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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이 민주노총을 살린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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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이 민주노총을 살린 것 아닌가?

[기자의 눈] 한국노총이 더 솔직하게 보이는 이유

비정규법안을 둘러싼 논란의 종착역은 양대 노총의 공조체제 파기로 보인다. 지난해 9월 정부가 비정규법안을 입법예고하자 노동계는 유례없는 단결과 연대를 보였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이렇게 되는 데는 한국노총이 제출한 '최종안'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지만, 동시에 민주노총의 대책 없는 '원칙론' 고수도 한몫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노총의 최종안 제출과 민주노총의 공조파기 공식화**

양 노총간 공조의 파기는 한국노총이 비정규법안에 대한 노사 당사자간 교섭이 결렬된 직후인 지난달 30일 독자적인 '최종안'을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이 '최종안'은 기존의 노동계 안보다 많이 후퇴한 것일 뿐만 아니라 '최종안' 그대로 입법된다고 해도 '비정규직 보호'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매우 의문시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앞서 기자는 지난달 28일경 한국노총 최종안의 가안을 입수해 내용을 검토할 기회를 가졌다. 당초 예상보다 너무 많은 양보가 담긴 최종안 가안을 보면서 기자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지만, 이와 동시에 '최종안'이 불러올 노동계 내부의 분열과 파장이 우려되기도 했다.

민주노총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보여왔던 전국비정규연대회의를 비롯해 '원칙론'적 입장에 서있는 조직이나 단체가 한국노총의 최종안에 대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더라도, 과연 1년여 동안 노사 당사자간 교섭 혹은 노사정 교섭에 참여해왔기에 '협상의 지형'을 잘 알고 있는 '민주노총'의 입장이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민주노총은 그 답을 지난달 30일 한국노총이 최종안을 공개한 직후 '논평'을 통해 내놓았다. 이 논평은 "한국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저버렸다. 노동자에게 남은 길은 오직 투쟁뿐이다"라는 등 격한 비판의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동안의 협상 지형에 대한 고려는 없고 오로지 원칙적인 관점에서 한국노총의 최종안에 대해 강한 비판을 가하는 내용이기도 했다.

***11월 마지막 주에 노동계는 어떤 카드를 갖고 있었나**

11월 마지막 주에, 다시 말해 국회의 입법논의가 임박한 시점에 노동계가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았다. 이는 노사 당사자간 교섭에서 합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낮았고, 교섭이 결렬될 경우 노동계의 기존안 관철이 요원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노동계가 취할 수 있는 방식은 단 두 가지 뿐이었다. 하나는 협상과정에서 제출했던 내용보다 더 원칙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협상결과를 전면 부정하며 '총파업' 등 전면적인 실력투쟁에 나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원칙을 다소 훼손시키더라도 정부안 수준의 통과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해 노동계가 양보안을 제출해서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양 노총이 서로 다른 길을 갔고, 또한 민주노총의 '무책임함'도 이 대목에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한국노총은 노동계 기준안에서 상당히 후퇴된 내용이 담긴 '최종안'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후자를 선택했다. 반면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 대립각을 세우며 총파업에 돌입하는 등 전자를 택했다. 비정규직 법안의 입법운동의 막바지 갈림길에서 양 노총이 정반대의 길을 걸어간 셈이다.

***민주노총, 스스로를 한번 돌이켜 보자**

하지만 이번 사태의 전후과정을 살펴보면 민주노총이 이번에 보여준 행보는 비판받아야 할 지점이 더 많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민주노총은 지난 1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연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1일 총파업 결의대회 이후 국회의사당 진격투쟁에서는 최근 들어 보기 힘들었던 대나무 막대기까지 출현하는 등 격렬한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강력한 실력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민주노총의 실력투쟁은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파업 참여율이 10%를 채 넘지 못했고, 그마저도 사회적 파급력을 갖는 완성차 공장의 노조는 아예 참여도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비정규직 법안을 놓고 벌어지는 노사정 간의 관계를 역전시킬 수 있는 실력투쟁은 없는 것이다.

문제는 12월 초의 이같은 무기력한 모습이 예기치 못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파업 찬반투표가 진행되던 11월 내내 민주노총 간부들 사이에서 "이번 총파업은 성사되기가 매우 힘들다"는 자조 섞인 토로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민주노총은 전면적 실력투쟁과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의 선택이라는 두 개의 카드 중 '전면적 실력투쟁'이라는 중요한 카드를 처음에는 꺼내 들지 못했다. 지금 진행되는 각종 투쟁 속에서 "연내에 (노동계 기존안을 골자로 하는) 비정규직 권리 입법을 쟁취하자"라는 구호가 공허하게 들리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공허한 구호는 이제 그만**

하지만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이 최종안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공세적 입장으로 돌아섰다. 집회 연사들은 매번 한국노총의 최종안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으며, 언론 기고에서도 한국노총과 대립각을 세웠다.

이런 비판 속에는 은연 중에 '민주노조 운동'의 본령이라는 자부심이 베어 있겠지만, 실상 민주노총 지도부가 그 자부심만큼 사업과 운동을 진행해 왔다고 보기에는 어딘가 미심쩍은 데가 많다.

사회를 바꾸기 위한 운동은 그 자체에 힘겨움이 많다. 정답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역량이 부족해 분루를 삼킬 수도 있다. 하지만 운동은 대중을 기만하지 않는 지도부의 솔직한 태도에서 희망을 이어갈 수 있다.

스스로의 한계를 솔직하게 시인하며,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현장 단위부터 '원칙'에 충실한 운동을 대중에게 보여줄 수는 없을까? 실력은 담보되지 않으면서 '연내 비정규직 권리 입법 쟁취'라는 식의 대책 없는 원칙론을 강변하는 것만이 지도부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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