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파이브가 상가분양에 실패한 이유는 여러가지다. 그 중 고분양가 문제가 가장 크게 거론된다. 청계상인 대부분은 "엄두도 못 낼 수준"이라고 말한다. 원주민들은 아예 SH공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현 상황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할 경우 한동안 가든파이브는 '아시아 최대 유령단지'가 될 지경에 처했다.
▲서울시가 홍보한 가든파이브 조감도. ⓒ서울시 제공 |
분양률 18%…곳곳이 약점 투성이
규모 기준으로 아시아 최대를 지향하는 만큼 가든파이브 내부에 들어올 상가 수도 상상을 초월한다. SH공사가 생활용품판매(가블록, 라이프관), 아파트형공장(나블록, 웍스관), 산업용재판매(다블록, 툴관) 등 세 구역으로 나눠 각각 상가분양에 나서는 이유다.
이들 외에도 CGV, 스파시설 등이 이미 입주가 완료됐거나 계약이 확정된 상태며 전시장, 서점 등 문화공간까지 함께 들어설 예정이다. 이른바 한국을 대표하는 '몰링(Malling, 대형 복합 쇼핑몰에서 모든 소비행태를 소화하는 쇼핑공간)'으로 자리잡겠다는 게 SH공사의 목표다.
▲가든파이브 현장에서 작업 중인 한 노동자의 모습. 완공되더라도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게 가든파이브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다. ⓒ프레시안 |
부분적으로는 패션 등 생활용품 소비구역인 가블록이 전체 5358호 중 1293호 계약(계약률 24.13%)이 완료돼 상대적으로 계약 상황이 좋은 편이다. 나블록은 전체 734호 중 101호만 계약 완료됐고(계약률 13.76%), 다블록의 경우 전체 2268호 중 계약을 한 곳이 불과 123호(계약률 5.42%)에 불과하다.
이처럼 분양 성적이 저조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최근 경기침체로 분양시장이 냉각됐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내수가 바닥을 기는 마당에 아직 상권도 형성되지 않은 곳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할 상인을 찾기란 모래 사장에서 바늘 찾기다.
매장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도 약점이다. 그만큼 채워야 할 상가 수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박대원 상가정보연구소 소장은 "굿모닝시티의 점포수가 4500여개인데 가든파이브는 그 두 배다. 채워야 할 공간이 너무 많다. 과거 밀리오레, 두타 등이 나온 이후 사실상 복합쇼핑몰은 거의 다 '반쪽분양'이었다"며 "아직 교통접근도 등이 낮아 상권이 제대로 형성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이 추세라면 일반분양 성공률도 높지 않다"고 말했다.
청계 상인들 "절대 못 들어간다"
무엇보다 분양 저조의 가장 큰 원인은 턱없이 높은 분양가다.
현재 분양 계약자 대부분은 청계 상인들이다. 청계상인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공사에 따른 대체부지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시세와 상관없이 조성원가로 상가계약을 할 수 있는 특별분양 대상자다. 그럼에도 조성원가 자체가 상인들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높다고 청계상인들은 주장한다.
SH공사가 청계상인들에게 배포한 분양안내 책자에 따르면 가블록 지상1층 의류관(액세서리)의 경우 가장 비싼 분양가가 5억4000만 원이 넘는다. 영캐주얼 상가 중에서 가장 싼 곳이 2억3200여만 원 수준이다. 청계상인이 들어가는 상가는 모두 전용면적 7평이다. 1억 원대의 상가로 입주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진입도가 떨어지는 고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전자부품상가를 운영하는 최한재 상인은 11일 "청계천이 개발된 후 상권이 완전 죽어 들어갈 수 있는 여력을 가진 사람이 얼마 없다"며 "대출을 받고 들어가고 싶어도 대부분 상인이 그 사이 신용상태가 나빠져 대출도 못 받는다"고 말했다.
▲최 상인이 국세청에 신고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지난 10여년 간 월매출 추이. 2003년을 정점으로 청계 상가가 확연히 죽었음을 알 수 있다. ⓒ프레시안 |
상인들은 나아가 서울시가 공개한 조성원가 수준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한 전자부품업체를 운영하는 상인은 "가든파이브 수용원가가 평당 300만 원 수준이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개발비가 붙었다손 치더라도 어떻게 조성원가가 10배나 뛸 수가 있느냐"며 "안 그래도 경기가 최악인데다 아직 상권도 개발되지 않은 곳에 갔다가는 무조건 망한다. 절대 못 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상인은 "결국 가든파이브를 만든 당초 목적은 청계 상인의 대체부지를 만들어준다는 것 아니었느냐"며 "서울시가 재정적 지원을 해주고 상인들은 분양가 부담없이 5년 동안은 관리비만 내고 쓰게 해주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 5년이 지나서 상인이 현 조성원가로 분양가를 납부하게 해주면 상권 활성화에 나설 여력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장경철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건설비가 1조9849억 원에 달할 정도로 오르다보니 분양가도 올랐다. 홍보비 등이라도 낮춰 분양가를 낮추는 노력을 하고 청계상인들과 진실된 자세로 협상에 임했어야 하는데 서울시의 그간 행태는 그렇지 못했다"며 "처음에는 고자세로 나오다가 분양이 채워지지 않으니 한발씩 빼는 행태를 보고 상인들이 어떻게 시를 믿겠느냐. 당연히 '버티면 분양가가 더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웃어도 웃는 게 아니야'
실제 SH공사와 서울시는 상인들의 신뢰를 스스로 잃어버렸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처음 상인들을 설득시킬 때 내세운 조건은 '3년 거치 5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시설자금융자에 준해 융자해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처음 특별분양에 나설 당시 적용된 금리는 시중금리인 8%대에 달했다.
분양성적이 당초 예상보다 저조하자 SH공사는 지난달 6일까지 이뤄진 3차 추가계약에서 뒤늦게 △중소기업육성자금 금리(5%) 초과분에 대해 잔금납부 후 전매제한기간(2년) 동안 금리 보전 △분양금액의 20%였던 계약금을 15%(상인부담 5%)로 인하 등의 완화된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대폭 인하한 시점이다.
청계상인들이 입을 모아 "서울시가 상인들을 상대로 돈놀이를 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다.
비단 청계상인들 뿐만이 아니다. 가든파이브 건설을 위해 토지를 수용당한 황학동 원주민들은 아예 SH공사를 상대로 지난해 10월 상가분양금지 가처분신청을 서울 동부지법에 내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들 317명은 대부분 이곳에서 농사를 짓다 SH공사에 생활터전을 수용당한 후 대가로 보상금과 함께 가든파이브 입주를 약속받았다.
상가 입주 대상자인 원주민 송민상 씨는 "청계상인에는 조성원가로 상가를 공급해주면서 우리에게는 조성원가의 두 배인 감정가액에 상가를 주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우리는 청계상인을 위해서 생활 터전을 희생당하고 나온 것이니 형평성 차원에서 최소한 우리도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SH공사는 할 만큼의 노력은 다 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박희수 SH공사 사업2본부장은 "청계상인을 위해서 시설 추가보완을 많이 했고 직접 만나서 꾸준히 설득작업을 했다"며 "특별분양 자체가 세금으로 그들의 입주를 보태준다는 개념인데 더 이상 낮추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최근의 분양저조 때문에 '더 이상 특별분양에 나서지 않겠다'는 당초 방침을 바꿔 다시 특별분양을 한 차례 더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별분양이 성공하지 않는 이상 일반분양 성적을 높일 길이 없다는 사실을 시인한 셈이다.
박 본부장은 "오는 3월말~4월경 특별분양을 한 차례 더 실시할 예정이다. 다만 동시공고를 내 특별분양에서 남는 부분은 곧바로 일반분양 대상자를 예비공급자로 주고 청계 상인들의 자격은 상실시킬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가든파이브는 여전히 공사 중이다. 당초 7월 오픈을 호언했지만 지금은 서울시마저 회의적이다. 분양성적이 바닥을 기고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마땅한 대책 없어…'유령 상가' 되려나
하지만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뚜렷한 대책은 없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서울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서울시 균형발전본부 관계자는 "전문가들의 다양한 조언을 듣고 있다. 현재로서는 분양실적을 끌어올릴 만한 뚜렷한 대응책이 논의되지는 않았다"고 말을 아꼈다. 그는 다만 "7월 그랜드오픈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경기침체기에 상가 공급과잉마저 이어지는 마당이라 어떤 방식을 써서라도 청계상인들을 입주시키지 못한다면 가든파이브는 한 동안 텅빈 채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박대원 소장은 "SH공사에서 상품성을 지나치게 맹신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지금은 영등포 타임스퀘어, 노량진 민자역사 등 대규모 쇼핑단지가 동시에 공급되는 시기라 수요자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렵다"며 "지역적으로 쇼핑몰 분산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공급과잉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장경철 이사는 "결국 가격저항력이 너무 커서 문제다. 서울 동남권이 앞으로 호재가 많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자체 경쟁력에도 솔직히 물음표가 간다"며 "SH공사가 처음부터 청계상인에게 대폭적인 혜택을 주는 편이 옳았다. 지나치게 밀어붙이기식 분양작업을 강행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관계자는 "거품이 너무 많이 끼었다. 업계에서는 '서울시가 상인들을 상대로 돈놀이한다'는 말이 많다. 암암리에 각종 커넥션이 오고간다는 소문도 꽤 오래 전부터 나돌았다"며 "지금이라도 공사비 내역을 확실하게 밝히고 입주자에게 대폭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 상가를 채우지 못한다면 가든파이브는 서울의 애물단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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