곡선'에 대한 절박감, 긴장감을 이번 선거에서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닷새 뒤, 누군가는 민노당의 공식적인 간판으로 선출된다. 또한 누군가는 새 대표와 함께 민노당의 2기 지도부를 꾸리게 된다. 지방선거와 대선 등 굵직한 정치일정이 이들 앞에 놓여 있다. 과연 '총체적 위기'를 돌파할만한 추동력과 전략을 가지고 지도부 선거에 임했는지, 새 지도부는 축하받기에 앞서 반성문부터 제출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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