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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판타지', 당신은 무얼 즐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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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판타지', 당신은 무얼 즐겼나?

[화제의 책] 정희준의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

니그로리그 최고 스타였던 재키 로빈슨(1919~1972)이 1947년 4월 15일 브루클린 다저스(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타석을 밟은 일은 '센세이션'이라기보다는 '쇼크'였다. 물론 미국 백인 사회에 말이다.

그는 20세기 메이저리그 첫 흑인선수였다(야구 역사가 일부는 19세기 프로비던스 그레이스에서 한 경기를 뛴 윌리엄 에드워드 화이트를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선수로 본다). 그는 다저스 구단의 상업적 목표와 성적주의라는 기회를 등에 업고 짐 크로 법(흑인은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없고 흑인을 위한 니그로리그에서만 뛰도록 규정한 제도)을 가장 먼저 깨뜨렸다. 말콤 엑스, 마틴 루터 킹 목사 이전에 재키 로빈슨이 있었던 셈이다.

그는 놀라운 성적을 남기고 미국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전 구단 영구 결번의 영예를 안은 명예의 전당 멤버가 됐다. 그의 등장은 미국의 인종차별 역사를, 그의 퇴장은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인종차별이 종식됐음을 알리는 상징이 됐다.

스포츠는 그 사회와 분리해서 설명할 수 없다. 세르비아의 축구클럽 레드스타 베오그라드의 서포터였던 '울트라 배드 보이스'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전위부대로 발전했다. 옛 유고연방 특유의 인종갈등이 지역 축구클럽 간 경쟁으로 표면화되던 배경이 있었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외환위기로 모기업이 바뀌기 전까지 80년대 해태 타이거즈는 광주의 눈물과 한을 상징하는 팀이었다. <프레시안>에서 '정희준의 어퍼컷'을 연재하는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가 쓴 새 책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개마고원 펴냄)는 스포츠를 테마로 한국의 사회·문화사를 관통했다.

한국의 스포츠, 한국을 투영하다

이 책은 스포츠 소비시대가 본격 도래한 80년대 해태 타이거즈를 당시 호남인들의 '한국판 디아스포라'를 상징하는 팀으로 정의한다. '한국판 유태인', 곧 호남인들은 5.18광주민주화운동 2주기를 코앞에 둔 5월 15일과 16일 "경기장을 전경으로 꽉 채우고" 프로야구 첫 홈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정부는 "결국 5.18에 대한 부담 때문에 이후 몇 년간 5.18을 전후해서 KBO는 광주에서의 경기 스케줄을 잡지 않았다."

때로 한국 스포츠는 수십 년 전까지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한국식 '독재정치'를 고스란히 투영하는 장치가 됐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 만들어진 '박대통령배아시아축구대회'가 대표적이다. 책은 이 대회명을 두고 "죽지도 않고 멀쩡히 살아 있는 지도자의 이름을 붙여 국제대회를 개최하는 일은 후진국 중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회기간 내내 TV는 저녁 시간마다 "조국의 영광 안고 온 세계에 내닫는" 한국 선수들을 칭송하며 "이겨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금 젊은 세대가 들으면 마치 군가인양 이해할 '이기자 대한건아'는 이렇게 탄생했다.

▲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정희준 지음, 개마고원 펴냄) ⓒ프레시안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한국 스포츠의 정치선전 도구화는 일제 강압시기와 맞물린다. 일제는 "집단주의는 물론이고 군사주의까지 주입시키기 위해" 온 학교에 체조를 보급했다. 별의별 이름의 체조를 온 국민이 정해진 시간마다 실시하던 코미디 같은 일이 일제 통치기간 내내, 나아가 독립 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한국의 학생들은 때때로 '연병장'과 같은 학교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열 맞춰'서 졸음을 이겨내며 들어야만 한다.

독재 정권이 일본 가라테를 태권도로 바꿔 전국민에게 퍼뜨린 것 또한 정치적 목적과 무관하지 않았다. 책은 태권도를 두고 "자주국방을 위한 강군양성에 기여할 뿐 아니라 예의범절 길러주지, 명령에 복종케 하지, 도장 드나들 때마다 태극기를 향해 경례를 하며 국가관도 길러주는 등 이만한 다목적 국가장치는 드물었다"고 설명한다.

한국 스포츠가 투영한 또 하나의 특징은 한국 특유의 민족주의 정서다. 따지고 보면 프로축구가 연고지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일정부분 기인한다. 한국인들은 축구에서 '내 팀'을 인지하기 전에 '대~한민국'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이다.

민족적 열망이 가장 강력하게, 또한 '괴상하게' 폭발한 대표적 사례로 책은 88서울올림픽과 2002한일월드컵을 든다. 두 대회는 정치적 목적, 재벌의 이익 등 각종 이해관계와 맞물리며 성공적으로, 또한 누군가의 피눈물을 머금고 치러졌다.

88서울올림픽은 대통령의 지시 하나로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뀐 대표적 사례다. 그리고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는 '강한 민족'의 열망을 폭발시킨 기폭제가 됐다.

하지만 이면에는 도시빈민의 눈물이 서려 있었다. 건설 재벌이 올림픽 특수를 마음껏 누리면서 "개발국가·토건국가로서의 정체성이 본격화"한 반면 5공의 '도시미관' 정책에 따른 86년 4월부터 88년 2월까지의 강제철거로 14명이 사망했다. 무리한 올림픽 유치로 70여만 명이 거리로 쫓겨났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용산의 비극은 올림픽 유치를 전후하며 본격적으로 그 근골이 만들어졌다.

월드컵 개최 역시 한 정치인의 뚝심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케이스다. 월드컵 개최 하나로 당시 무소속의원이던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은 일약 대권후보로까지 거론됐다.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은 기적적인 '4강 신화'를 이뤘지만 동시에 광기도 보였다. 책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 위세에 눌려 몇몇 사람들끼리 소곤대다 끝났지만, 사실 우리가 목격한 '전국민의 붉은악마화'는 섬뜩하기도 했다. 전체주의 냄새가 강했고, 때로 국수적이기까지 했다. 그런 모습을 이어령은 이렇게 꼬집었다. '닫힌 우리'의 모습이었다고. 외국 언론으로부터는 "월드컵에 월드는 없고 한국만 있었다"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한일월드컵은 한국에서 스포츠가 얼마나 강한 민족주의 분출구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또한 스포츠와 정치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가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해주기도 했다. 지난 2002년 6월 29일, 터키와 월드컵 3-4위전을 마친 한국 선수들이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을 헹가래치고 있다. ⓒ연합

스포츠의 긍정적 '이중성'

한국 사회의 대표적 판타지였던 스포츠는 이처럼 숱한 부작용을 낳았다. 때로는 한국 사회의 치부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 특유의 이중성 역시 쉽게 엿볼 수 있다. 스포츠의 부작용이 폭발적으로 드러날수록 새로운 희망이 움텄고 새로운 세계관이 유입됐다.

올림픽 개최는 한편으로 90년대 노태우 정권의 북방외교를 본격화한 계기가 됐다. 한국은 올림픽을 전후해 32개 공산국가와 본격 교류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소련의 발레단을 보며 공산국가에 뿔 달린 괴물만 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한국 축구 특유의 민족주의 정서가 있었기에 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렸고 이는 남북 해빙모드를 여는 사건이 됐다. 이 대회에서 아버지와 상봉한 이회택 감독의 모습은 이후 남북 이산가족 상봉으로 이어졌으며 남북단일팀 구성으로 발전했다.

70년대와 80년대를 주름잡던 '헝그리' 권투는 국민소득 향상과 함께 사라져갔다. 권투의 쇠락과 함께 3D업종 기피현상이 사회에 대두됐다. 소비문화가 넘치면서 골프가 탁구를 밀어내고 '대중 스포츠(정치권 등 일부만의 주장이지만)'로 떠올랐다. 월드컵 개최는 2002년 동계올림픽의 '오노 사건' 등과 맞물리며 한국인들이 미국을 새로 보는 계기가 됐다. 연인원 2000만 명이 참가한 그 '괴이한' 거리응원의 에너지는 훗날 거리에 사람들이 본격 나서게 되는 결정적 원동력으로 승화했다. 데모가 사람들의 일상에 가깝게 다가선 계기가 됐던 셈이다. 우리가 무조건 스포츠를 배격할 수 없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저자는 한국 스포츠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며 한국 스포츠가 '상업주의와 민족주의'라는 두 날개로 날았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한국 스포츠의 미래는 상업주의와 민족주의의 '판타지'를 버리고, 동시에 '인간의 얼굴'을 회복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스포츠의 이중성을 넘기 위해 어쩌면 우리는 스포츠가 만들어내는 환상을 걷어내야 할지 모른다. 스포츠를 생활 안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바로보기', 곧 우리에게는 '새롭게 보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결국 하고자 했던 다음의 말도 이를 반영한다.

"여타 대중문화에 비해 스포츠에서는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바라보기가 드물었다. 사실 '분석'의 대상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워낙 오랜 세월 '한국인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데 이용된 텃밭이어서인지, 비판적 접근은 더더욱 용납되지 않았다. 10년 전의 박세리나 지금의 김연아 같은 이들이 바로 그런 존재이다. 사고가 배제된 맹신이 지속되다보니 국민들은 감각이 마비된 채 열광에 빠지는 일이 반복됐고, '왜?'라는 질문은 잊었다. 스포츠에 열광하면 할수록 우리는 '판타지의 세계'로 빠져 들어간 것이다.

…감동적이면서도 분노케 하고, 좌절을 주다가도 미칠 듯한 열광을 선사하며, 가슴 뿌듯하면서도 서글픈, 그게 바로 우리가 함께 했던 스포츠다. 영욕의 역사이기에 더 우리 것 같고, 그래서 애착이 가고, 또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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