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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홍 대리가 바쁘면서도 우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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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홍 대리가 바쁘면서도 우울한 이유

[현장] '경제 구원투수' 신용보증기금 직원들의 고달픈 하루

17일 아침 9시, 신용보증기금 광진지점 고객3팀에 자리한 홍영표 대리(31, 가명)의 전화벨은 쉬지 않고 울려댄다. 팀장의 기업 조사 지시는 끊임없이 내려온다. 오늘은 총 다섯 군데 조사를 나가야 한다. 하루 평균 3개 업체와 상담하고 3곳에 실사를 나간다.

출근한지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홍 대리는 곧바로 I건설사 조사를 위해 지하주차장으로 향한다. 조사를 마치고 돌아오면 밀린 서류업무를 처리하고 곧바로 오후 실사 준비를 해야 한다.

홍 대리는 지난 2004년 신보에 입사했다. 중소기업에 보증 지원을 해주는 게 그와 동료들이 하는 일이다. 신용도가 떨어져 가진 담보물로도 은행 대출이 어려운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가 주 고객이다. 상당수 영세업체는 신보가 내준 보증서가 있어야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하루 대여섯 건이던 상담 기업, 열다섯 건으로 늘어

요즘 들어 홍 대리의 하루는 정신없이 돌아간다. 정부가 중소기업 유동성 공급을 위해 정책적으로 신보의 보증 문턱을 낮췄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대출금의 85% 정도까지만 보증을 서줬으나 이제는 보증규모가 95%, 100%로 늘어났다. 최고 70억 원 선이던 보증한도는 올해 일시적으로 100억 원으로 증가했다. 보증료는 더 싸졌다. 지난해 1.35%에서 올해 1.20%로 내려갔다.

게다가 예전에는 신보 문턱을 넘기 힘들던 회사도 보증 대상에 포함됐다. 기존에는 전체 21개 신용등급 중 15등급 이상 사업자만 보증대상자였으나 올해는 18등급까지 포함된다. 더 싼 값에 보증을 많이 받을 수 있으니 고객이 늘어나는 게 당연하다.

▲보증상담을 위해 보증기관을 찾는 기업인이 크게 늘어났다. ⓒ프레시안
한숨을 돌리기 무섭게 김경한(가명, 45) 팀장이 그를 찾는다. 막 상담을 마친 팀장은 조사 지시를 내렸다.

"홍 대리, 신규 고객이야. 분석 좀 해봐. 아! 그리고 XX전기라고…보증연장해야되니 재무현황 변동내역 체크하고."

팀의 업무는 고객과의 상담에서 시작된다. 보증이 가능한 업체라는 판단이 서면 팀장은 업체에 대한 본격적인 실사를 지시한다. 재무제표를 분석하고 부동산 등기를 확인하고 기업주의 개인자산이나 성향, 개인신용등급 등도 파악한다. 이후 실사를 통해 기업 상태가 확인되면 보증서가 발급된다.

고객이 늘어나다보니 보증서 발급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예전에는 일주일이면 가능하던 발급이 이제는 한 달이 넘게 걸린다. 그럼에도 고객은 끊이지 않고 늘어만 간다. 하루 대여섯 건이던 상담 신청량이 요즘에는 열다섯 건 정도로 늘어났다.

얼핏 고개를 들어보니 심 팀장이 지친 표정으로 자리로 되돌아간다.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린 고객이 팀장석 앞에 초조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또 상담이 시작된다.

고객수가 많아지는 만큼 사고(채무불이행 사태)도 늘어난다. 당장 이날도 은행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경기가 어려워지다보니 꼼꼼히 기업상태를 확인했음에도 당시 예상치 못한 일로 기업이 무너지는 것이다.

회사에서 올해 예상 보증사고율을 10.7%로 잡았다고 들었다. 예전에는 보통 3~4% 정도를 목표치로 삼았다. 최근에는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들에도 보증이 들어가니 아마 내년이나 내후년부터는 보증사고율이 더 늘어날 것이다.

▲보증이 필요한 기업은 개인사업자에서부터 영세업체, 코스닥 상장사까지 다양하다. 영세업체 대부분은 하도급구조로 인해 경기변동 대응력이 떨어진다. ⓒ프레시안

우울한 소식 뿐…왜들 이렇게 어려워졌지?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현장실사를 나가게 됐다. "고생한다"는 지점장의 말을 뒤로 오후 첫 출장지인 T전기로 향했다. 성수동이다. 소규모 공장이 밀집한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건설경기가 어려워지다보니 미리 유동성을 확보해야 돼요. 제 부동산 담보등기도 확인하셨지요? 이상없이 보증서 나오는 거지요?"

변전설비 배전판을 만드는 회사다. 부동산 등기를 갖고가도 은행에서 대출을 해주지 않더라는 말을 들었다. 보증규모는 1억5000만 원. 재무제표를 확인해보니 2006년 대비 매출이 20% 정도 줄어든 상태이지만 아직은 그럭저럭 버틸 만 해보였다.

정부가 지원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소기업 상황은 요즘 말이 아니다. 현장에 나오면 만날 '죽겠다'는 하소연만 듣는다.

금융감독원 조사가 보도된 뉴스를 보니 지난해 4분기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된 중소기업은 671개 사로 전분기(386개사)보다 73.8% 급증했다고 한다. 기업 경영환경이 극도로 악화되니 정부는 위험을 무릅쓰고 대출보증을 독려하게 된다. 순간 홍 대리는 '만약 사고가 나중에 논란이 되면 결국 책임은 우리가 지는 것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다음 차례는 인근에 있는 구두제조업체 F사. 유명 여성의류 브랜드 여러 곳에 납품하는 하도급업체다. 납품업체 매출이 급감하자 덩달아 이 업체도 유동성에 타격을 입었다. 결국 유동성이 문제다. 대부분이 경기 변동에 취약한 영세업체들이다 보니 실적이 좋아도 현금을 못 구하면 회사는 망한다.

특히 이 회사는 하도급업체의 한계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듯했다. 납품업체가 어음결제만 하니 은행에서 어음할인을 받지 못한다면 현금을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 요즘 은행은 잔뜩 겁을 집어먹어서 납품업체가 아무리 유명브랜드라도 할인을 해주지 않는다.

이번에 보증서가 지원되면 이 회사는 2억 원을 추가로 대출받을 수 있다. 사정이 그나마 좀 나아질 것이다. 물론 사정이 제대로 개선되려면 경기가 풀리고 납품단가도 인상돼야 한다. 원재료비가 최근 환율 인상으로 20%나 뛰었는데도 납품업체들은 단가를 올려주지 않았다.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서 발급은 통상 상담-문서조사-현장실사 등을 거쳐 이뤄진다. 예전 일주일이면 가능하던 발급이 최근에는 한 달이 넘을 정도로 미뤄지고 있다. ⓒ프레시안
마지막 심사업체인 T의류사로 향했다. 동대문에 골프의류를 납품하는 업체로, 나이 일흔을 바라보는 노부부가 수십년 째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할인어음 6000만 원의 보증을 부탁했다. 차를 세우니 미리 마중나온 김경식(가명) 사장이 반갑게 홍 대리를 맞는다.

작업장에 들어서니 1970년대로 돌아온 것 같다. 봉제사들이 볕도 들지않는 곳에서 저마다 작업에 한창이다. 어림잡아 봐도 젊은 사람은 세 명 정도. 나머지 십여 명은 모두 어머니뻘이었다. "이제 이런 일 하는 사람 대한민국에 없지." 김 사장의 말을 들으며 자리에 앉았다.

"보증은 다음 주면 나갈 겁니다. 그런데 어음이 많이 불안해졌으니 어음보험도 들어두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보험료 1~3% 정도가 붙는데요, 최대 손실분의 70%까지 보장됩니다."

어음부도 위험이 커지다보니 신용보증기금이 제공하는 어음보험에 가입하는 회사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 또한 유동성 부족이 빚은 풍경이다. '신용폭탄'은 여전히 실물경제의 밑바닥을 굴러다닌다. 김 사장의 "보험들게 돼 좋다"는 말을 뒤로 홍 대리는 회사로 차를 몰았다. 이미 시간은 오후 6시가 넘었다. 정식업무 시간은 끝났다.

"후배직원 안 들어오나…"

운전 중 전화를 받았다. 지난달 보증을 신청한 업체다. 이제는 녹음기를 튼듯 답변이 술술 나온다.

"저희가 최대한 빨리 진행하고는 있는데요, 물리적으로 이번 달에는 불가능합니다. 제가 실사해야 할 기업이 서른 곳이 넘어요. 이곳들 다 끝나야 사장님 회사 차례입니다. 자금 계획은 최대한 넉넉하게 잡아놓으세요. 해드릴 수 있는 말이 이것 밖에 없네요. 죄송합니다."

모두가 딱한 사정을 털어놓는다. 하루가 멀다하고 '위기'라는 말을 들어야 하고 '좀 도와달라'는 하소연을 상대해야 한다. 그러고도 무너지는 회사가 생기면 은행에 대위변제 후 채권추심에 들어가야 한다. 가장 맞기 싫은 순간이다.

회사로 들어오니 이미 저녁식사가 배달됐다. "먹고 합시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 숟가락을 들었다. 조미료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김치찌개를 꾸역꾸역 입에 밀어넣었다. 올해 들어 집에서 저녁을 먹은 기억이 없다.

밤에 해야 할 일을 체크해봤다. 내일 실사할 업체 세 군데의 서류심사가 있다. 이날 출장내역도 정리해 결재를 올려야 한다. 오전에 통보받은 사고사례 처리와 어음보험 요청 기업 건도 마무리할 계획이다. 최근 들어 개인기업에서 법인기업으로 전환하는 업체가 늘어나다보니 이 부문 서류도 준비해야 한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중소기업이 흔들린다. 중소기업이 흔들리니 정부 대응이 강화된다. 정부 대응 강화는 중소기업을 상대하는 정부 출연기관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늦은 저녁이 배달된 신보 광진지점. ⓒ프레시안
'아무래도 주말이라야 가능하겠는데.' 차라리 인턴사원에게 일을 좀 더 줄까하는 생각도 든다. 정부가 대졸 인턴사원 모집을 독려하면서 지점에서는 인턴사원을 3명 뽑았다. 회사 전체로는 200명이 뽑혔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곧 접었다. 보통 인턴들은 하는 일이 없다는데 옆 자리의 김택현(가명) 씨는 불쌍하다 싶을 정도로 일이 많다. 기한연장업무, 갱신보증업무 등 제대로 된 실무를 담당한다.

그는 올해 연말이 되면 다시 구직자 신세가 될 것이다. 언론에는 '근무성적 우수자는 다음 공채시 배려할 것'이라고 보도되지만 이런 얘기는 인턴사원들도 믿지 않는다. 그나마 정식 근무시간이 끝나면 퇴근시켜주는 게 지점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다.

11시를 갓 넘긴 시간, 봉천동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퇴근 준비를 서둘렀다. 일은 결국 주말로 미뤘다. 주말에 집에서 쉰 기억이 별로 없다. 얼핏 밖을 내다보니 술에 만취해 "그윽"하는 소리를 토해내는 남자가 비틀대며 걷는다. '술이라도 취하도록 마시니 좋겠다'는 부러움이 순간 일었다. 술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단 사실에 새삼 놀라며 언제가 마지막 회식이었는지 돌이켜봤다. 지난 설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경기 위축기. 바빠서 더 심경이 복잡해진다. 일이 많아 기뻐해야 한다는 최면을 스스로에게 걸며 홍 대리는 문을 나섰다. 노조가 게시한 벽보가 눈에 들어왔다. "정부와 경영진은 생명을 위협하는 노동강도 해소를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 짧은 한숨을 내쉬며 홍 대리는 어두운 도로를 달리기 위해 액셀러레이터을 힘껏 밟는다.

정부가 공기업 인력을 충원해주지 않는 이유

한동안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은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증규모가 과도하다는 비판에 따라 지난 2005년까지 정부는 꾸준히 기금 규모를 축소시켰다.

하지만 최근 경기위축이 심해지면서 이들 기금은 언론에 의해 화려하게 '경제 구원투수'로 추앙되고 있다. 정부도 기금규모를 대폭 늘려잡는 등 중소기업 기반을 떠받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신보 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많다. 업무량은 폭발하는데 인력충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다.

▲지난해 1월~2월과 올해 같은 기간 보증서 승인건수 및 금액 비교 그래프. ⓒ프레시안
19일 금융산업노조 신용보증기금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월 1일부터 2월 20일 사이 상담건수는 5898건이었으나 올해는 3만2288건으로 547% 증가했다. 보증서 발급 승인건수도 3154건에서 1만5060건으로 급증했다. 5964억 원이던 승인금액은 3조5507억 원으로 여섯 배가량 늘어났다.

박근익 노조 정책부위원장은 "그나마 3월 중순까지는 업무량이 적은 편인데도 극성수기인 5~6월의 평년 수준에 비해 승인건수가 135% 증가했다"며 "현재 본사인원 10%를 영업점에 전진배치했지만 과부하가 걸린 상태다. 이대로 가다가는 영업점 전체에 마비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추가 인력충원 계획은 없다. 대졸 인턴사원 200명이 전부다. "곧 나갈 인턴사원에게 책임감이 큰 업무를 맡겨 업무 위험을 높일 수는 없다"고 일선 담당자들은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민영화 정책의 영향으로 인력 확보가 어려워졌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올해 신보 운영비는 동결조치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결국 보증기관 민영화를 위한 디딤돌을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박 부위원장은 "얼마 전에 정책금융공사법이 통과됐다. 정부가 말로는 '선진화를 하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중복기관만 더 만들어 정작 필요한 곳에 출연금을 내려보내지 않는다"며 "세포분열이 이뤄진 후 민영화 절차를 밟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신보와 기보 직원들의 심리 밑바닥에는 민영화에 따른 통합 및 구조조정에 대한 두려움이 상존해 있다. 최근 공격적인 정부 보증이 향후 높은 사고율로 이어진다면 부실경영을 핑계로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그것이다.

실제로 과거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기술보증기금의 방만경영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정부의 주도로 기보의 보증을 통해 나간 대출 상당액이 부실화한 것이다. 이때 기보는 구조조정 과정을 밟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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