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인 '화합과 통합'이 민주당에 대한 등원압박으로 돌아오자 민주당 지도부가 발끈했다. 한 마디로 김 전 대통령의 높은 뜻을 정부여당이 국면 전환용으로 오남용하는 적반하장이라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 영결식 후 24일 오전 처음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인 이는 안희정 최고위원이었다.
"이 정권의 '화합과 통합' 얘기 가증스럽다"
안 최고위원은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3개월만에 우리는 위대한 민주주의 지도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내야 했다"며 "노 대통령은 원망도 미움도 갖지 말라고 했고, 김 대통령의 서거를 놓고 화합과 통합을 말하지만, 이 이야기를 이명박 대통령 본인이 말하면 안 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안 최고위원은 이어 "경우에 없는 말씀이다. 토끼몰이 하듯이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더렵혀 자결에 이르게 한 정권이고, 자기 몸의 절반을 잃은 고통 속에서 후퇴한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벽에 대고서라도 욕을 하고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던 김 전 대통령"이라면서 "이 정부가 화해와 통합을 말하는 것은 정말 가증스럽다"고 격분했다.
송영길 최고위원도 "이명박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에서 화합과 통합이 시대정신임을 강조했는데, 이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용산참사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하고, 더 이상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정권의 역사를 부정하는 말이 더 이상 나와선 안 된다"고 말했다. 송 최고위원은 "허언이 되지 않도록 조치가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표 최고위원은 김 전 대통령이 이규성 전 재경부 장관, 이헌재 전 금감위원장 등의 인물을 중용한 예를 들며, 탕평인사·화합인사를 강조하며 국정기조 전환을 촉구했고, 박주선 최고위원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마련된 남북 화합 계기를 살리기 위해 "체면과 자존심 운운하며 조건을 붙여선 안 된다"고 주문했다.
정세균 대표와 박지원 정책위의장은 이날 회의에서 김 전 대통령의 유지는 "민주주의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관계 위기 극복"이라는 김 전 대통령의 '3대 위기론'을 강조하며 '민주개혁세력의 통합과 연대'를 제1과제로 못 박기도 했다.
"여권이 진정성 있는 행동 먼저 보여야"
성토대회를 방불케 한 이날 지도부의 강경 발언 배경에 대해 우상호 대변인은 "통합과 화해의 분위기는 환영하지만, 이 문제가 자칫 현재 여야 간, 혹은 정부와 국민 간에 놓여 있는 수많은 갈등과 현안이 다 없던 일처럼 치부돼서는 안 된다는 지도부의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우 대변인은 이어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화합과 용서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수십년간 투옥, 탄압, 고난의 역사를 걸었던 김 전 대통령의 정치역정에서 존재했던 수많은 갈등 세력과 한 자리에 모여 과거의 상처를 치유했다는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정부와 여당은 이를 보면서 현재의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영결식이 끝나자마자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안상수 원내대표가 대화 공세를 펴고있고, 김형오 의장도 9월 정기국회 개원 압박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은 '대화 제의의 진정성이나 성의가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우 대변인은 "대화 제의는 환영하지만 언론법 문제 등 그동안 여야 교착상태에 이르게 한 수많은 현안에 대해 납득할 만한 양보안을 제시하는 것이 전제"라며 "이것을 두고 장외로 쫓겨나온 야당이 해결해야할 문제인 것처럼 접근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얘기"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3개월이 넘었는데,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이나 정부, 여당이 이에 대해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으면서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어물쩍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여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진정 화합과 통합을 원한다면 얄팍한 정치공세가 아니라 진정성이 담긴 행동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민주당이 당장 국회에 등원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 핵심 당직자는 "등원론을 펼치는 의원들이 20% 정도 있고, 국정감사 등 9월 정기국회에서 민주당이 야당으로서 유리한 점이 분명히 있지만 지금 아무런 소득 없이 국회에 들어가는 것은 지지자들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우상호 대변인은 "이번 장례기간 중 우리가 맞이한 수많은 문상객과 국민들에게서는 보다 더 국민과 서민의 편에서 분명하고 야당답게 투쟁하고 활동하라는 요구가 훨씬 많았다"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