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별, 시를 만나다]

'2009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이미 연재 중인 '문화, 우주를 만나다'에 이어 '별, 시를 만나다'를 '2009 세계 천문의 해' 한국조직위원회가 운영하는 웹진 <이야진(IYAZINE)>과 공동으로 연재한다.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 50인이 별, 우주를 소재로 한 신작시 50편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한 편씩 선보인다. 매번 첨부될 시인의 '시작 노트'와 천문학자 이명현 교수(IYA2009 한국조직위원회 문화분과 위원장·연세대 천문대)의 감상은 시 읽는 즐거움을 더해 줄 것이다.

동화(童話)

저 밤하늘의 은하물이 동화처럼 흘러갈 적
지상에서는 내 주위로
거짓과 회피와 적반하장의 미개한 성인소설이 써졌다
모르쇠와 기억 안 남, 질환 수준의 내숭과 왜곡이
얽히고설킨 성인남녀 물밑 쟁투의 교언들이

저 밤하늘의 은하물이 물망초 눈망울처럼 흘러갈 적
육십 먹은 한 여자 소설가는 내게 소리쳤다
내가 글 쓰는 사람이야 내가 왜 니 그 말뜻을 몰라
그는 소설가여서 글 쓰는 사람이고
나는 시인일 뿐으로 글 쓰는 사람이 아니어서
생각이 없어서 그런 말을 한 나이 아래인 것이 되었다

저 밤하늘을 오래 흘러가는 은하물
옛적 격조 있고 고요했던 반가사유의 왕국이 멸망할 때
왕국과 소멸을 같이하고자 백마의 강에 몸을 던졌다는
삼천 어린 궁중 아씨들의 파르스름한 넋

그때 나이 아래인 것인 나는 입이 없어
생각이 있었던 그 말을 그 밤 은하에 묻었다
시도 소설도 우스워 동화로 썼다
별은 별들 속에서 넋처럼 반짝이며 살아야 한다고
표현할 길 없는 반가사유 왕국의 마지막 왕의 얼굴 떠올리며



들판의 시인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말을 그 밤 은하에 묻었을 것이다. 차마 다 하지 못한 땅의 일들을 하늘로 밀어 올려서 모르는 척 별자리 전설이 생겼을 것이다. 우스운 이야기인줄 알면서도 미련이 가는 이유가 그것이었을 것이다. 별자리 전설로도 다 풀지 못한 이야기는 다시 땅으로 무심한 척 내려와 어른 동화가 되었을 것이다. 반가사유상처럼 웃고 있으나 시도 소설도 닥치게 하는 무서운 동화.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 슬프고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연 별자리 동화다.



이 지상의 일이 우주천체의 그림자라면, 우주천체를 우러르며 그리워하듯 이 지상의 것들을 그립게 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만족과 불완전을 존재자의 조건으로 가지고 태어난 우리여서 지상은 조화가 아닌 불협화의 연속이 되고 만다. 근본불안을 그치지 못해서 안정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주천체의 사정이 바로 그러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어 봄 직도 하다. 우주와 지상의 상호반조. 우주천체는 지상을 몽상하고 지상은 우주천체를 몽상한다. 흔한 소리로 만물은 둘로 나뉜 것이 아닌 하나라는데, 둥글고 원만하지 못한 거치적거리는 사지가 길게 발달한 지상의 존재자들은 제멋대로 괴로워서 구른다. 아니 구르지도 못한다. 그러면서 우주천체는 해와 달이 둥글고 원만하니, 별이 빛나니 돌아가야 할 본향이라고 그리워한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쉴 곳이 있다는 뜻일까. 이 지상의 일을, 그것의 축소판인 나의 일을 이렇게 기록하다 보노라면 우주천체가 명료히 제 얼굴을 내어줄 때가 있을 것인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일은 우리가 캄캄한 잠을 영원히 자야 하는 것과 상관이 있는 일이란 것을 조금은 알아챈 것 같다. 알아챘다 해도 별수는 없지만.

이진명은…

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 <단 한 사람>, <세워진 사람> 등. 일연문학상, 서정시학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