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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의 복직'과 '2년만의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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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의 복직'과 '2년만의 해고'

1980년대와 다르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현장

***정초에 복직한 박영제 씨**

박영제(48) 씨는 2일 옛 직장인 한진중공업에 복직했다. 1986년에 해고된지 무려 20년만이다.

그는 20대 총각이던 지난 1981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공장)에 입사했다. 하지만 그는 불과 6년 만인 1986년 6월 해고됐다. '대의원 대회를 다녀와서'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배포했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박 씨에게 노조 유인물을 배포한 데 대해 경위서를 요구했고, 그가 거부하자 해고 통지서를 보냈다. 해고사유는 '회사의 명예 실추'와 '상사의 명령 불복종'이었다.

복직기회는 조금 더 일찍 찾아올 뻔했다. 민주화 항쟁이 거세던 1987년 한진중공업 노조가 어용노조에서 민주노조로 탈바꿈할 때였다. 하지만 한진중공업 사측은 "대한조선공사에서 해고된 사람까지 고용승계할 수 없다"며 박 씨의 복직을 거부했다.

그 뒤 1988년부터 박 씨는 노동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최근 민주노총 부산본부 총무국장에서 물러날 때까지 부산지역에서 노동운동을 끈질기게 했다. 그렇게 18년이 흐른 뒤 다시 박 씨에게 복직의 기회가 찾아왔다. 2003년 10월 고 김주익 노조위원장이 자결한 것을 계기로 회사 측이 해고자들에 대해 단계적 복직을 노조에게 약속했기 때문이다. 박 씨의 복직은 직장후배이자 노동운동 후배인 김 위원장의 목숨 값이었던 셈이다.

***재계약 거부된 최우정 씨**

이처럼 20년만에 복직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해 첫날부터 회사에 나가지 못한 사람도 있다. 최우정(40) 씨는 지난해 12월 31일을 끝으로 계약해지 됐기 때문이다. 2004년 6월에 울산 현대모비스 사내 하청업체 '현일기업'에 입사한 그는 노조활동이 빌미가 돼 재계약 되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재계약 거부는 해고 통보와 다르지 않다.

그는 지난해 9월부터 회사 측에 미운 털이 박혔다. 불합리한 임금체계와 노동조건에 대해 최 씨가 문제제기를 도맡아 하게 되면서 회사 측과 크고 작은 갈등을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탄압'은 그가 노조활동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부터다. 최씨는 2004년 6월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에 가입했지만 노조활동을 공개한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그는 10월부터 모두 4차례 경고장을 받았다. 경고장에는 △노조 조끼 착용 △노조 유인물 배포 △작업지시 불이행 등이 경고사유로 적혀 있었다. 노조원으로서 노조 조끼를 착용하고 노조 유인물을 배포한 것이 취업규칙 위반이고 불법 쟁의행위라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었다. 경고장이 쌓이자 회사 측은 지난해 28일께 "사규위반 행위가 수 차례 이어지고 경고를 받았던 만큼 계약을 갱신하기에는 근태가 불량하다는 것이 회사 입장"이라고 적힌 계약해지 통보서를 최 씨에게 보냈다.

계약해지 통보서에는 이밖에도 "업무평가 결과 부족한 부분이 많다"며 업무능력에도 문제가 있음을 적시했지만 최 씨는 "노동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계약해지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최 씨는 계약해지 통보를 받기 며칠 전 회사 측 노무사로부터 전화를 받기도 했다. 어차피 계약해지될 테니 위로금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최씨는 이런 제의를 계약해지 때문에 문제 삼지 말아 달라는 취지로 받아들여 거부했다고 한다. 실제로 최 씨를 만났던 박 모 노무사는 "비정규직 문제가 너무 시끄럽기도 하고 해서 회사 쪽에서 조용히 일(계약해지)을 마무리하려고 만났다"며 "또한 최 씨가 재개약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위로금이라도 주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는 최선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최우정 씨는 노조활동을 했다고 계약해지되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기간제 노동자가 아무리 파리 목숨이라고 하더라도 단지 기간이 만료됐다고 해서 재계약을 거부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최 씨로서는 더욱 억울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최 씨는 3일부터 출근투쟁에 들어갔다. 또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도 할 계획이라고 한다.

***1986년과 2006년의 차이는?**

박영제 씨가 복직한 일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반대로 최우정 씨가 재개약이 거부된 일은 안타까운 일이다. 둘 다 노조활동이 해고의 이유였다. 박 씨의 경우 노조활동 자체가 정부로부터 반사회적 행위로 지목되던 군사정권 시절에 있었던 일이라지만, 최 씨의 경우는 노조활동이 보장된다고 하는 민주화된 민간정권 아래서 일어났다.

보통 노조가 강하거나 노동자가 정규직일 경우 노조활동의 이유만으로 해고되는 일은 사실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노조가 없거나 있더라도 힘이 매우 약한 비정규직의 경우는 여전히 사용자로부터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음을 최우정 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 최우정 씨의 출근투쟁이 얼마나 오래 이어져야 그가 박영제 씨처럼 복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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