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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삼성家의 이익을 지켜줘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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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삼성家의 이익을 지켜줘야 하는가?"

[복지국가SOCIETY] 재벌을 위한 新정경유착인가?

이명박 정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이다. 2009년 7월 2일 나온 '일자리 창출과 경기 회복을 위한 투자 촉진 방안'(이하 투자 촉진 방안)을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원칙도 체면도 없다. 재벌에 백기 들고 '한 푼 줍쇼' 애걸하는 꼴이다.

'삽질' 보단 낫다

'투자 촉진 방안'을 들여다보면 '애걸'의 내용을 알 수 있다. 우선, 기업의 설비 투자를 직접 지원할 계획이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국민연금 등 정부 유관 기관들과 함께 10조 원 상당의 설비 투자 지원금을 만들어 제공한다. 이걸 20조 원까지 확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같은 국책금융기관들을 모조리 민영화하겠다고 기세등등하던 것이 엊그젠데 이 정부가 지금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이 정부에 '원칙'이란 것이 없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기업이 원천 기술이나 신성장 동력 관련 R&D에 투자하는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의 세액공제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파격적인 조치는 포이즌필 등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방어 수단을 법제화하는 것이다.

포이즌필은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가 있는 경우 기존 대주주(예컨대 재벌 가문)가 시가보다 훨씬 더 싸게 신주를 인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기존의 대주주는 인수합병을 기도하는 도전자보다 훨씬 싸게 지분을 늘려 경영권을 안정시킬 수 있게 된다. 이에 더해, 올해 이미 법인세가 인하되었고 내년에도 추가 인하가 예정되어 있으며, 기업이 지분 변동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무의결권 주식 발행 한도'도 대폭 확장할 계획이다. 어떻게 보면 정부가 기업에 해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베풀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현 상황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지난 3월, 29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하고 대대적 재정 지출을 서슴지 않았건만 경기상승의 기미는 여전히 미약하다. 30대 그룹의 상반기 실적(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을 보면, 투자는 15.7%, 신규 채용 규모 역시 32.6%나 줄었다. 감세와 출자총액제한 완화 등 파격적인 조치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그나마 이것도 엄청난 재정 지출을 퍼부었던 결과이다.

더욱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토로했듯이 경기부양 욕심으로 예산을 조기에 집행했기 때문에 "올 하반기에 쓸 수 있는 예산 집행의 규모는 상반기보다 무려 50조 원이나 줄어들"어 있다. 그래서 정부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민간, 특히 재벌 대기업들로부터 투자를 이끌어내려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부와 여당이 대기업에 대한 맞춤형 민원, 세제 특혜, 심지어 포이즌필까지 동원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방향이 전부 틀린 것은 아니다. '친기업'이라고 비판받지만, '친기업'이 왜 나쁜가? 우리 사회의 생산, 분배, 소비가 이뤄지는 결절점이 바로 기업 부문이다. 이런 기업들이 영업 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잘 설계하는 것은 정부의 가장 주요한 본분 중의 하나다. 특히, 원천 기술과 신성장 동력 R&D 투자에 대한 파격적인 세제 지원은 우리 경제의 장기적 성장을 위해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이는 이른바 '4대강, 22조 원 투자' 같은 '삽질'보다 훨씬 우월하고 생산적인 정책이다.

그러나 '투자 촉진 방안'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다. 얼핏 봐도 엄청난 재원이 필요한데, 감세로 인해 재정 건전성이 많이 악화된 상태다. 경제가 활성화되어 세율은 떨어져도 세수는 늘어나는 일도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세액공제까지 해준다고 한다. 어디서 돈을 빼오겠다는 것인지 걱정이 된다. 부디 '외부 불경제' 운운하며 술, 담배 등의 간접세를 올리거나 부가세에 손을 대려는 계산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포이즌필은 '좌빨'의 논리

필자 개인적으로는 포이즌필 등 기업지배구조의 안정 장치가 국민경제 차원에서 이로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터무니없이 비합리적인 방안은 아니다. 경영권 불안이 투자 부진의 절대적 원인까지는 몰라도 주요한 원인인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기업들에 대한 '외국인 소유 한도 제한'은 이미 폐지된 상황이다. 외국인들이 주식 매입으로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는 기회가 활짝 열려 있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현재 대주주인 재벌 가문들의 입장에서는 이른바 '5% 룰'(특정 기업의 총 주식 중 5% 이상을 사들인 뒤부터 소유 주식 변동 상황을 금융감독위원회와 증권거래소에 신고) 이외엔 딱히 제도적 경영권 보호 수단이 없다. 미국, 유럽, 일본 등과 비교해 봐도 심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한국의 자본시장이 자유화된 것이다.

그러나 이 포이즌필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무원칙하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대형 할인점, 이른바 대형마트 규제를 요청하는 재래시장 상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답변한 바 있다. "마트가 못 들어서게 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안 된다. 정부가 그렇게 시켜도 재판하면 패소한다. 이길 수가 없다."

사실 재래시장 상인들의 요청은 시장주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시장주의에서 말하는 시장의 미덕이 무엇이었던가. 다른 기업보다 열등한 제품을 비싸게 내놓는 비효율적 기업을 퇴출시켜 사회 전체적 효율성 제고와 기술 혁신을 이루는 기능이다. 이는 물론 제품 시장의 '주권자'인 소비자들이 비효율적 기업의 상품을 사주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효율적인 대형마트를 규제하라는 상인들의 요청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러나 소상인들의 요청에는 냉정한 이명박 대통령이 반시장주의적인 포이즌필을 용납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포이즌필은 '경영권 시장'(자본시장·M&A 시장)을 왜곡시키는 기제인 것이 분명하다. 이 경영권 시장의 주권자는 주식 가치를 좌우하는 주주들이다. 경영 실패로 주식가치가 떨어진 기업은 다른 기업에 인수 합병되어 해당 CEO는 경영권을 상실하게 된다. 이른바 '자본시장의 징계 메커니즘'이다. 그렇다면 시장주의를 지지해온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물론 보수 언론들은 외국인들이 한국 대기업의 경영권을 마음껏 노릴 수 있게 권장해야 한다. 그래야 시장이 잘 작동하는 것이다. 결국 청와대와 한나라당, 보수언론의 '투자 촉진 방안'이 실제로 겨냥하고 있는 것은 '투자의 자유화, 개방화'를 가로막는 '좌빨(좌익 빨갱이)' 짓일 뿐이다.

▲ 갈수록 국민경제와 유리된 이건희, 이재용 부자 등 삼성家와 같은 재벌 가문의 이익을 언제까지 지켜줘야 할 것인가? ⓒ뉴시스

포이즌필의 전제 조건

사실 삼성전자, 포스코 등 한국의 일부 초국적 대기업의 경우 길은 두 가지 밖에 없다. 하나는 외국자본에 의한 인수합병을 허용하는 것이다. 물론, 인수합병될 가능성이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리 이성적인 주장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차라리 "인수합병되거나 그룹이 해체되어도 상관없다"고 해야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재벌그룹이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제도 개정을 허용하는 것이다. 포이즌필을 둘러싼 여러 사태들은 적어도 이명박 정부와 주변 세력은 후자의 길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쯤에서 서민들의 입장에서 질문해야 할 사항이 있다. "우리가 왜 재벌 가문의 이익을 지켜줘야 하는가?" 포이즌필이든 지주회사를 통하든, 경영권 안정의 최대 수혜자는 대기업 법인이라기보다 재벌 가문들이다. 즉, 삼성전자라는 법인이 아니라 이건희와 이재용 같은 사람들이 일차적 수혜자다. 그런데 이들의 이익을 서민들의 정치적 대표인 국회의원을 통해 지켜줘야 할 필요성이 어디 있단 말인가.

1998년 이후 한국의 재벌그룹 중 상당수는 세계적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를 위해 서민들은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세금으로 구제 금융까지 제공했다. 그러나 이미 한국의 국민경제와 세계적 대기업 간에 동반 발전의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다. 한국 국적인 세계적 대기업들의 수혜자는 재벌 가문과 주주, 소속 정규직 노동자들뿐이다. 국민경제 차원에서는 일자리를 창출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튼실한 중소기업을 키워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대형 마트를 주택가 주변에 만들어, 노동시장 유연화로 직장에서 '잘린' 시민들의 마지막 비상구인 소자영업체를 위협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우리 시민들은 재벌, 정확하게는 재벌 가문에 대해 새로운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경영권 안정을 보장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정당하고 윤리적으로 타당한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재벌 가문의 경영권을 보장해 준다면, 이와 관련하여 어떤 사회적 대가를 받아낼 것인지도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명박 정부와 재벌 가문 간의 타협'은 무소불위의 산업·금융 독점체와 특권계급 간의 뻔뻔스런 정경유착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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