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역사상 최고치인 5억1230만 톤의 식량 수확을 정점으로, 중국의 식량 생산량은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3년 이후 다시 성장하는 추세이지만 아직도 식량문제는 중국, 나아가 세계의 커다란 골칫거리 중 하나이다.
중국 정부가 농업발전에 큰 역점을 두는 이유다. '삼농(三農)'정책으로 요약되는 중국 농업정책의 골자는 거시적 접근과 시스템화이다. 농촌사회를 큰 틀에서 변화시켜나가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가족형 농업을 기계화·산업화하고 있다. 베이징(北京) 등 중국의 핵심부보다 러시아에 더 가까운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북동부의 베이다황(北大荒)은 중국 농촌의 변화를 보여주는 산증인이다.
<프레시안>을 비롯해 <시사인> <위클리경향> <이데일리> <한겨레> 등 국내 주요 매체는 지난 8월 3일과 4일, 이틀에 걸쳐 '중국의 식량창고'라 불리는 북만주 일대 베이다황을 찾았다. 중국은 이 거대한 황무지(大荒)를 약 60년에 걸쳐 개간, 남한 면적의 2/3에 달하는 재배지에서 8000만 명의 인민이 1년 내내 먹을 수 있는 양곡을 생산하고 있다. 베이다황의 성장은 한국 농업에 시사점을 제시하는 동시에 거대한 위협요인이 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한국에 기회이자 위기인 것처럼. <프레시안>은 두 차례에 걸쳐 베이다황의 역사, 현황과 전망을 소개한다. <편집자>
▲중국에서도 대부분 농촌은 아직 가족농 형태다. 베이다황은 예외다. ⓒ베이다황집단 제공 |
중국식 농촌 개혁의 상징
베이다황은 지역 명이자 상하이 증시 상위 50대 우량주인 베이다황집단(北大荒集團)의 기업명이기도 하다. 재배면적만 5만4400여㎢(헤이룽장성의 12.9% 차지)에 달하는 거대한 땅 전체가 한 기업의 관리 하에 있다. 남한 면적(9만9000여㎢)의 절반을 넘는 크기다.
4일 오전, 취재진은 러시아 국경 40㎞ 지점 지엔싼장(建三江) 지역에 자리잡은 치싱(七星)분국을 찾았다. 헤이룽장성의 성도(省都)인 하얼빈(哈爾濱)시에서 560㎞가량 떨어진 곳으로 베이다황집단이 거느린 9개 분국 중 하나이다. 이곳은 지난 1968년부터 개발이 시작됐다.
베이다황집단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시허빈(奚河滨) 베이다황농업고분공사(베이다황집단 산하 농업부문 계열사) 총경리(사장)는 "'5+1전략(우유, 보험, 무역, 쌀, 대두 등 5개 제품 매출을 각각 100억 위안까지 끌어올리고 기업 브랜드가치도 100억 위안을 달성한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회사의 브랜드가치는 이미 100억 위안을 넘었다"고 말했다.
▲치싱분국의 논. 한국은 쌀 수입국이다. 한국인이 먹는 쌀(자포니카)을 대량생산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중국이다. ⓒ손문상 |
하얼빈에서 버스로 약 6시간을 달리자 도로 양편에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옥수수 밭이 눈에 들어왔다. 베이다황에서는 주로 쌀, 보리, 콩, 밀, 팥, 옥수수 등이 생산된다. 밭 사이사이에 심어놓은 방품림 옆으로는 조그마한 도랑이 곳곳에 있다. 그룹 관계자는 "지하수가 차가운 탓에 대지로 미리 끌어올려 따듯하게 만든 후 사용한다"고 전했다. 이 지역은 겨울이면 영하 30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진다.
취재진은 쌀농사를 짓는 농민 장징훼이(張景會) 씨의 집을 찾았다. 그는 650무(1무는 약 660㎡)의 땅에 벼농사를 짓고 있다. 연수입은 약 30만 위안(최근 환율 기준으로 1위안은 약 170원). 중국 농가에서는 중상위 수준의 소득이다.
중국 정부는 삼농정책의 하나로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본뜬 '신농촌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농민의 소득을 보전해주고, 생활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핵심이다. 베이다황은 대표격이다.
▲베이다황에서 주로 경작하는 쌀 '공육131'. 지역 풍토에 맞도록 개량된 품종이다. 붉은색이 고스란히 중국을 연상시킨다. ⓒ손문상 |
다만 계획적 곡물 재배를 위해 농민이 재배할 작물, 재배품종, 비료를 치는 기간과 양 등은 모두 국가에서 관리한다. 농기계 역시 관리는 당국이 맡는다. 한국처럼 금융지원에 힘을 쏟기보다 실제 농사에 필요한 정책이 중심이다. 장징훼이 씨는 붉은 색을 띄는 쌀 '공육(公育)131' 품종을 재배한다. 영양분 함량을 늘리고 추운 날씨 적응력을 높인 개량 품종이다. 이 지역에서 수확하는 쌀의 80%를 차지한다.
농촌개혁은 대형화·첨단화로
이어 들른 곳은 농업연구과학센터(현대농업과기원). 국가적으로 각종 곡물과 채소, 과일의 품종개량을 주도하는 곳으로 지난 2004년 설립됐다. 중국식 농촌 개혁의 싱크탱크라 할 수 있다. 연구원 30여 명이 근무한다.
연구소로 들어가니 높이가 1m 남짓해 일반 품종의 절반에 불과한 수수(고량)가 자라고 있었다. 연구소 관계자는 "수수 높이가 낮아져 낱알이 바람에 흩날리지 않아 수확량이 늘어난다. 무엇보다 농기계로 수확이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했다. 품종개량의 주목적 중 하나가 농업의 기계화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품종을 개량한 수수(고량). 대량수확을 위해 만들어진 품종이다. 이 모두가 인공의 힘이다. "친환경"이라는 회사 관계자의 말이 어쩐지 공허하게 들린다. ⓒ손문상 |
이곳의 화상회의실은 단순히 회의 목적으로만 이용되는 게 아니다. 인공위성으로 각 농장에 심은 곡물의 각종 정보를 받아 비료를 뿌릴 시기와 양, 영양정보, 필요한 물의 수준 등을 전부 통제한다. 농민들은 인터넷으로 재배품종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연구소 데이터베이스에 올린다. 1만무 당 1명씩 있는 기술요원이 이 과정을 돕는다. 각 분국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품질은 일정하게 유지된다.
날씨의 한계도 인공의 힘을 빌려 극복한다. 110~120일 가량의 무서리 기간이 필요한 까닭에 벼는 35일간 온실에서 기른 후 파종한다. 북쪽 지방이라 따듯한 날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일 역시 마찬가지다. 온도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헤이룽장성 농업임업대학 학생의 도움으로 농민들은 포도와 토마토, 수박, 멜론 등을 기른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농업기술을 몸에 익히고 농민들은 지식을 얻는다.
비마저 인위적으로 조절한다. 세계적 수준의 인공강우 기술을 보유한 중국은 베이다황 곳곳에 위치한 기계관리소에 고사포를 마련해 놓았다. 비가 필요할 경우 약품을 발사해 물을 얻기 위해서다. 항공기로 비를 내리게도 할 수 있지만 비용부담이 커 자주 이용하지는 않는다.
중국 정부는 아예 이 지역에 농촌도시를 만들고 있다. 곳곳에 흩어져 사는 농민들을 집단 거주지로 이주시키는 게 핵심이다. 거주지를 모으면 자연스럽게 도시가 커지고, 위생관리, 거주민관리 등에 투입되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한국의 '새마을운동'처럼 베이다황 일대 농민들의 거주지를 현대화하고 있다. ⓒ손문상 |
기존 마을을 현대화하는 작업도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친더리분국의 7개 관리소 중 하나가 자리한 마을 한 곳은 통일된 외관의 집들이 허름한 농가를 대체해 지어지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농민들은 평균 300무 정도의 임대토지에서 연간 9만 위안 정도를 번다. 바로 인근에는 아직 작지만 상가와 시장이 들어서고 있었다. 지난 60년이 농지 개척에 쏟아 부은 시간이었다면, 앞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이곳은 점차 도시화되어갈 것이다.
다가오는 식량전쟁의 열쇠?
이 '거대한' 인공의 통제로 생산되는 각종 작물은 철저히 고급화를 추구한다. 취재기간 내내 관계자들은 '녹색식품'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녹색식품은 농약 잔류량 기준이 일반적인 수확품보다 더 엄격한 것으로, 농약을 아예 치지 않는 유기물과는 다르다. 주로 유기농 비료를 쓴다고 그룹 관계자는 밝혔다. 아직은 재배물의 90% 이상을 국내에서 소비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유럽 등 검역 기준이 엄격한 나라로의 진출도 용이하다. 베이다황이 '고급 농산물 수출국'으로서 가능성을 시험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베이다황집단은 안내책자에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으로 베이다황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뻗어나가는 그림을 삽입해 놓았다.
일본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베이다황의 농가들과 계약재배로 콩을 들여오고 있다. 이곳에서 가능성을 찾는 한국의 기업도 있다. CJ가 주인공이다. CJ는 지난해 7월 30일 합작계약을 맺어 현미유와 미강단백질 등을 생산할 베이다황CJ식품과기유한책임공사(이하 베이다황CJ)를 출범시켰다. 총투자비용은 2억1000만 달러이며 지분은 베이다황집단과 CJ가 51대 49로 나눠가진다. 경영은 CJ가 맡는다.
김장훈 베이다황CJ 총경리는 "이 정도 대규모 농장에서 고품질 쌀을 얻을 수 있는 곳이 태국이나 필리핀에는 없다"면서 "장기적으로는 'CJ농장'도 운영 가능하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현미유는 유전자변형농산물(GMO) 생산이 이뤄지지 않고, 소화흡수율도 높아 대두유보다 고품질·고가 원료이다. 국내 농업의 고급화 목소리가 높지만 이미 중국은 고품질 농산물 시장에서도 한국을 잠식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지에 동행했던 한국 측 인사들도 이런 점을 염려했다. 중국 동북부 지방 전문가인 한인희 대진대 중국학과 교수는 "CJ와 손을 잡을 때 베이다황 쪽에서는 'CJ라고 특별할 것도 없다. 경영노하우를 배우기만 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적은 지분을 가진 CJ에 경영권을 넘겨준 데 대해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며 "앞으로 어떤 식으로 중국이 나올지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총경리도 "기술유출을 막는 게 중요하다"며 "아직 이 지역(베이다황) 사람들이 순수하지만 만일의 경우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본 보건후생성은 지난해 10월, 이곳에서 수입한 냉동 강낭콩에서 기준치의 3만4500배에 달하는 농약 디클로르보스(dichlorvos)를 검출해 관리에 들어갔다. 식품의 질이 우수하다는 현지 관계자들의 말을 온전히 믿기에 '중국 식품'에 대한 불신의 벽은 아직 높다.
중국의 지도자급 인사들은 이곳을 꼭 찾는다. 취재진이 베이다황으로 가던 길에는 대만의 롄짠(連戰) 전 국민당 주석이 이곳을 방문했다. 아직 베이다황은 중국 사회 내부에 가지는 의미가 더 크다. 하지만 앞으로 식량의 가치가 점차 높아질 경우, 이곳은 한국에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될 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든.
▲대규모 기계화 농업과 친환경 작물 생산. 중국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자찬한다. 베이다황집단 관계자는 "이미 베이징, 상하이 등에서는 친환경 식품에 대한 수요가 많다. 당연히 그 수요에 맞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아직 중국 먹거리에 대한 세계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베이다황집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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