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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에서 09년 사이, 버윅 스트리트와 홍대 앞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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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95년에서 09년 사이, 버윅 스트리트와 홍대 앞 차이

[김작가의 음담악담] <런던 순례기①> 오아시스를 찾아서

런던의 사실상 첫 날이 시작됐다. 글래스톤베리의 마지막 밤을 하얗게 불사르고 런던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새우잠을 잤지만 3시간 반을 좁은 버스에서 잔다고 5일간 쌓인 피로가 가실리는 만무할 터, 글래스톤베리에서 생환한 사람들에게 건강을 체크하라는 듯 코치스테이션에 저울이 있었다.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체중을 쟀을 때 보다 6킬로그램이 빠져 있었다. 파리에서의 미친 듯한 고칼로리 섭취가 체지방을 태웠을리는 만무하니 단 5일만에 6킬로가 빠진 셈이다.

그렇다. 여기서 비밀을 하나 알려주겠다. 사실, 고기와 감자를 주로 먹는 영국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위해 그토록 글래스톤베리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이다, 라는 건 거짓말이고 암튼 체중의 변화가 지난 5일간의 생활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러니 도착한 날, 민박집에 짐을 풀자마자 애비로드도 달려갔으나 이미 체력이 고갈되어 고행으로 득도하는 고대 불교의 승려 체험을 한 후, 비몽사몽하다가 뻗고 말았던 게 당연하다. 그저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침대에서의 수면은 너무나 달콤했다. 역시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뜨거운 국물 한 숟가락에 마치 봄날의 들판처럼 온 몸에 활기가 돋아났다. 그래서 움직였다. 런던 시내로.

▲옥스포드 스트리트의 HMV. 한국에서 이런 대형음반판매점을 찾기는 어려워졌다. ⓒ김작가

어느 도시를 가도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다. 대형 음반점. 하물며 음악의 도시 런던인데 가장 먼저 가는 건 당연했다. 옥스포드 스트리트에 있는 HMV로 향했다. 발매 시기와 중요도에 따라 CD의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시작된 나라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CD뿐만 아니라 교통편도 예약을 언제 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면서도 경제적으로 살려면 꽤 머리 아픈 곳임에는 분명하다. 옷가게나 기념품가게를 가면 잘도 아이쇼핑을 하지만, 음반 가게에서는 그게 도저히 불가능한 나로서는 더욱 머리가 아팠다. 한국에서 쉽게 구하기 힘든 희귀음반을 비싸게 사느냐, 아니면 한국에 발매안된 음반들 중 저렴한 걸 사느냐의 문제. 지름신의 부름에 흔쾌히 응할 것이냐, 그의 멱살을 부여잡고 사투를 벌여 끝내 승리할 것이냐의 문제. 언제나 햄릿이 된 기분이 드는 곳, 바로 음반점이다.

결국 2시간의 사투끝에 단 석 장의 음반을 사는 것으로 싸움을 종결했다. 그런데 사실, HMV에 음반을 사러 간 건 아니었다. 런던에서 오래 생활한 뮤지션 친구가 진작 일러주길, HMV에 가면 <레전더리 플레이스 오브 로큰롤>이라는 책을 판다고 했다. 영국 음악사의 중요한 사건과 사소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일어난 장소들을 쭉 소개하는 책이란다. 오오, 그 책 하나만 있으면 어떤 가이드북보다 훌륭한 바이블이 될 터. 그리하여 본격적인 영국 여행을 하기 전 모세가 십계명을 받고자 시나이산에 오르는 심정으로 HMV를 들렸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십계명은 커녕 가짜 사해문서조차 없었다. 결국 점원에게 물어봤다. 검색을 해보더니 자기네는 그런 책이 없으니 근처 대형 서점으로 가라며 이름을 알려줬다. 그런데 그 이름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부땃똔, 정확히 이렇게 들렸다. 아니, 무슨 방콕의 불교전문서점이름도 아니고 부땃똔은 뭔가. 왓? 왓? 을 반복하니 답답한지 종이에 이름을 써주기를, 워터스톤(waterstone)이었다. 아놔, 이 놈의 영국 악센트.

▲대중음악을 해석하는 시장규모의 차이. 영국 대중음악 시장과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발달 정도를 가르는 잣대가 될 지도 모른다. ⓒ김작가

로큰롤의 전설적 장소를 사사받고자 다시 워터스톤으로 향했다. 지하에 있는 음악관련서적코너에 갔더니 입이 딱 벌어졌다. 뭔 놈의 음악 책이 이리도 많은가. HMV는 주로 어떤 음악 장르의 역사나 뮤지션들의 전기와 자서전 위주로 셀력션을 갖춰놓은데 반해, 역시 서점이라 그런지 온갖 종류의 음악 책이 다 나와있었다. 가장 놀란 건 특정 음반에 대해 한 명의 평론가가 저술한 평서. 그러니까,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에 대한 2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석이 한 권의 책으로 이뤄진 것이다. 33과 1/3라는 제목이 붙은 이 시리즈만으로도 스스로를 반성하게 됐다. 나는 과연 한 음반을 가지고 이런 분석을 할 수 있을까. 책을 얼핏 들여다봤다. 정말, 모든 형태의 분석이 다 들어있었다. 음반의 역사적 가치가 한 챕터, 각 곡에 대한 음악미학적 분석이 한 챕터, 이론적 분석이 한 챕터, 가사 분석이 한 챕터…. 이런 식이다. 명함에서 평론가란 직함을 파내고 싶어졌다.

그런 겸허함에도 불구하고, 신은 십계명을 내려주지 않았다. 역시 레전더리 플레이스 오브 로큰롤이란 책은 없었다.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봐도 비슷한 제목조차 없었던 걸 보니 아무래도 그 놈이 거짓말을 했나 싶었다. 순간, 그 놈이 영국에서 오래 생활했으며 앨범 작업은 무려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했다는 사실도 의심이 갔다. 아니, 레전더리 플레이스 오브 로큰롤이라는 책 제목조차 뭔가 야매의 냄새가 농후하지 않은가.

▲노엘 스트리트. 노엘 갤러거(기타, 보컬)가 이끄는 오아시스의 대표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앨범 표지에 나온 버윅 스트리트 바로 옆 골목이다. ⓒ김작가
여튼, 바이블을 못 얻었으니 그나마 알고 있는 레전더리 플레이스로 향할 수 밖에. 지도를 펼쳤다. 버윅 스트리트(Berwick Street). 90년대 브릿팝을 상징하는 단 한 장의 앨범을 꼽으라면 당연히 1995년 발매된 오아시스의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를 꼽아야 한다. 그 앨범 커버에 등장하는 거리, 바로 그곳이 버윅 스트리트다. 차이나 타운 근처에만 있다는 정보로 지도를 살펴보니 정말 짧은 거리 하나가 딱 박혀 있었다. 옥스포드 스트리트에서 걸어가도 될만한 거리. HMV에서 가까웠다. 무작정 걸어가보기로 했다. 50년대 테디 보이를 상징하는 리전트 헤어(엘비스 프레슬리의 머리를 떠올리면 된다)가 유래된 리전트 스트리트, 60년대 모드족을 탄생시킨 카나비 스트리트를 지났다. 리전트 스트리트와 카나비 스트리트 모두 잠시 걸음을 멈출만한 역사적 장소지만 그냥 지나쳤다. 버윅 스트리트, 바로 그곳에 가기 때문이다. 카나비 스트리트를 지나 좁은 골목을 걷다보니 노엘 스트리트라는 간판이 보였다. 이 길의 끝에서 우회전을 하면 버윅 스트리트가 나온다. 오아시스의 리더인 노엘 갤러거의 이름을 따온 거리는 아니겠지만, 노엘 스트리트 옆에 버윅 스트리트가 붙어있다는 게 재미있었다.

노엘 스트리트의 끝, 건너편에 버윅 스트리트의 간판이 보였다. 드디어 왔다. 애비 로드만큼의 성지는 아니겠지만 오아시스의 팬이라면 런던에서 한 번 쯤 방문할 것 같은 그 거리에. 모퉁이를 돌며 가방에서 <Morning Glory>앨범을 꺼냈다. 이 사진이 이 거리의 어디쯤에서 찍었을까 앨범 커버와 앞의 풍경을 계속 비교해가며 걸었다. 걷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뒤를 돌아봤다. 아뿔싸. 바로 여기구나. 내 뒤에 있는 이 거리가 앨범 뒷면 커버의 거리로구나. 그 지점에서 약 15미터 정도 더 나가면 바로 정면 커버 사진을 찍은 위치에 서게 된다. 1995년과 다름없는 풍경이 2009년의 버윅 스트리트를 지키고 있었다. 대부분의 건물이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다만, 사업의 흥망성쇠를 말해주듯 상점의 이름과 겉치장이 바뀌어 있을 뿐이었다.

만세!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옛날, 이 앨범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CD에 기스가 날 때 까지 얼마나 듣고 또 들었던가. 그래서 몇년전 이 앨범이 국내에 재발매됐을 때 얼마나 벅찬 마음으로 해설지를 써내려갔던가. 그런 순간들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차가 없는 틈을 타 차도 한가운데서 앞뒤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도 찍어보고 저렇게도 찍어보고 몇 발자국 앞뒤로 가면서도 찍어보고. 그 사진을 그대로 재현하기에는 카메라의 사양도 달랐고 날도 달랐다. 무엇보다 프로가 아니기에 그 느낌을 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어떻겠는가. 내가 바로 그 거리에 서있는데. 보도 블럭에 멍하니 서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변하지 않은 것들 안에서 변한 것들을 살펴봤다.

사진의 왼쪽 가장 앞에 있던 상점은 시스터레이라는 레코드 가게로 바뀌어 있었다. 들어가봤다. 오아시스의 앨범중 모닝 글로리만 없었다. 얄궂었다. 마침 인디 음반을 많이 취급하는 가게이길래 몇 장을 샀다. 그 옆에도 또 리바이벌 레코드라는 음반 가게가 있었다. 주로 LP를 취급하는 가게. 창밖에 디스플레이된 음반 중 모닝 글로리의 LP가 있었다. 작은 포스트 잇이 붙어있길래 들여다봤다. 지금 리바이벌 레코드가 있는 바로 그 위치에 'You are here'라는 글귀가 씌여 있었다. 픽, 웃음이 나왔다. 그림 책 속의 그림, 또 그 안의 그림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앨범 커버속의 그 가게들은 아무리 봐도 레코드 가게는 아니다. 그 가게들이 지금 레코드 가게로 바뀌어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오아시스의 흔적을 따라 버윅 스트리트를 찾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애비 로드에 이은 버윅 스트리트 방문. 천신만고끝에 에티오피아를 찾은 라스파타리언의 감회가 꼭 그랬으리라.

▲음악팬만이 이 행위에 감동을 누리리라. ⓒ김작가

그 사진을 찍은 그 이는 알았을까. 자신이 사진을 찍은 앨범이 그만한 명반이 될 줄을. 자신이 찍은 사진 한 장에 의존하여, 자신이 사진을 찍은 바로 그 곳을 찾아올 동양의 사내가 있을 줄을. 몰랐을 것이다. 그 때의 나 또한 몰랐다. 훗날 그곳에 앨범 커버 사진 한 장에 의존하여 버윅 스트리트를 찾아가게 될 것임을. 그 때도 그 거리에 있었던 건물들만이 묵묵히, 후일 이곳에 찾아올 이들을 위해 그 모습을 지금까지 오롯이 지켜내고 있을 뿐이었다.

90년대 중반 한국 인디 신이 태동할 무렵, 밴드들의 사진 배경이 되던 많은 곳들이 흔적조차 없어졌음을 생각하면 그저 한숨이 나올 뿐이다. 공원으로 바뀌고 있는 철길을 비롯해서 팔각정이 있던 홍대 놀이터 등등. 어릴 적 엄마 따라 다니던 동네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기억안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지 못하는 일상. 과거가 그저 추억이란 이름의 이미지로만 살아있는 생활을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버윅 스트리트에 서봤던 사람이라면, 그가 오아시스의 팬이기까지 하다면, 절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 같다.

* 김작가는 현재 런던에 체류 중입니다. 글래스톤베리 기행기는 현지 인터넷 사정이 좋지 못했던 관계로 당분간 런던 체류기와 동시 연재될 예정이나 이 행사는 6월 28일에 끝났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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