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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뿔났다"

[복지국가SOCIETY] 제주도지사 주민소환과 풀뿌리 민주주의

2009년 7월 15일 제주특별자치도 선거관리위원회는 김태환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 청구 요지를 공표했다. 지난 6월 29일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가 제출한 주민소환투표 청구서와 주민들의 서명부를 검토한 결과, 5만1044명의 서명이 유효하여 주민소환투표 청구가 적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제주도 내의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강정마을회 등은 주민소환운동본부를 결성하고, 올해 5월 14일부터 도민들을 상대로 제주도지사 소환을 지지하는 서명을 받아왔다. 서명운동이 시작된 지 6일 만에 서명인 수가 1만 명을 넘어섰고, 불과 40여일 만에 청구 요건(지역 유권자의 10%)인 4만1694명을 훌쩍 넘긴 7만7367명의 서명을 받으리라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주민소환투표 청구는 피소환자의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경우에만 할 수 있는데, 김 지사에 대한 청구 시한은 6월 30일이었다. 법적으로 보장된 서명운동 기간인 120일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기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민소환투표 청구가 적법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주민소환투표 청구 명부의 서명자는 성명은 물론 주민등록번호까지 써야 하고, 주소 역시 주민등록상에 있는 주소로 집의 번지, 아파트의 경우 단지명과 동 및 호수까지 정확히 적어야 하는 등 통상적인 서명을 받는 것과 달리 명부 작성이 매우 까다롭다. 또, 서명이 끝난 후에는 누구나 서명인 명부를 열람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제주도와 같은 좁은 지역에서는 지역사회의 특성상 서명인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을 안기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광역자치단체장에 대한 소환 요구가 최초로 받아진 것은 제주 지역사회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큰 파장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 되었다.

▲ 제주도 강정 마을 해군 기지를 추진하려는 김태환 제주도지사의 주민소환투표 추진이 진행 중이다. ⓒ뉴시스

제주도는 정부 혹은 관 주도의 정책 추진으로 여러 차례 홍역을 겪어왔다. 주민소환을 요구할 정도로 도정과 도민 사이의 긴장이 격화된 것은 주민소환운동본부가 소환 청구 사유에서 밝힌 것처럼 주로 강정 마을에 추진되고 있는 해군 기지 문제 때문이다.

"특히 김태환 지사는 해군 기지 추진과정에서 주민 갈등 문제 등에 대한 해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정부와의 기본협약(MOU)체결도 제주의 이익과 미래에 오히려 역행하는 방향으로 나갔으며, 도민의 대의기관인 도의회도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는 등 독선과 무능으로 일관하고 있어 이를 심판하고자 함."

해군 기지 건설 논란은 1993년 12월 제주도에 새로운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해군본부의 주장으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화순, 이후에는 위미로 기지 건설 예정지가 바뀌게 된 것에서 보는 것처럼,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격렬하였다. 그런데 2007년 4월 강정마을회에서 돌연 해군 기지를 유치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하였고, 김 지사가 강정 마을의 기지 유치 결정에 개입하였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마을은 찬반 양론의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었다. 마을 총회 결과 해군 기지 유치 결정을 발표했던 마을 회장이 해임되었고, 또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투표에서는 반대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자연 부락 유권자 1200여 명 중 725명 투표하여 반대 680표, 찬성 36표, 무효 9표).

하지만 그해 12월 국회에서 해군 기지 건설 예산 174억 원이 통과되었다. 이후, 해군과 제주도정의 군사 기지 설치를 위한 행보는 거침이 없었고, 제주도 출신 국회의원들의 문제제기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제주도지사는 올해 4월 27일 국방부와 일방적으로 제주 해군 기지와 관련한 기본협약서(MOU)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제주도정의 행태에 대해 제주도의회조차 "굴욕적인 기본협약서를 인정할 수 없다"며 "제주도민의 대의기관인 도의회를 무시하고 기본협약서를 체결한 제주도지사는 사과하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해군 기지를 반대하거나 주민소환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제왕적 도지사"의 행태, 즉 도정이 도민들의 의사에 반하여 독선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2006년 7월 '특별자치도'로 변경된 이후, 제주도에서는 기초자치단체인 기존 4개 시·군(제주시, 서귀포시, 북제주군, 남제주군)과 시·군의회가 모두 폐지되었고, 현재는 두 개의 행정시(제주시와 서귀포시)와 도의회만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시·군을 없애 행정 구조를 간편화함으로써 행정을 효율화하고자 한 것이 오히려 도지사의 독선과 아집으로 도정이 잘못 운영될 경우, 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행정 장치를 없애버린 셈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그러므로 이번 주민소환은 제왕적 도지사의 독선을 막고 풀뿌리민주주의를 지켜낼 마지막 제도적 장치인 것이다.

주민소환 운동이 일어난 이후, 제주도의회는 '제주특별자치도 각종 협약 등의 체결에 관한 조례(안)'을 제출하였다. 조례(안)에 따르면, 주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주는 사항, 주민의 재산권 행사에 심각한 제한을 주는 사항, 자치입법의 재·개정과 관련된 사항, 주민의 복리·안전 등에 커다란 영향을 비치는 사항, 그밖에 제주도의 각종 정책 사업 등과 관련해 도지사가 필요로 하는 사항의 각종 협약 체결 등에 대해 도의회에서 의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이미 체결한 협약이라도 이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거나, 상대방이 고의나 과실로 성실히 이행하지 않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을 경우 지체 없이 도의회에 보고하고, 의회의 의견을 들어 파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조례(안)가 통과될 경우, 제주도가 제주 해군 기지 건설과 관련하여 국방부와 체결한 기본협약서도 그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은 이번의 주민소환운동으로 얻은 하나의 성과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통과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광역단체장 주민소환인 제주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 청구가 이루어지기까지 몇 가지 쟁점들이 제기되었는데, 여기서는 두 가지 정도를 살펴볼 것이다. 첫 번째 쟁점은 국책 사업을 수행하는 것이 해당 단체장의 소환 사유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김 지사는 "주민들이 중요한 국책 사업인 해군 기지 건설 추진 문제를 소환의 명분으로 삼았다"며 "그런 주관적인 소환이야말로 명백한 권한 남용"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이명박 대통령도 7월 1일에 열린 지역투자박람회에서 "국책 사업을 집행하는 지사를 주민소환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전국의 광역 시·도지사들도 이에 대해 유감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렇다면 국책 사업은 해당 주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독단적으로 진행되어도 좋다는 근거가 있는가? 해당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에 불구하고 국책 사업인 해군 기지 건설을 위해 도지사가 국방부와 MOU 체결을 강행한 것은 풀뿌리민주주의에 부합한다는 것인가? 주민소환운동은 도지사의 이러한 독단을 풀뿌리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 것이다.

두 번째 쟁점은 주민소환 자체가 지역사회의 갈등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전직 도지사, 교육감 등으로 이루어진 제주 사회 원로들의 모임에서는 지난 6월 5일 "해군 기지 후보지 선정 과정이 썩 매끄럽지 않았다는 점을 알고 있으나, 주민투표를 실시할 경우 갈등은 봉합되기 어려울 것이고, 주민투표로 누가 이기든 패자에게는 영원한 아픔을 남길 것"이라며, 양측이 한발씩 양보하여 대화로 해결하고, 주민소환을 위한 서명운동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또 임기가 1년 밖에 남지 않았는데, 다음해에 표로 심판하면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주민소환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갈등 양상을 표출한 것이며, 이 상황에 이르기까지 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가 수없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주장은 결국 갈등을 적당히 덮고 넘어가자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여기엔 생소한 주민소환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주민들에겐 주민소환이라는 생소한 제도가 엉클어진 실타래를 푸는 것이 아니라 단지 뭉텅이를 잘라내어 또 다른 상처를 남기는 것으로만 여겨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에 익숙해져서 통상적인 선거에서의 투표행위는 권리이고, 이를 통해 당선자와 낙선자로 나뉘는 것은 당연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주민소환을 통해 이미 선출된 공직자를 낙마시킨다는 것은 인정상 할 수 없는 일로 여기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에 제주에서 진행되고 있는 주민소환운동을 지켜보면서 풀뿌리민주주의의 소중함과 함께, 이것이 현재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이것을 반드시 지켜내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다는 절박함을 느끼게 되었다. 현재 제주의 조건에서는 주민소환제도가 풀뿌리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그만큼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주민소환'의 요건이 현실을 고려했을 때 너무 까다롭다는 것이다.

지난 2006년에 치러진 제주도 행정구조개편을 위한 주민투표의 참여율은 36.76퍼센트였다. 모든 행정력이 동원되고, 대대적인 홍보활동이 이루어졌으며, 투표당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었음에도 투표율 3분의 1이라는 커트라인을 간신히 넘겼던 것이다. 3분의 1 이상의 유권자들이 투표를 해야 한다는 요건은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너무 까다롭다는 생각이다. 물론, 주민소환의 요건이 너무 느슨하여 남용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최근에 진행된 각종 재·보궐선거에서 투표율 30퍼센트를 넘긴 경우가 드물었던 경우를 감안하면 투표율 3분의 1이라는 기준에 대해서는 재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주민소환제는 주민투표제, 주민발의제와 함께 풀뿌리민주주의를 위해 어렵게 얻어낸 성과이다(일례로 2009년 3월 하남시장은 주민소환제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 확인을 하였으나 기각되었다). 제주도는 "주민소환 투표에 소요되는 경비는 19억2000만 원으로 주민소환투표 청구로 제주도의 재정적 부담이 늘고 도민의 혈세가 새어 나가게 되었다"는 내용의 보도 자료를 냈다. 주민소환에 대한 제주도의 이러한 인식은 제주도정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투표는 순간이고 임기는 길다"고 한다. 일단 선출되기만 하면 정책적으로 실패하거나 무능하고 부패하더라도 임기가 보장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지역사회의 갈등과 이로 인한 각종 사회적 경비는 주민소환투표의 소요 경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제 제주도는 직접 참여에 의한 풀뿌리민주주의의 "특별한" 시험장이 된 듯하다. 2006년에는 행정구조 개편을 위한 주민투표를 치렀고(이 투표의 결과로 제주특별자치도법이 제정되었고, 이 법률 속에 주민소환 관련 조항이 포함되었다), 올 8월 말에는 주민소환투표를 앞두고 있다. 투표의 결과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제주도민들은 이미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것을 분명하고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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