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이상진 상임대표(서울시교육위원·전 장위중, 대영고 교장)가 약 5분간 성명서를 낭독하는 동안 수차례 박수와 "옳소"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50여 명의 청중 대부분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었다.
이들은 9일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주최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최근의 교수 시국선언을 비난했다. 일부는 "빨갱이 교수가 여기 있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원색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 9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국선언 교수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상진 반국가교육척결 국민연합 상임대표가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프레시안 |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자살, 시국선언은 이를 반전의 계기로 삼으려는 것"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그동안 시국선언을 발표한 교수들을 규탄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이상진 대표는 미리 준비한 성명서를 통해 "좌경화 교수들이 민주주의 후퇴라는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고 국론 분열과 국민 선동을 위한 시국선언을 했다"며 "좌경화 교수들의 경거망동을 국민의 이름으로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는 시국선언을 놓고 "학생들을 선동해 촛불 집회에 앞장세워 이명박 정부를 타도하는데 이용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 같다"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파괴시켜 사회 혼란을 야기시키는 것은 좌익 혁명을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자살"이라고 표현하며 "좌경화 교수들은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반전의 계기로 삼으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것을 계기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려는 패륜 행위를 하고 있다"며 "이를 빌미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남남 갈등을 부추겨 북한의 남침 야욕에 불을 댕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교수들이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고 선언한 것을 두고서 그는 "탄핵까지 받고 권력형 비리로 자살까지 한 전 대통령이야말로 민주주의를 파괴한 사람"이라며 "경제 위기, 안보 위기를 외면하고 민주주의 위기를 앞세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정의구현사제단, 시국선언 교수,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민주주의 파괴 집단"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끝으로 "좌경화 시국선언 교수들에게 묻고 싶다"며 "좌익이 집권해야 민주주의고 우익이 집권하면 독재인가. 좌익 폭도들 방화에 경찰이 타 죽어도 방어하면 민주주의 위기인가, 좌익 폭력 난동에 경찰이 맞아 죽어도 방어하면 민주주의 후퇴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명박 타도 지령을 좌익 세력에게 내려서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한 것"
국민연합 상임지도위원을 맡고 있는 고영주 변호사의 발언은 더 원색적이었다. 그는 현재의 시국선언과 관련해 "먼 훗날 좌익 세력들의 자충수가 되리라 판단"한다며 "전직 대통령이 범죄 수사를 받고 자살한 것이 시국선언을 할 만한 사안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교수들이 어디가 모자라서 그런 시국선언을 했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결국 북한 지령에 의해 좌익 세력이 움직인 것"이라고 음모론을 제기했다. 고 변호사는 "북한이 후계자 문제 등 여러 문제가 중첩돼 있으니 자기네 문제를 벗어나기 위해 이명박 타도 지령을 좌익 세력에게 내렸다"며 "그렇기에 시기에 맞지도 않는 시국선언을 하고 10일 대규모 집회도 열려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노 전 대통령의 자살 이후 혼란은 내일 이후 진정될 것이고 결국 나중엔 이것이 자충수가 됐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기 위해서라도 애국 세력이 힘을 모아 망동에 대해 엄정히 대처해야 한다"고 이날 자리에 모인 청중들을 독려했다.
1978년부터 28년간 검찰에 몸을 담았던 고 변호사는 1980년대 초 부산지검 검사 시절부터 공안사건을 맡았다. 대검 공안기획관이었던 1997년에는 한국대학생총연합회을 이적단체로 규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 이날 기자회견에는 150여 명의 6~70대 노인들이 참석했다. ⓒ프레시안 |
"사회 갈등 양상으로 가는 현실 우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잘하는 건 아니다"
한편, 이날은 시국선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잇따라 열렸다. 대부분 뉴라이트 계열의 시민단체 인물로 구성된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교수들'도 이날 오전 같은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수들이 릴레이식으로 시국선언을 하여 사회를 갈등과 분열의 양상으로 몰고 가고 있는 현실은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 사회가 분열 양상으로 빠져들고 있다"며 "여기에 중심을 잡고 학문적 담론의 장에서 이념, 정책, 사회 현상 등을 숙고하고 연구해야 될 교수들이 오히려 앞장서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명박 정부가 정치를 잘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소통과 설득의 리더십 부족이 대통령의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현 정권의 과감한 국정 쇄신도 요구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 소속 원로목사들도 이날 오전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간담회를 열고 "일부 언론과 방송이 정부 여당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지식인들이 개별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써도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처럼 탄압을 받고 있지 않다"며 최근 시국선언들이 한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이들은 "국가적 비상 상황에서 책임있게 국정을 운영해야 할 정치권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앞세워 정치적 이득을 저울질하며 임시국회조차 거부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라며 "대통령과 여당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상심한 국민이 심기일전해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국민통합과 국정쇄신에 매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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