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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통합, 배신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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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통합, 배신의 미학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프랜시스 F. 코폴라의 희대의 걸작 <대부>에서 아버지 돈 꼬를리오네(말론 브란도)는 죽기 얼마 전 아들 마이클(알 파치노)에게 몇번을 반복해서 이렇게 얘기한다. "잘 들어라. 내가 죽은 후 바르지니파와 제일 먼저 협상을 권하는 자를 경계하거라. 그가 배신자다." 꼬를리오네는 얼마 후 정원에서 손자와 도깨비 놀이를 하다가 심장마비로 죽는다. 그리고 그의 장례식. 아버지의 심복 가운데 한명인 테시오(아베 비고다)가 마이클에게 귓속말로 뭔가를 속삭인다. 마이클의 표정이 순간 굳어지고 이제 곧 패밀리가 가장 믿었던 측근가운데 한명을 제거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갑자기 약 40년전의 영화 <대부>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특히 많고 많은 장면 가운데 마이클이 피의 복수를 시작하기 직전, 그래서 뭔가 터지기 일보 직전의 순간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요즘 우리사회가 딱 그 모양이어서일지 모르겠다. 지금도 여기저기서 화해와 용서, 국민통합부터 먼저라는 얘기들이 나돈다. 그가 남겼던 유서 가운데 '미안해 하지마라. 누구도 원망하지마라'를 들먹이며들 그런다. 그런데 정말로 가장 먼저 화해와 평화, 협상을 권하는 자, 그 자가 바로 배신자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너희 칼 쥐고 총 가진 자들/싸늘한 주검 위에 찍힌 독재의 흔적이/검붉은 피로, 썩은 살로 외치는구나/…여기 하나이 죽어 눈을 감으나/남은 이들 모두 부릅뜬 눈으로 살아/참 민주,참 역사 향해 저 길/그 주검을 메고 함께 가는구나/더 이상 죽이지 마라/너희도 모두 죽으리라..』

1989년에 만들어진 정태춘의 불법음반 '아, 대한민국…'을 다시 듣게 됐을 때의 충격은 그의 음악이 주는 과격함, 노동자스러움 등등때문이 아니다. 물경 20년이 된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별반 시의성이 떨어지지 않는 듯한 느낌, 마치 그가 1989년에 지금 2009년을 염두에 두고 쓴 듯한 가사와 가락때문이다. 아니 그건 정확한 얘기가 아닐 것이다. 지금의 시대가 정확히 20년을 퇴보했다는 얘기가 맞을 것이다.

▲ 터미네이터 : 미래전쟁의 시작

<터미네이터4>가 첫주말 170만 관객을 모은데 이어 둘째, 셋째 주까지 승승장구, 이런 추세라면 500만은 시간 문제라고들 한다. <마더>도 마찬가지다. 최단 시간 100만 돌파 등등 첫주말 성적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파죽지세의 흥행을 선보이고 있다. 바야흐로 극장가가 여름시즌 빅뱅의 분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별반 느낌이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워낙 잘될 영화였으니 당연한 거 아니겠느냐는 차원이 아니라 이럴 때 영화가 잘되고 안되고가 뭐 그리, 경천동지할 일이냐는 생각때문이다. 심사가 뒤틀려도 이만저만 뒤틀린 것이 아닌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저놈의 끔찍한 정치때문이다. 사람사는 거 편하게 만드는 게 정치인데 요즘의 한국은 오히려 사람을 이렇게 저렇게 쥐고, 짜고, 흔든다. 한마디로 짜증 백배다.

이럴 때 영화는 뭘 해야 하는 것일까. 관심이 없다 하지만 <마더>와 <터미네이터4>가 지금 같은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모으는 데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한마디로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마더>에서 엄마 혜자(김혜자)는 아픈 기억을 잊을 수 있는 침자리를 아는 '야매꾼' 침술사다. 그녀는 스스로 그 망각의 침을 놓고 석양을 등진 채 춤을 춘다. <마더>를 보는 사람들도 지금의 고통스러운 세상을 잠시나마 잊고 싶어한다. <터미네이터4>에서 저항군 사령부는 젊은 지휘관인 존 코너의 충고를 듣지 않다가 결국 폭사한다. 같은 편에조차 귀를 닫는 지도부. 그런 주류를 상대하는데는 소장파든 개혁가든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영화속 존 코너처럼 화끈하게 한판 벌렸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터미네이터4>를 보는 건 그때문이다. 근데 정말 그때문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381호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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