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관악지사 관내 집단요양신청에 따른 자문결과에 대하여 보안유지 및 자문의 보호에 철저를 기하고, 과거 사건과의 차이점을 분석, 대처방안을 마련하되 필요하면 설명회도 개최할 것."
***근로복지공단,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산재 불승인 사건 관련 이사장 지시사항 하달**
지난 3일 근로복지공단(이사장 방용석)이 공단 내 '보험급여국'에 이사장 지시사항으로 하달한 내용이다. 이같은 지시사항은 지난달 30일 공단 확대간부회의에서 결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공단 한 관계자는 8일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이사장이 개별 진정사건에 대해 구체적인 지시사항을 내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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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계자가 언급한 개별 진정사건이란 지난달 10일 사측의 지속적 노조탄압과 조합원 차별로 인해 집단정신질환 발병 진단을 받고 산재요양신청을 제기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사건을 뜻한다. 이 진정사건은 지난달 27일 진정을 제기한 13명 조합원 전원에 대해 산재불승인 결정이 난 뒤, 노조와 공단측간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공단에 따르면, 산재승인 여부를 판단할 때 자문토록 돼 있는 자문의사협의회의 신상정보는 내부 규정에 따라 외부에 알리지 못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위 지시사항 중 '자문결과에 대해 보안유지 및 자문의 보호에 철저를 기하고'란 대목은 일면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과거 사건과의 차이점을 분석, 대처방안을 마련하되 필요하면 설명회도 개최할 것"이란 부분이다. 여기서 언급된 '과거 사건'은 어떤 것을 의미하고, '대처방안'은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한 물음표가 생기는 지점이다.
***'승인' 공단 서부지사, "노조탄압에 따른 정신질환, 업무상 재해 인정"**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사건 진정에 동참한 민주노총 금속연맹 산업안전국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관계자들은 '과거 사건'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청구성심병원 집단 산재요양신청' 사건을 지목하고 있다.
청구성심병원 사건이란 2003년 8월 병원 조합원 8명이 "회사측의 노조탄압으로 집단 정신질환에 걸렸다"며 '산재인정신청'에 대해 근로복지공단 서부지사가 "노조탄압에 따른 정신질환이므로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다"며 진정을 받아들인 사건을 말한다.
당시 진정을 제기한 청구성심병원 노조와 산재관련 단체들은 최초로 노조탄압으로 발병한 정신질환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사건이라며 크게 환영했었다. 당시 언론들도 "'노조탄압에 정신질환' 산재 인정" 등의 제목으로 주요하게 다뤘다.
이밖에 거론되는 '과거 사건'은 지난해 7월 KT 전 직원 박모씨(51. 여)가 진정한 산재요양 신청에 대해 근로복지공단 전지지사가 "회사측의 감시와 감찰 등이 진정인의 우울 장애와 스트레스를 유발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받아들인 사건을 뜻한다.
위 두 가지 사례는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진정 사건과 그 내용이 매우 유사한 만큼, 하이텍 노조측이 산재요양신청을 제기할 당시, 요양신청 승인을 낙관적으로 내다봤던 주요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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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 관악지사, "노사갈등으로 정신질환 발병 인정하나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 "**
하지만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조의 진정은 공단측이 거부하면서 좌절됐다.
노조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공단측의 <조사복명서>에 따르면, 공단 측은 두 단계의 '논리'를 통해 산재불승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조사복명서>의 핵심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2002년의 쟁의행위 과정과 직장폐쇄 철회 후 징계해고 및 조합원의 징계, 수차례의 고소고발 사건, 사업주의 손해배상청구소송 피소 등으로 다소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은 인정된다. 이는 2002년 쟁의행위와 관련된 일련의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자문의사협의회(산재승인여부를 결정하는데 주요 역할을 하는 기구로 이번 하이텍코리아 사건에는 E대, S대 병원등 의사 6명이 참여했다)는 이번 진정사건의 업무상 질병 여부를 심의한 결과, 노사갈등 이외에는 만성적 적응장애를 일으킬만한 이례적인 충격은 없었던 점을 고려할 때 업무상의 스트레스라기 보다는 노사관계의 갈등에서 빚어진 문제이므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의견을 밝혔다"
즉 공단은 진정인의 ▲정신질환 발병사실 ▲발병원인이 사측의 노조탄압에 있음을 인정했지만, △노조탄압은 노사관계갈등에서 비롯된 만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이민정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간사는 지난달 27일 전원 불승인 결정 소식을 접하고, "청구성심병원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전원 불승인은 상상도 못했다"며 "이번 공단의 결정은 많은 무리수를 둔 것 같다"고 소견을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청구성심병원 진정사건과 이번 하이텍 사건을 비교해보면 근로복지공단은 유사 진정 사건에 대해 관할 지사에 따라 산재신청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한 것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공단, 유사 사례 검토 하지 않은 듯**
한편 정작 이번 하이텍 사건을 조사했던 공단 관악지사는 과거 유사 사례에 대한 검토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즉 진정사건 조사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유사사례에 대한 검토 누락으로 공단이 불철저한 조사라는 비판을 자초한 셈이다.
노동전문지 <레이버투데이> 7일자 기사에 따르면, 공단 관악지사 관계자는 "우리가 청구성심병원 건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사안이 같은지 여부는 알 수 없으며, 자체 판단결과 하이텍의 경우는 산재로 인정할 수 없었다"고 밝혀, 사실상 유사 사례에 대한 검토가 없었음을 시인했다.
하이텍노조 법률대리인 유성규 노무사는 8일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조사의 기본은 과거 유사사례가 있는지 여부부터 확인하는 것"이라며 "청구성심병원 승인건은 이번 하이텍 노조 진정사건이랑 매우 유사함에도 이를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은 조사가 매우 형식적 수준에 그쳤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프레시안>이 최초 입수한 '이사장 지시사항'에 명시된 '과거 사건과의 차이점을 분석, 대처방안을 마련' 대목은 뒤늦게 하이텍 노조 측이 전원 불승인 결정에 반발, 청구성심병원 인정 사례를 근거로 재조사 요구에 대비한 자구책으로 볼 수 있다.
이사장 지시사항에 적시된 것처럼 공단측이 이번 하이텍 노조 진정사건과 관련한 수많은 의문점들에 대해 어떤 '대처방안'을 마련할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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