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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가난뱅이들끼리 놀아봅시다"

[좌담] 한·일 프리터 5인방의 '발칙한' 수다 <下>

재미있으면 죄책감 느껴야 하나요?

아마미야와 마쓰모토는 대화 내내 '재미'를 강조했다. 재미가 있어야 청년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한국 운동문화가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일 수 있다. 물론 지난해 촛불 집회에서 일말의 가능성을 발견했지만.

루미 : 두 분(마쓰모토와 아마미야)의 전문(?) 분야인 시위 얘기를 해보죠. 인디 메이데이(일본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는 프리터들이 인디 노조를 만들어 정규직 노조와 차별되는 노동절 행사를 개최한다) 행사를 비롯해 모든 활동의 중심이 '즐거운 삶'에 맞춰진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청년실업 문제를 비롯한 사회 운동을 할 때 '재미있으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어요.

▲ 마쓰모토 "젊은이들이 언제까지나 나이 먹은 양반들 기호에 맞춰줄 수는 없잖아요?" ⓒ프레시안
마쓰모토 : 운동이라 생각하면 안 돼요. 말 그대로 놀아야죠. 저는 운동하면서 이웃 주민과 놀고 친구들과 놀고, 심지어 경찰관과도 놀았습니다.

현진 : 집회 때 디제잉하고 코스튬 플레이도 하셨죠. 한국은 그러면 운동권 아저씨들부터 난리가 나요. 전 기륭전자 단식투쟁할 때 화장한다고 욕 엄청 먹었어요.

마쓰모토 : 포기하게 만들어야죠. 젊은 세대가 주축인데 나이 많은 사람들 교육시킬 수밖에 없잖아요. 젊은이들이 언제까지나 나이 먹은 양반들 기호에 맞춰줄 수는 없으니까.

정태 : 한국에서 시위한다면 어떤 형식을 갖추고 싶어요?

마쓰모토, 아마미야 : 사운드데모! (인디 메이데이 등 행사에서 주로 진행하는 시위 방식. 트럭 위에서 디제이가 음악을 틀어주고 춤을 추기도 한다. 이 운동의 핵심은 재미다.)

마쓰모토 : 사운드데모할 때 쓴 트럭을 한국 번화가에 갖고 와서 한국 젊은이들과 같이 놀고 싶어요. 그러면 주변 클럽에 있던 친구들도 다 나오지 않을까요? 그 친구들이 시위를 안 할 뿐이지 적은 아니잖아요.

아마미야 : 한국에서 인디 메이데이를 열고 싶어요. 물론 '즐겁게' 하는 것이 목표고요. 원래 올해 개최하려 했지만 힘들어졌는데, 내년에는 꼭 하고 싶어요.

루미, 현진 : 일본의 시위가 원래부터 이러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아마미야 : 예전 연합적군 사건(連合赤軍·60년대 일본 운동권 학생 조직 중 무장투쟁을 불사했던 세력. 1972년 2월 아사마 산장에서 발생한 연합적군과 경찰의 총격전으로 세간에 알려졌고, 그 후 그들이 동지들마저 살해한 것으로 드러나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줬다)에 대한 반성이 일본 사회에 있었어요.

이전에는 '즐겁게 하자'는 문화가 일본 운동권 내에서도 '반혁명적'으로 치부됐어요. 한국도 놀이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 아마미야 "한국에서 인디 메이데이 행사를 열고 싶어요." ⓒ프레시안
마쓰모토 :
노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도 불만 있지 않나요? 그 사람들 단순히 스트레스만 해소하려고 춤추고 술마시는 것 아닐 텐데.

정태 : 노는 젊은이라고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죠.

한국의 젊은이들 대부분 생각이 '내가 지금은 클럽에서 잠시 놀고 있지만 언젠가는 돈을 벌 거야'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현진 : 오히려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자포자기한 거지.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다 못난 나 때문'이라며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지는 거죠.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놀면서 어른들이 쓴 자기계발서도 열심히 읽잖아요. 별 도움도 안 되는데.

아마미야 : 놀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네요. 일본도 마찬가지예요.

일본에서는 당사자 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이 많아요. 그런데 쉽지 않죠. '나는 언젠가 이 상황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생각들을 하니까. 프리터 중에서 자기가 평생 프리터라고 생각하는 사람 없어요.

마쓰모토 : 한국 아저씨들에 대한 농담이 생각나네요. 모든 아저씨가 술을 드시고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한다면서요? 그런데 그거 다 거짓말이잖아요. 그런 믿음은 빨리 포기해야 당사자 운동이 스며들 수 있는데.

어르신들, 애정 좀 가져주시면 안 될까요?

마쓰모토 하지메는 기발한 아이디어의 시위를 여러 차례 주도했다. 공부만을 강요하는 학교에 반발해 교내 한복판에서 난로를 피우고 찌개를 끓이면서 학생들의 유대관계를 쌓는 '난로 투쟁'을 했다. 잦은 시위로 경찰의 감시가 심해지자 그는 달랑 3명이 시위하겠다고 신고해 경찰을 당황시켰고, 경비하러 나온 경찰을 심심하게(?) 만드는 일도 벌였다.

그의 아이디어가 당연히 화제로 떠올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한국과 일본 간 세대의식의 차이를 얘기하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 현진 "젊은이들이 그렇게 열심히 놀면서도 어른들이 쓴 자기계발서를 또 열심히 읽어요. 별 도움도 안 되는데." ⓒ프레시안

현진 : <가난뱅이의 역습>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가 스기나미 경찰서의 노O 씨가 오랜만에 시위 신청을 하러 온 마쓰모토 씨에게 "그래, 바로 그거야! 그렇게 제대로 된 시위를 하란 말이야!"하고 반겨주는 부분이었어요.

한국에서는 아무리 마쓰모토 씨처럼 김 빼는 시위를 해도 '너네 조금 더 세게 하란 말이야!'라고 말할 경찰은 없을 텐데. 일본이 한국보다 더 너그러운 사회라서 그럴까요?

마쓰모토 : 일본이라고 특별히 다르겠어요? 다만 어른들의 생각이 한국보다 더 다양한 것 같아요. 시위대에 애정을 가지는 경찰도 있고, 이제 60대가 돼 가는 전공투 세대 중에는 우리를 이해 못하는 어른도 많죠.

그런데 젊은이들의 이런 모습을 두고 강하게 꾸짖는 사람은 없어요. 오히려 윗세대끼리 싸우죠. 우리는 그 틈을 타서 우리 할 일 계속 하고…. 하하! 한국에는 전공투 비슷한 세대가 없어요?

현진, 루미, 정태 : 386세대가 있는데 대의명분을 워낙 좋아들 하셔서…. (일동 웃음) 386세대는 자기 자식인 10대에게서 희망을 찾지 20대는 무시하죠.

정태 : 386세대는 대의명분에다 경제력까지 갖고 있죠. 20대는 없어요. 당장 방세 내기도 빠듯한 삶이니까. 모두 주거 형태 어떻게 되세요? 전 옥탑방에 살아요.

현진 : 빚 갚고 나서 모은 돈으로 집 구하려니 서울에서 제일 높은 동네(옥수동)에 살게 됐어요. 창문 열면 서울의 4개 구가 다 보이죠. 무심결에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뮤직비디오에서 가난한 동네 나오는 장면에 우리 집 앞 슈퍼가 나와, 막.

아마미야 : 단독주택에서 친구와 함께 살아요. 혼자 프리터 생활할 때는 월수입 15만 엔(211만 원, 3월말 100엔당 1410원 기준) 정도였는데 방세만 8만 엔이 나갔어요. 영양실조 걸리기 딱 좋죠.

▲ "한국에는 전공투 비슷한 세대 없어요?" "386이 있는데…. 대의명분을 아주 좋아하시죠. 하하하!" ⓒ프레시안

일 좀 덜하고 잘 놀기

즐겁게 살기. 좋다.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은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게 현실적이다. 그러나 '일을 즐겁게 하자'는 구호는 사람을 노동에 묶어두기 위한 도구로 쓰일 수도 있다. 이들은 일과 노동을 어떻게 양립시킬까?

마쓰모토 : 일을 통해서 보람을 얻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일은 적당하게 하고 진짜 좋아하는 것은 따로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여러분은 어떤 편이에요? 저는 일은 최소화하고 남는 시간에 얼마나 재미있게 놀지 고민하는데.

정태 : 보람 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 싶어요. 일 끝나고 즐거운 생활 하겠다 생각해버리면 일이 괴롭잖아요. 일 자체를 즐기면 인생이 즐거워지지 않나요?

▲ 정태 "보람있는 일이라면 열심히 할 수록 좋은 것 아닌가요?" ⓒ프레시안
루미 :
정규직으로 열심히 일하고 많은 돈을 받는 삶도 나름 매력 있다고 생각해요. 현실과 괴리가 있죠? 자유롭게 살고 있지만 전혀 자유롭지 않은 셈이죠.

마쓰모토 : 일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은 착취당하지 않나요? '자네는 보람을 느끼니 무제한으로 야근하게'라는 따위의 지시에도 만족해버리면 결국 워커홀릭이 되잖아요.

고엔지의 유명한 헌옷 가게에서 시간당 600엔(8460원)을 받고 일하는 제 친구가 그런 경우인데요, 그 친구는 노동운동할 생각을 안 해요. 일이 좋으니까 열악한 노동 환경을 바꿀 생각도 없는 거죠.

현진 : 일에 즐거움을 찾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떠나서 자발적으로 일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전 부모님이 지신 빚을 갚아야 해서 꿈에도 생각지 않은 정규직이 돼야 했어요. 3년간 일해서 갚았죠.

돈을 많이 버는 게 절대 행복한 삶이 아니더군요.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일과 돈의 노예가 되기보다 작은 돈을 벌더라도 행복함을 느끼는 게 더 중요하죠. 그래서 정규직을 관뒀지만 전혀 미련 없어요. 제가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도 '내가 정규직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는 살아있는 증언을 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가난뱅이 연대, 합시다

당초 예정한 대담 시간은 1시간 30분가량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5시가 넘어서도 대화를 끝낼 줄 몰랐다. 어쩔 수 없이 대화 도중 기자가 개입해 이만 대담을 끝내달라고 요청해야 했다.

프레시안 : 예정 시간이 훌쩍 지나버려서 이제 슬슬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각자 하고 싶은 말씀들을 짧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너무 상투적이죠?

마쓰모토 : 젊은이에 대한 억압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요. 이러면 결국 이 체제를 도저히 견뎌나가기 힘든 개개인이 "나는 그렇게 못 합니다"라고 선언하고 연대하는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억지로 사회 흐름을 따르려고 하지 마세요. 자기 마음 가는대로 사는 게 행복합니다.

아마미야 : 저도 마쓰모토 씨 생각에 동의해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진정 행복하지 않겠어요? 다른 사람의 시선에만 신경을 쓰면 안 됩니다.

정태 : 한국과 일본의 현실이 비슷하다고들 말하지만 저는 미묘한 차이점도 느낄 수 있었어요. 어찌 보면 동질감을 느끼게 되니 다른 점이 더 부각되는 것일 수도 있겠고요.

청년들이 인간적인 품위를 지키면서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의 해결 기미가 보여도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니 답이 잘 안 나오네요.

▲ 루미 "자유롭게 살고 있지만 전혀 자유롭지 않아요." ⓒ프레시안
루미 :
전에 들은 이야기가 기억에 나네요. '만약 한국에서 시위를 성공시킨 사람이 화제의 책을 내면 정부를 압박하려고 하지 옆나라인 일본으로 갈 생각을 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두 분은 한국으로 건너오셨고, 한국의 운동가들과 연대를 모색하고 계십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보다 활발해져야 하지 않나 싶어요.

현진 : 젊은이들이 연대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먼저 '나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생각이 전파돼야죠. 그런 점에서 두 분이 쓴 책은 저를 비롯해 많은 젊은이들에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책에 나타난 연대감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아마미야 : 선진국이라는 개념 자체가 환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선진국이 결국 나라 안에서는 부자가 가난한 자 착취하고, 나라 밖으로는 더 못 사는 나라 착취하는 체제이니까요. 이건 3류 국가죠.

지금은 그런 환상이 점차 깨지고 있는 중이에요. 신자유주의가 극으로 치달으면서 이제는 사람들이 환상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해졌으니까요. 만약 이번 경제 위기가 정말 심각해져서 공황이 일어나고 일본이 망해버리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아요. 경제가 더 나빠지길 기대합니다. (웃음)

마쓰모토 : 망하는 것 좋은데요? 하하!

중요한 것은 누가 정말 나쁜 놈인가를 확실히 노출시키는 것 아닐까 싶어요. 막연하게 '우리는 이겨낼 수 있습니다'는 식의 위로가 아니라 '당신이 가난해진 이유는 누구 때문입니다'라고 말해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공유하는 게 중요합니다.

▲ "마음 가는대로 삽시다!" 정답은 없습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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