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노사관계 법제도 개선방안'(로드맵) 입법화 움직임이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노사 당사자의 의견 수렴은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사관계 로드맵의 연내 입법화라는 정부 목표가 달성되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가운데 최근 로드맵 처리를 위한 노-사-정 3자의 논의가 수 차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귀추가 주목된다. 노사정위원회는 이같은 사실을 7일 <프레시안>에 확인해주었다. '그 동안 대화 한번 없었다'는 노동계의 기존 주장과는 당연히 배치된다.
이렇게 말이 엇갈리게 된 배경과 노-사-정 논의의 전말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노사정위 폭탄 발언, "로드맵 논의 수차례 진행됐다"**
지난 5일 김원배 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은 '로드맵의 노동부 이송' 사실을 설명하는 브리핑 말미에 "노사정이 10차례 만나 로드맵에 대해 논의를 벌였으며, 일정부분 성과가 있었다"고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김 위원의 이같은 발언은 로드맵을 두고 노사정 간에 논의가 없었다는 그간의 통설과 배치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노사정이 물밑에서 로드맵 처리를 위해 오랜 기간 접촉해 온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파장을 낳았다.
특히 '미래노사관계 기초위원회'(기초위원회)의 존재 사실이 7일 밝혀지면서 김 위원의 발언은 신빙성을 얻고 있다. 노사정위와 한국노총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경 노사정위는 답보상태인 로드맵 논의의 진척을 위해 노사정 각 주체의 부대표 급이 참여하는 '기초위원회'를 마련해 올해 6월까지 수차례 논의를 해 왔다는 것.
이같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은 노사정 모두 '기초위원회'의 존재를 비공개로 하기로 합의했기 때문. 이에 대해 김원배 위원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로드맵의 내용 자체가 민감한 만큼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비공개로 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노사정위-한국노총, 상반된 해석과 주장**
한편 한국노총은 '기초위원회'의 존재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위원회의 위상과 목적에 대해서는 노사정위의 설명과는 다소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정길오 한국노총 홍보선전본부장은 "기초위원회가 '논의기구'였다는 (김 위원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로드맵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일독하자는 취지였다"고 주장했다.
정 본부장은 이어 "당시 노동계 고위 간부들도 로드맵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였다"며 "(로드맵) 논의 이전에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기초위원회 구성에 동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요컨대 '기초위원회'는 로드맵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기구라기보다는 노사정의 상호 이해를 높이기 위한 '연구모임' 정도였다는 것이 한국노총 측의 주장인 셈이다.
이에 대해 김원배 노사정위 상임위원은 전혀 다른 주장을 폈다. 김 위원은 7일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단순한 연구모임이었다는 것은 한국노총의 주장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반면 김 위원은 "10여 차례 기초위원회를 운영하면서 로드맵 처리 방향과 특정 내용에 대해서는 합의에까지 도달했다"고 말해 '논의기구'의 성격이었음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기초위원회 파장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한편 기초위원회가 연구모임 혹은 논의기구라는 한국노총과 노사정위 간의 설전과는 별개로 기초위원회의 존재 자체가 향후 로드맵 처리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노동부는 이 '기초위원회'를 로드맵 처리를 위한 노사정 간의 진지한 논의 테이블로 적극 평가하면서 연내 입법화 계획의 가속도를 높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동부는 지난 5일 김원배 노사정위 상임위원의 발언이 있은 직후 자료를 내고 "기초위원회에서 '로드맵'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정부안은 선진화 방안, 기초위원회 논의, 그간 제기된 노사 입장, 관계부처 의견, 공론화 과정을 거쳐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었다.
하지만 노동부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초위원회가 노사정의 충분한 의견수렴 기구라는 평가를 받기는 힘들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이 7일 "로드맵 처리를 위한 노사정 간의 진지한 논의가 부족했다"며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제안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특히 노사정위의 주장처럼 기초위원회에서 도출된 구체적인 '합의'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을 뿐더러, 민주노총은 전혀 논의 주체로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부가 로드맵 처리를 위해 사전 논의가 충분했다는 주장을 펴기는 어려워 보인다.
노동계의 한 전문가는 기초위원회를 둘러싼 이같은 논란에 대해 "로드맵 처리를 두고 벌어지는 노-정 간의 신경전의 한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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