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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선거제도 개혁을 가능케 하는가?

[정치개혁 강좌]<8> 공익정치기업가의 출현과 범야권 '제도연합'

<희망정치연구회>가 진행 중인 정치개혁 특강을 연재합니다. <희망정치연구회>는 정치제도개혁에 관한 정치, 사회, 법률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설립된 민간단체입니다. <프레시안>은 정치개혁, 제도개혁을 연구해 온 학자들의 전문적인 강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구성해 게재합니다. 글과 함께 하단에 있는 '강의 듣기' 서비스를 통해 생생한 육성 청취도 가능합니다. 첫번째 정치개혁 특강을 맡은 최태욱 한림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강의는 8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뉴질랜드의 예에서 확인한대로, (정략적 개편이 아니라면) 선거제도의 개혁은 국민의 요구가 효과적으로 표출되고 그것이 정치적으로 잘 집약될 때만이 달성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국민이라고 하는 조직되지 않은 거대 집단은 개혁 요구의 표출과 집약을 스스로 효과적으로 해내지 못한다. 누군가가 나서서 개혁의 필요성을 널리 알려 개혁 여론을 조성하고, 그렇게 동원된 여론을 하나로 결집하며, 또한 그것이 실제 정치과정에 투입되도록 하는 등의 일련의 역할을 맡아줘야 한다. <7>편에서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을 영미 정치학계에서는 '정치기업가'(political entrepreneur)라고 통칭한다는 사실을 언급한 바 있다.

정치기업가의 개념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상세히 다루겠지만, 실제로 이 정치기업가의 존재는 선거제도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제도나 정책의 개혁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디서건 목격할 수 있다. 뉴질랜드 선거제도 개혁의 경우에서는, <7>편에서 본대로, 제프리 파머와 같은 노동당의 소수 개혁파 의원들, 왕립위원회, 시민단체인 ERC, 소정당들로 구성된 선거연합체, 그리고 일부 정론지 등이 이 정치기업가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1993년에 선거제도 개혁을 단행한 일본의 경우에도 물론 정치기업가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오자와 이치로와 같은 자민당의 개혁파 의원들, 재계 지도자들, 정치개혁 시민단체인 '민간정치임조' 등이 대표적이었다. 한국의 선거제도 개혁도 바로 이러한 정치기업가들이 등장해줘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왜 그렇다는 것인지 그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자.(주1)


▲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활동 모습 ⓒ뉴시스

개혁의 어려움과 그 원인

말 그대로의 '민주'국가라면 거기서의 정책은 당연히 일반시민과 유권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돼야 한다. 또한, 대다수 시민들이 기존의 정책이나 제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할 경우, 정부는 마땅히 개혁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정부를 구성하는 정치인들은 본질적으로 '주인'인 시민들의 '대리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당연한 듯한 정치과정이 민주국가 모두에서 언제나 자연스레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실제로는 어느 민주국가에서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소수의 특정 이익집단들이 소위 기득권층을 이루어 일반시민들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커다란 정책혜택을 즐긴다. 다시 말해서, 수많은 정책과 제도들이 (일반시민들의 희생 하에) 소수 기득권 세력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민이 주인이어야 할 민주국가에 이러한 불공평과 불합리가 만연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흔히들 다음 두 가지를 그 원인으로 지적한다.

첫째는 일반시민들의 정치정보(political information) 부족이다. 대다수 시민들은 정책과 제도에 대하여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 현재 어떠한 정책이나 제도로 인하여 자신이 얼마만큼의 손해를 보고 있는지, 어떠한 정치제도가 사회의 불공평을 구조화하고 있는지, 드러난 문제의 해결책과 대안은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그 해결책을 어떻게 실현해갈 수 있는지 등등에 대하여 정작 민주국가의 주인들인 시민들은 잘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선거에 참여하면서도 그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자신의 귀한 표를 던져야 하는지에 대하여 확신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기껏해야 지역 이기주의에 편승하거나 이미지 혹은 정서에 사로잡혀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낭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까닭이다.

반면, 소수 기득권층들은 엄청난 양의 정치정보를 보유하고, 그것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사익(私益) 추구행위를 효율적으로 수행해간다. 대기업이나 전문직 단체들 그리고 기타 경제적 이익집단들은 상시로 정치정보를 수집, 분석, 활용하는 것을 그들의 주요 업무로 삼고 있다. 이러한 구도 하에서 민주국가의 정책결정과정은, 말하자면, 잘 아는 극소수와 무지한 대다수와의 정책 게임에 다름 아니다. 정책이나 제도의 내용과 효과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언제 누구에 의하여 어떻게 결정되는 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반시민들이 그 모든 것들을 미리 알고 계획하고 대처해갈 능력이 충분한 소수 기득세력들을 이기기란 매우 어려운 일인 것이다.

둘째는 조직의 결여이다. 규모가 큰 집단과 작은 집단 간의 정책게임은 (다른 변수가 일정하다면) 통상 소집단의 승리로 돌아간다. 민주국가의 경제규제 정책들이 많은 경우 절대다수인 소비자의 희생 하에 극소수에 불과한 특정 생산자집단 혹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것은 집단의 규모가 클수록 올슨(Mancur Olson)이 지적한 소위 '집단행동의 문제'(collective action problem)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 집단이 구성원들의 공동이익을 위해 어떠한 정책목표를 설정했을 때,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는 개개 구성원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입법안의 마련에 참여한다든가, 서명을 한다든가, 거리 캠페인에 동참한다든가, 혹은 회비를 납부하는 등의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대집단의 경우 이러한 협조를 효과적으로 확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구성원들의 수가 많은 까닭에 개개인들은 자기가 아닌 다른 이들의 협조만으로도 그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자신은 (기여 없이) 그저 그로 인한 혜택만을 즐기면 된다는, 말하자면, 무임승차를 하겠다는 경향을 쉽게 갖게 된다. 그렇다고, 대집단의 경우, 각 개인의 협조를 강제할 적절한 수단과 방법을 마련하기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까닭에 결국 대집단의 집단행동은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채 중단되곤 한다. 이것이 집단행동의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집단의 조직화를 통해 상당 정도 해결할 수 있다. 위계질서나 하부그룹 구조 등을 설치함으로써 대집단을 기능적으로 소집단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의 세부기능을 잘 이용하면 구성원들 간의 견제와 감시, 억제와 조장, 보상과 문책 등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일반시민들이라는 거대집단을 생각할 경우, 조직을 통한 이러한 해결책의 한계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시민 전체를 시민 스스로가 과연 어떻게 효과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겠는가. 결국 조직되지 못한 대집단으로서의 일반시민들은 조직된 소집단인 기득권층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존의 정책이나 제도의 변화가 특정 이익집단의 기득권을 폐지 혹은 축소시키는 한편 일반 시민들의 권익이나 복지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경우를 개혁이라 정의할 때, 우리는 이상에서 왜 민주국가에서의 개혁이 어려운 지를 살펴본 것이다. 한 마디로 정보와 조직의 비대칭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수 이익집단들은 정치정보에 밝은 것은 물론 그 조직도 잘 정비돼있는 반면, 일반시민들은 정책이나 제도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하며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효과적인 행동을 위한 조직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시민들과 유권자들은 언제나 희생과 불이익만을 감수해야 하는가? 반드시 그러한 것만은 아니다. 정치기업가의 개입은 '사익축소-공익증대'라는 개혁을 가능하게 한다.

'공익정치기업가'와 개혁의 성취

우선 <7>편에서 중단했던 'political entrepreneur'의 우리말 번역에 관한 고민을 계속해보자. 직역하면 물론 정치기업가이다. 그러나 정치기업가로는 원 개념의 의미 전달이 제대로 안 될, 아니 심지어는 왜곡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우선 '정치'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는 '뭔가 정치적인'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읽히기 십상이다. '기업가'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의 사적 이익만을 위해 사업을 벌이는 사람이라고 오인되기 쉽다. 그러나 원 개념은 이렇게 부정적이거나 사익추구적인 의미의 것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의 것이다. 의미 전달을 위해서는 (비록 단어가 좀 길어지기는 하지만) '공익정치기업가'라는 번역이 적절한 것으로 여겨진다.(주2) 그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공익정치기업가는 한 마디로 조직되지 못한 일반 대중들에게 그들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공재(public goods)를 제공함으로써 일정한 대가를 얻는 사람이다.(주3) 여기서 '공공재'란 공익에 합치하는 정책 혹은 제도의 개혁이라 정의할 수 있다. 또한 '일정한 대가'는 공익정치기업의 행위자가 누구냐에 따라 선거에서의 표(정치인일 경우), 사회적인 명예 혹은 신뢰(사회 활동가나 시민단체 등의 경우), 성취감이나 보람(학자나 언론인 등의 경우) 등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공익정치기업가는 일반시민들에게 유리한 정책이나 제도가 채택되도록 노력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고유의 유익을 구하는 정치행위자라고 할 수 있다.

경제의 영역에서도 기업가란 단순히 돈만을 목적으로 사업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개념이 아니다. 물론 물질적 이윤을 기업행위의 대가로 받긴 하지만, 기업가는 (일반 사업가와는 달리) 소비자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아내어 그 상품을 개발·제조하고 광고를 통해 널리 판매함으로써 결국 소비자 복지 증대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기업가 정신'이라고 할 때 거기서 강조하는 것은 창조나 창안 그리고 사회적 기여 의식이지 이윤추구가 아니지 않는가. 이 개념을 빌려올 때 우리는 정치의 영역에서 이러한 정신을 갖고 일하는 사람을 공익정치기업가로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공익정치기업가는 일반시민들의 복지 증대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나 제도 개혁 이슈를 개발해내고 알림으로써 그들의 선호를 결집시키며, 정책결정과정에서 시민들의 이익을 대변함으로써 그들이 원하는 정책이 수립되도록 노력한다.(주4) 그 대가는 상기한 대로 다양하다. 예를 들어, 정당 정치가들이 이러한 공익정치기업가의 역할을 수행할 경우 그들은 정치적 지지를 대가로 하여 일반 유권자들에게 개혁이라는 공공재를 "팔고"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주5)

공익정치기업가의 구체적 역할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정치정보의 제공과 확산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일반시민들의 정치적 무능은 일차적으로 정치정보의 부족 때문이다. 시민들이 정책이나 제도에 관하여 무지한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생업에 종사하며 일상의 희로애락을 감당해야 하는 일반인들 중에 (자신들의 삶과 복지에 치명적이지 않는 한) 정치정보를 애써 수집하고 이해하기 위해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정책이나 제도의 문제점, 개혁을 위한 대안, 그리고 개혁의 복지효과 등의 정치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시민들을 일깨우고 그들의 개혁요구를 결집시키는 것이 공익정치기업가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다. 다른 하나는 조직되지 못한 데에서 오는 일반시민들의 정치적 약점을 해결해주는 일이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공익정치기업가가 여론을 동원하여 그 구심점 역할을 맡음으로써 조직적인 집단행동을 하지 못하는 시민들을 대신하여 정치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줄 유능한 공익정치기업가(들)의 등장은 선거제도의 개혁도 가능한 일이 되도록 한다. 전편에서 보았듯이 뉴질랜드에서 바로 그리 되었고, 미완의 개혁이긴 하지만 어쨌든 일본의 선거제도 개편도 나름의 공익정치기업 행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과연 누가 선거제도의 개혁을 위한 공익정치기업가로 나서 줄 것인가?

한국의 선거제도 개혁과 공익정치기업가

<7>편에서 언급한대로, 기존의 정치제도 하에서 기득권을 획득·유지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대부분은 자신들의 미래를 불확실하게 할 수 있는 현 제도의 개혁에 부정적이거나 미온적이다. 정치인들 스스로가 제도개혁에 합의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선거제도의 개혁은 시민들로부터의 강력한 사회적 압력을 요하는 일이다. 한국 선거제도의 개혁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시민사회단체들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그들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공익정치기업가로서 앞장서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 역량이나 열정 등을 감안할 때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마땅히 기대를 받을 만한 정치 혹은 정책 행위자이다. 만약 그들이 적극 나서서 일반시민들에게 현행 소선거구제도의 문제점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그 대안으로서 존재하는 독일식 비례대표제 등은 어떻게 도입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새 제도를 도입할 경우 구체적으로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에 어떠한 개혁 효과가 나타날는지 등에 관한 정치정보를 효율적으로 제공한다면 선거제도에 대한 시민들의 개혁 의식과 개혁 여론은 상당히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상승된 개혁 여론을 시민단체들이 다시 자신들의 조직력을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동원할 때, 그것은 분명히 정치권에 대한 유의미한 개혁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미 2000년 총선 당시 소위 '낙천·낙선운동'을 통해 정치개혁을 위한 그들의 열망과 여론동원 능력을 충분히 보여준 바 있다. 이제는 개개 의원들의 자질 문제보다 더 구조적이며 근본적인 제도 문제에 총 역량을 집중할 때가 왔다. 개혁 환경도 매우 좋다. 현직 대통령이 국회의 단독 다수당을 이루고 있는 여당에 대하여 선거제도 개혁의 추진을 주문하고 있지 않은가. 시민사회단체들이 개혁 지향적인 언론과 지식인 그룹 등을 총 망라하여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소위 '공익정치기업체'(political enterprise)를 구성한다면, 그리고 거기에 유능한 개혁파 정치인들까지 가세해준다면 선거제도의 개혁 가능성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질 것이다.

개혁파 정치인들과의 협력이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인이 아닌 민간 공익정치기업가의 경우 실제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데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책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구체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정당과 정치인들의 고유 권한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오직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정책결정과정에서 시민의 개혁 요구를 대변 혹은 대리할 수 있는 정치가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상기한 공익정치기업체는 성공적인 개혁을 위해 시민사회단체들과 정치인들이 상호간의 협업을 (공식 혹은 비공식적으로) 체계화한 조직체로 정의할 수 있다. 전편에서 본 뉴질랜드의 ERC나 일본의 선거제도 개혁에 혁혁한 공을 세운 '민간정치임조'도 일종의 공익정치기업체라 할 것이다.

사실 정치인 특히 정당 지도자가 공익정치기업가로 나선다면 그 효과는 민간의 경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아진다. 그들은 이미 확보하고 있는 대중적 인지도나 정치 조직 등을 활용하여 정치정보를 누구보다 쉽고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다. 더구나 그들은 개혁 여론의 구심점 역할은 물론 그것을 정치과정에 연결시키는 일도 스스로가 직접 해낼 수 있다. 일본의 경우에서도 오자와 이치로 등과 같은 집권 자민당의 개혁파 의원들의 활약을 빼놓고는 선거제도 개혁의 성공 요인을 제대로 논할 수 없다. 여론을 동원하고, 그것을 등에 업은 이들 개혁파 정치가들의 공익정치기업가적 주도가 없었더라면 그 당시 일본의 개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7>편에서 본 바와 같이 뉴질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제프리 파머와 같은 대정당 소속 정치가들과 여러 소정당 지도자들의 협업은 개혁 성공의 핵심 요인이 되었다.

한국의 경우에서도 개혁파 정치가집단이 부상하여 하나의 세력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지역할거주의와 보스주의를 타파하고 정책과 이념 중심의 정당정치 활성화를 갈망하는 한국의 정치가들은 여전히 상당수에 이른다. 그들은 모두 한국적 상황에서는 선거제도의 개혁이 정당정치 활성화의 필수 요건임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이미 독일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당론으로 삼고 있다. 민주당의 여러 의원들도 비례성을 높일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 방안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식 요청을 전후하여 한나라당에서도 개혁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물론 만약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비례성이 충분히 보장되는 선거제도 개혁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이를 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작정한다면 그 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야당들도 이에 반대할 까닭은 없다. 그러나 그리 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 제도의 최대 수혜집단이 바로 한나라당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나라당의 선거제도 개혁 논의는 여러 방안이 난무하는 가운데 흐지부지 될 공산이 크다. 그 경우 제대로 된 선거제도 개혁은 역시 야당 정치인들이 중심이 되어 수행돼야 한다.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독일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포함하여 비례성을 충분히 높일 수 있는 구체적인 선거제도 개혁안을 중심에 놓고 진정성을 가진 개혁파 정치가들이 소속 정당을 초월하여 하나의 개혁 집단을 형성하는 것이다. 아니면 상기한대로 시민사회단체가 주도하는 공익정치기업체에 정당 혹은 정치인들이 개별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우선은 비례대표제에 대한 선호도가 높기 마련인 그리고 당론을 쉽게 정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과 같은 정책/이념 지향의 소정당들이 뉴질랜드에서와 같이 선거제도의 개혁을 공동목표로 하는 선거연합을 선도적으로 형성하고 여기에 민주당 혹은 그 일부 세력이 합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는 소위 '진보개혁세력 연대'가 선거연합의 형식으로 구축되는 셈이 된다.

지금으로선 민주당의 입장이 애매한지라 과연 이러한 연대 형성이 가능할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그것은 매우 폭발력 있는 움직임이 될 것이다. 2012년은 대선과 총선이 같이 치러지는 해이다. 만약 민주당이 소정당들과 뜻을 함께 한다면 집권 혹은 19대 국회 구성 이후 공동으로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한다는 조건으로 연합 전선을 구축하여 2012년의 총선과 대선에서 상호 협력할 수 있다. 일종의 '제도연합'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경우 선거제도 개혁 이슈가 한나라당과의 대척점 중의 하나로 부각되면서 진보·개혁 정당들의 차별화가 명확히 이루어질 수 있다. 진보·개혁 정당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것은 선거제도의 개혁을 통하여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거대 지역 정당의 과도대표 문제를 해소하며, 정책 중심의 정당정치를 활성화함으로써 다원화된 한국 사회에 부응할 수 있는 선진적 정치구조의 형성이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강조할 수 있다. 반면, 이에 맞서는 한나라당은 '개혁 대 반개혁'이라는 선거구도에 직면하여 수세에 몰릴 수 있다. 여론만 제대로 동원된다면 제도연합 세력은 선거제도 개혁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앞세워 당면한 선거정치에서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고, 그 결과로 실제의 선거제도 개혁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2012년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남아있다. 선거제도 개혁의 중요성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인식은 제도연합 세력이 이 기간 동안 노력한 만큼 확산될 것이다. 잘만하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 기간 동안이면 일본이나 뉴질랜드의 예에서처럼 범국민적인 정치개혁 시민단체 연합 등과 협력하여 정계는 물론 학계, 노동계, 재계, 언론계 등의 참여를 촉진함으로써 선거제도개혁을 하나의 국민운동으로 발전시켜갈 수도 있다. 개혁 여론이 상당 수준에 오른 상태에서 다음 총선을 맞이할 경우 제도연합 세력은 그만큼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리라는 것이다.

주1) 성공적인 개혁을 위한 정치기업가의 개입 필요성에 관해 서술한 아래 두 항은 2007년 4월 12일 프레시안에 게재된 필자의 미래전략연구원 칼럼, "한미 FTA 문제, '공익정치기업가'에 달렸다"에 부분적으로 수록된 내용이다. 독자의 편의를 위해 여기에 중복 서술했음을 밝힌다.

주2) 공익정치기업가로 번역할 것을 제안하신 백낙청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감사드린다.

주3) Norman Frohlich, Joe Oppenheimer, Oran Young. Political Leadership and Collective Good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1), p. 57.

주4) James Wilson, "The Politics of Regulation," in James Wilson, ed., The Politics of Regulation (New York: Basic Books, 1980), p. 370.

주5) Barbara Geddes, Politicians Dilemma: Building State Capacity in Latin America (Berkeley and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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