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의 중국觀 지난 주 끝난 클린턴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미국 공화당 우파와 민주당 좌파는 이례적으로 손잡고 이 방문에 반대했었다. 장래 군사·경제면에서 미국의 도전자가 될 중국의 성장에 도움이 될 행동을 미국이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파의 주장이었고, 좌파의 주장은 미국사회가 요구하는 인권 기준을 중국이 충족시키도록 압력을 넣기 위해 우호적인 행동을 아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로 동기는 다르지만 중국과의 우호 증진을 반대한다는 점에서 두 진영은 보조를 함께 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중국에 갔다. 좌파에 대한 그의 응답은 중국의 인권 문제가 장기간에 걸친 점진적 발전을 필요로 하며 자신의 방문이 그를 위해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주리라는 것이었다. 또한 장쩌민(江澤民)과 함께 한 자리에서도 톈안먼(天安門)사건과 인권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원론적으로는 확고함을 과시했다. 우파에 대한 그의 대답은 더 직선적이다. 중국이 장차 미국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할지 여부는 미국의 태도에 일차적으로 달려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중국행이 중국을 미국에 우호적인 태도로 끌어들여 미국 국익을 증진시킬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미국은 이제 가상적(假想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미국 역사학자 마이클 셰리는 연전 <전쟁의 그림자 속에>란 책에서 전쟁에 대한 미국인의 기묘한 태도를 역사적으로 풀이한 바 있다. 남북전쟁 이후 본토에서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미국인은 한편으로 전쟁을 몹시 두려워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전쟁을 동경한다는 것이다. 람보의 비현실적 활약도 스타워즈의 초현실적 완벽성도 모두 이 묘한 심리에서 나온다고 한다. 냉전시대 소련과의 군비 경쟁 정책이 군산(軍産)복합체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 유력하게 나와 있다. 이런 정책이 국민에게 먹혀든 것은 전쟁은 무서워하면서 전쟁놀이는 좋아하는 국민 정서 때문이었다고 셰리는 설명한다. 걸프 전쟁의 양상에서 더 깊은 확신을 얻었다고 그는 말한다. '25년 후의 군사 대국' 중국을 지금부터 적대해야 한다는 미국 우파의 주장은 분명히 셰리가 말하는 '비겁한 호전성'의 냄새를 풍긴다. 닉슨의 중국 방문 후 26년간 중국의 변화를 훑어보면 앞으로 25년간의 변화를 비관적으로 내다볼 이유가 없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인의 아시아관(觀)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한국을 보는 눈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
1840년경의 아편전쟁에서 1940년경의 대동아전쟁까지 한 세기 동안 중국은 근대화의 후진국이었으며 열강의 침략 대상이었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장지에스의 국민당 세력을 타이완으로 몰아넣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움으로써 중국이 오랜만에 국가주권을 세웠지만 아직도 "아시아의 병든 노인"은 힘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소련의 도움으로 뒤늦은 산업화를 시작했지만 오래지 않아 소련과의 관계는 오히려 중국에게 짐이 되기 시작했고, 1950년대 후반 대약진 정책의 실패로 국가 발전은커녕 유지조차 벅찬 상황을 겪었다.
1970년대 초 닉슨의 중국 방문은 소련을 고립시키기 위한 전략적 목적으로 이해되는 것이지만 중국에게는 발전의 돌파구가 된 기회였다. 소모적인 문화대혁명의 와중에 있던 중국이 몇 해 후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는 데는 닉슨이 앞장선 중·미 간 해빙이 결정적 조건이 되었다. 1990년대 들어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새로운 강대국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자 미국 네오콘들은 닉슨의 중국 방문을 큰 실책으로 지목하기 시작했다.
1998년 7월 클린턴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클린턴다운 실용주의를 보여준 일이다. 네오콘의 한결같은 중국 봉쇄 주장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 진영에도 텐안먼 사태(1989)의 그림자가 걷히지 않고 있을 때였다. 이례적인 좌우협공을 무릅쓰고 그가 중국 방문을 강행한 것은 계속 커지고 있던 중-미 관계의 현실적 중요성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 방문의 성과를 되돌아보자. 먼저 왼쪽에서 제기한 중국의 인권 문제. 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한 비판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폭이 크게 줄어들어 있다. 실질적인 개선이 꽤 많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클린턴의 주장대로 그의 방문이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 추진에 도움이 되었고, 그것이 인권 상황의 개선으로 이어진 것이다.
중국의 성장을 도와줘선 안 된다는 오른쪽 주장과 관련해서는 평가가 복잡하다. 단기적으로는 그 동안 중국이 미국의 대외수지 적자를 흡수해 줌으로써 미국 재정과 경제 운용을 편하게 해줬지만, 그것이 미국에 닥친 경제 파탄을 더 크게 만드는 간접적 배경이 되었다. 21세기 들어 중국이 강대국으로 성장할 것은 예견된 일이거니와, 이번 공황으로 인해 그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2030년까지 미국의 경제 규모를 따라잡는다는, 지금까지 '믿거나말거나'였던 중국의 계획이 이제 필지의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 클린턴 국무장관을 맞이하는 후진타오 주석. 자원 공급의 한계에 닥친 상황에서 두 강대국이 헤게모니 경쟁으로 나간다면 누가 이기느냐에 관계없이 인류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이 당시로서는 전향적인 자세로 중국의 진로를 열어준 후 10년이 지난 이제 클린턴 국무장관이 두 나라 관계의 새 단계에 앞장서게 되었다. 산업화 과정의 양쪽 끝에 있는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21세기 인류의 진로를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다. ⓒ로이터=뉴시스 |
국제 무대에서 중국의 위상 확대는 한반도 정세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중국은 북한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관계를 내세우지 않으면서 6자회담을 이끌어 왔고, 6자회담은 북·미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져 왔다. 그러나 이제 미국도 북한을 대하는 태도에서 중국의 입장을 전보다 더 많이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만을 앞세워 온 현 정권의 외교노선에는 시련이 닥칠 것이다.
당장의 외교 관계보다도 중국의 경제 발전이 가져올 더 중대한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이다. 진행 중인 중국의 경제 발전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굴복한 결과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을 '자본주의의 승리'라 할 수 있을까? 중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은 자본주의의 한계를 코앞에 들이대줄 것이다. 자본주의 방식의 산업화가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만 일어날 때는 그 근본적 모순이 감춰질 수 있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가 이에 동참해 인류의 절반 이상이 고도산업사회에서 살게 되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지금 인류의 에너지 소비량은 1인당 평균 약 2.1킬로와트(㎾)다. 국가별로는 방글라데시의 0.2킬로와트에서 미국의 11.2킬로와트까지 큰 차이가 있다. 개혁·개방이 시작되던 1980년경 중국은 0.64킬로와트였던 것이 지금 1.6킬로와트까지 올라와 있고, 2030년까지는 3킬로와트 이상으로 올라갈 전망이다. 13억 중국인들이 지금 우리가 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자가용을 몰고 다니고 토목공사를 벌이겠다는 것이다. 11억 인도인들은 또 그대로 있겠는가? 그러고도 과연 지구가 얼마나 오래 견뎌낼 것인가?
산업혁명 이래의 '개발' 추세가 억제되어야 한다는 당위는 1970년대 이래 갈수록 분명해져 왔다. 그러나 협력보다 경쟁을 내세우는 자본주의 논리가 이 당위를 외면해 왔다. 어떤 심각한 경고도 지금까지 결정적인 효과를 불러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중국이 소리 내 말하지 않고 있는 한 마디가 머지않아 무서운 충격을 일으킬 것이다. "우리도 너희랑 똑같이 놀아볼까?"
미국이 앞장서서 싹싹 빌게 되지 않겠나. 지금 잘 산다고 떵떵거리는 나라들이 모두 싹싹 빌게 되지 않겠나. 우리가 지금까지 놀아 온 것처럼 제발 너희들은 놀지 말아 달라고. 우리도 노는 방식을 바꿀 테니까 한번만 봐달라고.
그런 단계에서 중국이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 시점까지 키워갈 강대국의 기득권에 도취되어 미국의 행태를 뒤따르게 되지는 않을까? 인류의 파국을 얼마나 늦출 수 있을지가 거기에 걸려 있는 일인데, 누구도 예단할 수 없는 일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굴복처럼 보이는 중국의 개혁·개방 뒤에는 트로이의 목마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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