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실물경제 부문 지표가 회복되지 않는데 주식시장이 이처럼 강한 이유로 '더 이상 하락은 없을 것'이라는 심리가 반영됐다는 의견이 나온다. 투자자들이 조심스레 그 동안의 복지부동을 끝내고 '고(GO)!'를 외치기 시작한 모습이다.
코스피 거래대금, 2007년 수준
9일 코스피와 코스닥지수 모두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54.28포인트(4.30%) 상승해 1316.35를 기록, "1300선이 새 저지선이 될 것"이라던 예상을 가볍게 넘어섰다. 코스닥지수 역시 20.62포인트(4.47%) 폭등해 481.45를 기록했다.
코스피는 지난해 10월 15일(1340.28), 코스닥은 지난해 8월 25일(484.37) 이후 가장 높은 지점까지 올라왔다.
쉼 없이 올라왔다는 게 중요하다. 지난달 첫 거래일(3월 2일)을 1044.28로 시작한 코스피지수는 9일까지 큰 조정 없이 26.1%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 기간 코스닥지수 상승률은 무려 33.2%에 달했다. 한 달여 만에 이 정도로 높은 수익률을 올린 투자상품은 파생금융상품을 제외할 경우 주식이 유일하다.
이처럼 시장 여건이 좋다보니 투자자금도 앞 다퉈 시장으로 몰려들어오고 있다. 9일 코스피 거래대금은 올해 들어 가장 많은 8조9543억 원에 달했다. 2월 2일 거래대금(1조2754억 원)의 여덟 배에 달한다. 코스피지수가 2085.45를 기록, 사상 최고 수준까지 올랐던 지난 2007년 11월 1일 거래대금 8조9358억 원을 넘는다.
코스닥 역시 마찬가지다. 9일 거래대금 2조8994억 원은 2007년 6월 22일의 3조2050억 원에 육박한다. 거래량이 주가 상승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시장 참가자들의 열기는 세계 경기 수준과 관계없이 주가가 최고조로 치솟았을 때와 비슷한 수준인 셈이다.
한 때 국내 시장을 빠른 속도로 이탈했던 외국인이 다시 귀환하고 있다. 지난 3월 10일 이후 외국인이 코스피에서 순매도를 기록한 날은 6거래일뿐이다. 당장 9일만 해도 장 마감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 외국인은 대규모 순매수에 돌입, 2885억 원 어치 주식을 사들였다.
▲코스피지수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
정부 저금리 공세, 환율하락이 '일등공신'
주식시장이 이처럼 강한 힘을 발휘하는 원천에는 한은의 저금리 공세와 이에 따라 풍부해진 시중유동성이 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2%까지 끌어내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이미 시중금리가 제로수준에 달해 예금의 매력도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8일 발표한 '3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 수신은 2월보다 5조2000억 원 줄어들었다. 경제위기감이 급격히 치솟던 2월만 하더라도 은행 수신은 20조6000억 원 증가한 바 있다.
특히 그 동안 시중자금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당기던 머니마켓펀드(MMF) 3월 수신이 3조7000억 원 순유출로 전환, 덩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반면 주식형펀드는 2월 1조1000억 원 감소에서 3월에는 1조5000억 원 증가로 돌아섰다. 저금리를 견디지 못한 시중자금이 고수익을 좇아 주식시장에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환율하락을 꼽을 수 있다. 상당기간 지속된 원화약세가 끝나가는 조짐이 점차 뚜렷해짐에 따라 경기 불확실성을 키우던 제1 변수가 안정세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원화의 추가 강세 기대감은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을 국내로 빨아당기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김승현 토러스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주가 상승의 가장 큰 요인은 정부 정책에 따라 시장의 유동성 총량이 늘어났다는 점과 환율 방향성이 확인됐다는 점"이라며 "이에 따라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움직임이 점차 강화되고 있다. 이미 회사채 시장은 '신용채'로 평가받는 BBB급 채권 금리도 낮아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경기와 상관없이 위험자산에 돈이 흘러들어가는 '유동성 랠리'가 시작됐다는 말이다.
안도 랠리? 유동성 랠리?
보다 근본적으로 점차 많은 투자자들이 '더 이상 시장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베팅을 늘리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임지원 JP모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투자자들이 지속성에 확신을 가지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4분기보다 시장이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늘려가는 것으로 보인다"며 "일종의 '안도 랠리'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평가했다.
다시 말해, 최근 주식시장 급등은 과거 급등장세나 경기 회복 기대감을 반영한 환호성 짙은 장세라기보다는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데 안도한 성격이 짙다는 뜻이다.
만약 코앞에 닥친 실적발표 시즌 결과 여전히 기업 실적 호전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주가는 어떻게 될까? 큰 악재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평가다.
김 센터장은 "이미 1분기 실적은 워낙 나쁠 것이라는 기대가 그 동안 주가에 반영돼 있었다. 지금 주가 상승을 실적 발표와 꿰맞춘다면 '종전 기대보다 더 나쁜 결과가 나오진 않을 것'이라는 말로 설명 가능하다"고 했다.
지난해 말, 수많은 경제전문가들이 "2009년 상반기가 바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주식시장 심리는 그 말을 전제로 주가를 밀어올리고 있다.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다'는, 어찌보면 절박한 심정이 폭발적 상승세로 연결되는 모양새다. 만에 하나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또 한번 꺼지기 시작한다면? 아직 그런 예상은 현재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설득력 없는 구호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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