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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대공황'…'삽질'로 '경제 위기' 극복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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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금은 '대공황'…'삽질'로 '경제 위기' 극복 못 해"

[대담] 한·일 원로 석학 "위기 극복 해법은 지역·사람에 있다"

"토건 사업 중심의 공공사업으로는 절대로 1929년 대공황과 흡사한 현재의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원조 '토건국가' 일본에서 정부 주도의 토건 사업을 강하게 비판해온 미야모토 겐이치(宮本憲一·79) 오사카시립대 명예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경제 살리기'를 내세우며 추진하는 각종 토건 사업이 "경제 위기의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미야모토 교수는 지역경제학, 환경경제학 분야를 1960년대부터 개척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학자다.

최근 지역재단과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전국 교수 모임' 초청으로 방한한 미야모토 교수는 서울대 김정욱(63) 교수와의 대담에서 "한국 정부가 왜 운하 사업과 같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업을 추진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며 "경제를 살리려면 복지, 의료, 교육 등 토건 사업과는 전혀 다른 공공사업을 전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강하게 비판해온 김정욱 교수도 "'4대강 정비 사업', '강 살리기 사업' 등으로 이름만 바꿔서 진행되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강을 살리기는커녕 강을 죽이는 정책"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대안 에너지 체계의 확립, 마을 살리기와 같은 경제도 살리고 더 나은 미래를 담보하는 사업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레시안>은 3월 27일 열린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전국 교수 모임' 세미나에 참석하고자 만난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두 원로 석학의 대담을 마련했다. 이 대담의 통역은 목원대 박경 교수(경제학)가 맡았다. 다음은 약 1시간 30분 동안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진행된 대담 전문이다.

▲ 지난 3월 27일 오전 대담 중인 미야모토 오사카시립대 교수(가운데)와 김정욱 서울대 교수(오른쪽). ⓒ프레시안

"1929년 대공황과 흡사…토건 사업으로 극복 불가능"

프레시안 : 최근 미국발 금융 위기에서 시작된 전 세계 경제 위기를 타개하고자 각국 정부가 앞장서 재정 적자 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대규모 토건 사업을 통해서 이 위기를 극복할 태세다. 지금의 경제 위기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과연 토건 사업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가?

미야모토 : 일본의 경험을 얘기해보는 것은 유의미할 것 같다. 일본은 1990년대 10년간 불황을 경험했다. 일본 정부도 그 불황을 극복하고자 대규모 토건 사업을 추진했지만 결국 경기 회복에 실패했다. 대신 재정 지출이 확대되면서 결국 심각한 재정 위기를 야기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다른 문제도 심각하다.

우선 이런 토건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돌이킬 수 없는 환경 파괴를 강조하고 싶다. 또 불필요 없는 사업을 추진하느라 자원 낭비가 심했다. 그런 사업의 결과로 들어선 시설의 운영 비용도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 많아지면서 지방정부, 중앙정부의 큰 부담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경험에 비춰보면 최근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일본의 1990년대의 불황과는 달리 이번 경제 위기는 세계 공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 국가의 국내 대책만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미국 경제가 회복되지 않고서는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의 경기가 나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 미야모토 교수는 "과거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토건 사업 중심의 공공사업으로는 현재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전 세계적 경제 위기라는 점에서 이번 공황은 1929년의 세계 대공황과 비슷하다. 그럼, 1929년은 어땠는가? 미국은 당시 공황을 극복하고자 뉴딜 정책으로 상징되는 정부 중심의 공공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보면 이 뉴딜 정책은 성공하지 못했다. 공황으로부터 탈출은 전쟁으로 가능했다.

단, 이번 공황이 이런 전쟁으로 극복할 가능성은 아주 낮다. 그 비용이 얼마나 큰지 모두 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전쟁보다는 공공사업으로 이번 공황을 극복할 방안을 찾는 게 더 현명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도대체 어떤 공공사업으로 공황을 극복할 것인가, 바로 이것이다.

대규모 토건 사업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공공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복지, 의료, 교육 등 공황으로 고통을 겪는 이웃을 보듬으면서도, 사람에 투자하는 방식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렇게 돼야 공황도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황 이후의 좀 더 나은 미래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의 '국토 개조론'은 일본의 '열도 개조론' 재탕"

김정욱 : 나는 토목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현재 경제 위기의 본질을 정확히 규정할 능력은 없다. 다만 지금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 위기 대책이라는 게 얼마나 천박한 시대착오인지는 지적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1970년대 일본의 '열도 개조론'을 따라서 '국토 개조론' 혹은 '자연 개조론'을 언급하면서 대규모 토건 사업을 추진할 태세다.

한반도 대운하로 대표되는 그런 토건 사업은 방금 미야모토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현재의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중·장기적인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좀
▲ 김정욱 교수는 "우리나라의 체질 전환을 꾀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필요하다"며 "대안 에너지 시스템 구축, 마을 살리기 등에 정부가 나서야 하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
먹는 정책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서 우리나라의 체질 전환을 꾀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없는 게 답답할 뿐이다.

어떤 방향으로의 체질 전환인가? 이미 많은 양심적인 학자들이 여러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예를 들면 에너지 문제만 해도 할 일이 무궁무진하다. 재생 가능 에너지의 보급, 에너지 효율 향상 사업을 통해서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지속 가능한 에너지 체계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가능하다.

지역, 농촌, 시골 마을의 경쟁력이 없다고 타박만 하지 말고, 이참에 그런 시골 마을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는 일은 왜 생각하지 못하나? 이렇게 지역 발전, 소비 구조, 산업 구조를 바꾸는 일이야말로 토건 사업보다 자원도 효율적으로 쓰면서 현재의 경제 위기도 극복하고 더 나아가 10년, 100년 후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시대착오적인 한반도 대운하…'강 살리기'로 이름만 바꿔서 강행"

프레시안 : 방금 김정욱 교수가 이명박 대통령의 국토 개조론, 자연 개조론이 일본의 '열도 개조론'의 재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열도 개조론의 전개 과정은 어땠나?

미야모토 : 1969년 다나카 가쿠에이 전 수상이 '열도 개조론'을 내세우면서 전국에서 동시다발 공사를 시작했다. 특히 일본 곳곳에 고속도로, 고속철도를 건설하고 이들을 연결해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자는 게 이 열도 개조론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갖가지 공사가 진행되면서 자연 파괴와 같은 후유증이 커지고 반발이 심해지면서 1970년대 중반 폐기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에서도 토건 사업만큼이나 자연환경,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이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1980년대 후반부터 신자유주의로 상징되는 시장주의가 일본에서도 널리 확산하면서 다시 한 번 더 '국토의 효율적 개조'와 같은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더 부활하긴 했지만….

김정욱 : 한국의 최근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 일본에서 성공하지 못한 열도 개조론을 기어이 한국에서 완성해 보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은 애초에 한반도 대운하를 강행하려다가 국민 반발이 심하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더니, 얼마 안 가 '4대강 정비 사업'을 들고 나왔다.

그러다 '이미 많은 예산을 들여서 오랫동안 정비 사업의 진행해왔기 때문에 더 이상 정비할 게 없다'는 반론에 직면하자 이제 다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들고 나와서 기어이 착공을 시작했다. 애초 홍수를 막겠다며 치수 사업의 일환으로 계획된 경인운하도 운하로 성격이 바뀌어 착공을 한 상태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1단계 사업이라는 걸 곧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강 살리기'라는 이름을 앞세우다보니 국민 입장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강 살리기'를 한다는데 좋을 일 한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나처럼 운하 사업을 반대하는 교수는 졸지에 '강 살리기'를 반대하는 사람이 되었다.

▲ 미야모토 교수는 "내륙 운하를 교통수단으로 삼는 나라가 없는데 왜 한국이 한반도 대운하와 같은 사업을 하려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며 주민이 참여하는 하천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프레시안

"운하 사업, 왜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프레시안 : 미야모토 교수는 처음 한국에서 운하 사업을 추진한다는 얘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미야모토 : (웃음) 한국의 새로운 정부가 한반도 대운하, 이런 걸 추진한다는 얘기를 듣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랫동안 운하 네트워크가 발달해온) 유럽을 포함해서 전 세계적으로 내륙 운하를 교통수단으로 삼는 나라가 없는데 왜 (3면이 바다인) 한국에서 그걸 하려고 하는 걸까? 누구나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사실 일본에서도 하천을 둘러싼 여러 가지 토건 사업을 놓고 많은 갈등이 있었다. 애초 일본 정부는 이수(利水)의 입장에서 전력 생산, 용수 이용 등을 위해서 댐 건설에 주력했다. 그러다 최근 수십 년간의 댐 건설이 여러 가지 문제를 낳으면서 이수가 아닌 치수(治水)의 관점에서 하천 정비를 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하천 정책을 전환하는 데는 전국에서 발생한 댐 반대 운동이 큰 계기가 되었다. 지역 주민에 기반을 둔 반대 운동이 곳곳에서 진행되면서 하천 정책에 주민 참여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생겼다. 100개 이상의 지류가 흘러들어오는 일본 최대의 호수 비와코(琵琶湖)의 하천 정책의 변화는 이런 흐름을 잘 보여준다.

애초에는 비와코의 하천 정책은 호수에서 오사카만으로 흘러들어가는 요도강의 하류를 정비하는 데 초점이 맞춰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와코로 흘러들어가는 지류의 상류부터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식으로 하천 정책이 변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에서는 최초로 만들어진 유역정비위원회의 활동이 컸다.

이 위원회에는 공무원, 전문가뿐만 아니라 주민도 참여해서 대안 정책을 논의했다. 이 위원회는 요도강과 같은 하류뿐만 아니라 비와코의 근원이 되는 산림부터 각 지류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것을 주장했다. 특히 이 위원회는 댐 건설을 반대해 큰 주목을 받았는데, 결국 이런 주장 탓에 5개의 댐을 건설하려는 정부와 마찰을 빚은 끝에 해체되고 말았다(2008년).

그러나 최근 강의 유역 4곳의 지방자치단체, 즉 시가현, 미에현, 오사카부, 교토부 등 4곳의 지방자치단체장이 유역정비위원회의 안을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새로운 양상이 진행 중이다. 예전에는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와 하나가 돼 댐과 같은 토건 사업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그런 흐름도 바뀌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방정부의 심각한 재정 위기가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렇게 지방정부, 중앙정부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유역정비위원회를 대신해 '하천정비를 위한 국민회의'라는 시민단체가 생겨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이 국민회의에는 하천정비 업무를 담당했던 국토교통성 공무원과 하천 정비에 최대 권위자인 동경대학 명예교수가 참여해 큰 반향을 얻었다.

▲ 김정욱 교수는 "현재 진행 중인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하천 정책은 원칙이 없다"며 "강을 살리기보다는 궁극적으로 강을 죽이는 정책"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프레시안

"이명박 정부의 '강 죽이는' 無원칙 하천 정책"

프레시안 : 미야모토 교수가 언급한 일본의 현실은 최근 변화하는 하천 정책의 한 흐름을 보여준다. 김정욱 교수도 같은 맥락에서 정부의 하천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내놓았었는데….

김정욱 : 사실 내가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없다. 여러 가지 안의 장단점을 살핀 후, 최선의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게 바로 정부의 역할이다. 국민이 정부에 세금을 내는 이유가 뭔가? 하지만 하도 정부에서 비판자에게 '대안' 타령을 하니, 안쓰러운 마음에 몇 가지 기본 원칙을 얘기해 보겠다.

방금 미야모토 교수가 현실을 잘 설명했듯이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하천 정책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댐 건설 정책을 고수하는 선진국은 거의 없다. 미국, 캐나다 등에서는 기존의 댐을 해체하고 하천을 복원하는 게 오히려 최근의 하천 정책의 추세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강 살리기' 운운하면서 진행하는 이명박 정부의 하천 정책은 방향이 완전히 틀렸다. 내가 생각하는 제대로 된 하천 정책 방향의 원칙 세 가지는 이렇다. 첫째, 물은 만인이 다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물을 관리할 때도 정부뿐만 아니라 시민, 기업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둘째, 수량, 수질, 홍수, 용수 등의 관리가 제각각이 아니라 일원화돼야 한다. 1990년대 초부터 많은 학자는 물 관리 일원화를 요구해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런 중요한 정책 변화를 수용하기는커녕 각종 하천 토건 사업을 최우선에 내세우는 등 오히려 과거의 물 관리 방식으로 회귀하고 있다.

셋째, 일본의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유역 단위 관리는 하천 정책의 최근의 흐름이다. 예를 들면, 하류의 큰 강만 신경 써서는 절대로 수질오염을 해결할 수 없다. 큰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시골 마을의 도랑부터 관리를 해야, 즉 도랑의 오염원을 제거하고,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관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이런 원칙을 무시한 하천 정책은 결국 강을 살리기는커녕 강을 죽이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강을 살릴 의지가 전혀 없는, 심지어 강을 죽이려는 정책에 '강 살리기'라는 표현을 쓰는 이 정부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

"'어용' 학자 어디서나 문제…'운하 반대 교수 모임' 인상적"

▲ 미야모토 교수는 "정부 정책의 전국의 2000여 명이 넘는 교수가 반대하는 일은 일본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며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한국 교수의 활동에 존경을 표시했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가 운하 사업을 추진하는 데는 이른바 환경, 토목 등의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한몫했다. 이른바 '어용 교수', '업자 교수'라고 불리는 이들 전문가가 정부 입맛에 맞는 연구 결과를 내놓으면서 정책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여론을 왜곡하는 일이 적지 않은데….

미야모토 : 일본의 경우에는 비교적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연구해 비판적인 결론을 내놓는 학자가 많은 편이다. 특히 대학에 몸담고 있는 많은 지식인 사이에는 전쟁 전에 대학이 정부에 완전히 종속돼 학자들이 부역을 한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서 정부와 대학이 거리를 둬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물론 일본에서도 각종 정부 위원회의 위원을 겸임하면서 공익과 반하는 각종 토건 사업 추진에 도움을 주는 학자도 많다. 하지만 그런 학자를 견제할 수 있는 최고 실력을 갖춘 학자는 여전히 학문과 양심이 호소하는 대로 자기 발언을 하곤 한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하천 정비에 가장 권위가 있는 학자가 시민단체에 참여한 것은 대표적인 예다.

김정욱 : 미야모토 교수의 얘기를 듣고 보니 일본에서는 그런대로 학문 공동체 내에서 견제가 가능한 모양이다. 한국의 상황은 일본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한국에서는 대학의 교수들이 연구비의 원천이 되는 정부 프로젝트에 목을 매다보니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학자하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학자의 양심에 따라서 자문을 해야 마땅한데, 정부의 입맛에 맞는 대로 결론을 내놓고 싶어 하는 유혹에 쉽게 굴복하곤 한다. 학문적 업적과 별개로 정부에 가까운 사람이 경쟁력을 갖추는 현실은 이런 굴복을 더욱더 부추긴다. 그 결과 한국에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학자를 찾아보기란 정말 어렵다.

미야모토 : 꼭 그렇지만도 않다. 전국에서 2000여 명이 넘는 대학 교수가 정부가 추진하는 핵심 정책에 반대해 모임(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전국 교수 모임)을 만들어서 1년 이상 활동하는 것은 일본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한국의 양심적 지식인의 활동에 크게 놀랐다.

"지역 주민이 주도하는 '내발적 발전'이 해법"

▲ 김정욱 교수는 "지역 주민,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의 토건 사업의 강력한 지지자가 되는 게 현실"이라며 "이런 현실을 바꿔야만 변화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오랫동안 한국, 일본의 현실을 염두에 두고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다. 앞으로 경제 위기 상황이 지속될수록 오늘 얘기한 방향과는 반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어떤 대안이 있을까?

미야모토 : 나는 주민, 시민들이 비판 의식을 갖는 게 모든 문제를 푸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비판 의식을 가진 주민들이 시작해서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이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중앙정부를 견제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장 유력한 대안이 아닐까?

김정욱 : 원론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일본, 한국의 현실을 보면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한국만 놓고 보면, 지역 주민,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의 토건 사업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중앙정부가 각종 보상금, 지역 개발 등을 미끼로 던지면 그걸 덥석 무는 것이다. 이런 상황부터 바꾸지 않으면 변화의 간으성은 굉장히 낮다.

미야모토 :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시 지역 주민부터 변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지역 주민 스스로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외래 자본에 의존하는 개발은 '독'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지역 주민이 주도하는 '내발적 발전(Endogenous Development)'을 강조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주민의 학습이 필요하다. 여기서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비판적 전문가들이 중앙정부 중심의 토건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주민이 직접 주도할 수 있는 대안 개발 방식을 주민과 머리를 맞대고 고안해야 한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일본에서 지역 연구가 갈수록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아주 고무적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지역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학자들이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지역 연구에 대한 관심이 지역 주민의 창의적인 활동과 연계가 된다면, 최근의 경제 위기를 극복할 지금과는 전혀 다른 해법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 일본이 그런 해법을 주도하는 나라가 되기를 희망한다.

"외부에 의존하는 개발, 왜 '독'인가?"

▲ 미야모토 교수는 "지역 주민이 주도하는 '내발적 발전'이야말로 경제 위기의 유력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
미야모토 교수는 26일 지역재단 창립 5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인류가 공존하고, 환경을 보존하며, 빈곤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시장을 중심에 놓는 신자유주의를 거부해야 한다"며 그 대안으로 자신이 1980년대 초부터 제기한 지역 주민이 주도하는 '내발적 발전'을 제시했다. 그의 이 주장은 이미 국내에서 지역재단 등을 통해서 소개되었다. (☞관련 기사 : "'성장 동맹'에 맞선 저항, 농촌에서 시작하자")

미야모토 교수는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토건 사업처럼 외부에서 주도한 개발은 여러 가지 문제를 낳는다"며 일본의 경험을 염두에 두고 다섯 가지 문제점을 제시했다.

△외부 자본을 유치한 개발은 환경 파괴, 자원 낭비 등을 낳는다. △고용·조세 등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부분은 적다. △개발이 진행될수록 중앙으로 부가 빠져나가면서, 지역 간 격차는 해소되지 않는다. △산업 구조가 바뀌는 등 경제 환경이 바뀌면 유치 기업이 빠져나가 지역 경제가 파탄난다. △지역의 경제·문화가 없어져 중앙정부, 기업 의존이 심해진다.

미야모토 교수는 "반면에 내발적 발전은 지역 내의 자원, 기술, 전통을 살리면서 부가 가치를 창출하고, 더 나아가 지역 내에서 경제가 순환할 수 있도록 해서 이윤, 조세, 저축 등을 지역에 귀속해 재투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며 "이래야 비로소 지역 발전이 해당 지역의 복지, 교육, 문화, 학술 발전 등 주민의 삶의 질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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