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2009년은? 국민연금기금이 보다 안정적 운용으로 돌아섰을까? 아니다. 오히려 작년보다 더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 코스피지수가 1100선 이하로 내려갈 경우 무조건 주식을 매입해야 하는 '외통수'에 국민연금기금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어제(21일) 주가가 1103으로 내려가 1100선을 위협하고 있다. 과연 주가가 더 떨어질 경우 국민연금기금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2009년에도 주식투자는 확대된다!
작년 12월 29일로 돌아가보자. 이날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위원장, 보건복지부장관)는 올해 국민연금기금운용계획안을 수정의결했다. 처음에 설정했던 계획에 비해 주식투자 비중은 낮게, 채권투자 비중은 높게 조정돼, 국내주식은 20.3%에서 17.0%로 낮아지고, 국내채권 비중은 60.4%에서 69.3%로 늘어났다.
<표 1> 2009년 기금운용계획 수정
▲ - 허용범위: 기금운용위원회가 정한 목표 비중을 기준으로 연금공단이 집행할 수 있는 범위. - 자료: 보건복지가족부, "2009년도 국민연금기금운용계획변경(안)" (2008. 12. 29) 재구성. |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올해 주식투자 비중을 줄였다고 발표한 수치는 작년 6월에 미리 확정해 놓았던 '계획안'을 근거로 한 것이다. 기금운용위원회는 작년에 국내주식 투자 비중이 17%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이를 근거로 2009년에 주식 비중을 20.3%까지 늘리는 계획을 정해 놓았다. 작년에 국내주식 투자는 애초 계획대로 실행되었다. 하지만 주가 폭락으로 시가평가액이 급감하면서 주식자산이 전체 기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로 줄어들어 버렸다.
따라서 올해 국내주식 투자 계획은 작년 연말 12%를 기준으로 바라봐야 한다. 수정계획의 핵심은 국내 주식 비중을 작년 연말 12%에서 올해 17%로 5%포인트 증가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기금운용 집행조직인 연금공단이 시장상황에 따라 비중을 조정할 수 있는 자산운용 허용범위 ±5%를 감안하면 실제 투자 비중은 12~22%가 된다. 연금공단은 올해 주식투자를 작년 연말에 비해 0~10%포인트 늘려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그러면 연금공단은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얼마를 더 기금을 투입해야 할까? 논의의 단순화를 위해 주가 변화가 없다고 가정하면, 현행 12% 주식 비중을 유지하기 위해 연금공단은 약 5조원을 투입해야 한다. 동일한 비중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2009년 말 국민연금기금의 전체 규모가 증가하므로 추가 투자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기금운용위원회가 정한 목표 비중 17%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은 약 16조원이다. 연금공단이 자신에게 허용된 상한선인 22%까지 국내 주식 비중을 늘리고 싶다면 약 30조원을 더 투자할 것이다.
<표 2> 2009년 국내주식 비중별 추가 투자금액
▲ - 조건: 주가가 2008년 12월 기준(1,100선)으로 변화가 없다는 가정. - 자료: 보건복지가족부, "2009년도 국민연금기금운용계획변경(안)" 2008. 12. 29) 재구성. |
연금공단, 주식을 팔고 싶어도 팔 수 없어
그런데 실제 올해 국민연금기금의 국내 주식투자 금액은 매우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주식 비중이 시가평가액인 까닭에 주가 변동에 따라 여러 상황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가능한 시나리오를 정리하면 다음 세 가지이다.
<표 3> 2009년 국민연금기금 주식투자 예상 시나리오
▲ - 주가 기준은 2008년 12월 기준(1,100선) |
첫째, 주가가 현 상태를 유지할 경우. 연금공단은 애초 계획대로 목표비중 17%까지 도달하기 위해 주식을 매입할 것이다. 작년 27조원(12%)의 주식 자산에 추가로 16조원이 추가되면 올해 말 주식자산액이 43조원(17%)으로 는다.
둘째, 주가가 상승할 경우. 국민연금기금의 주식자산 평가액이 상향되므로 더 적은 금액을 투자해도 17%에 도달될 수 있다. 이 경우 연금공단은 주식시장이 밝다는 것을 이유로 준비금액을 모두 사용하거나 더 투입해 주식 비중을 17~22%까지 늘려 나갈 가능성이 높다.
셋째,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 주식 비중이 자동으로 12% 미만으로 낮아지기 때문에 연금공단은 주식을 무조건 더 사야 하는 외통수에 걸리게 된다. 예를 들어, 주가가 1100선에서 1000선으로 약 10% 하락하면 주식평가액이 2.7조원 줄어들 것이고, 전체 기금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도 1%포인트 낮아져 11%가 된다. 그러면 연금공단은 2.7조원을 추가 투입하여 주식 비중 12%를 채워야한다. 만약 주가가 800선으로 하락하면 연금공단은 1100선 방어를 위해 8조원 이상을 주식시장에 쏟아야 한다.
외통수 강행 배경: MB정부의 주식투자 확대 고집
올해 경제위기가 실물경제로 번지면서 국내외 경제 환경이 매우 불안정하다. 외국투자자,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주식시장 전망을 비관적으로 예상해 모두 빠져나가도 국민연금기금은 홀로 주가를 떠받치며 남을 것이다. 그만큼 국민연금기금의 자산 손실은 더 커진다.
이러한 우려는 과도한 것일까? 올해 초 국내 10대 증권사들이 밝힌 올해 주가 전망 범위를 평균하면 888~1476이다. 대부분 900선 하락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런데 국민연금기금은 주가가 1100선 이하면 무조건 주식을 더 매입해야하도록 스스로를 외통수로 밀어 넣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자산운용에서 시장상황을 감안하여 매수, 매도를 판단해야 하는 것은 기본 원칙이다. 그런데 유독 국내 최대 공적 투자기관인 국민연금기금만이 일정한 주가 이하에선 무조건 주식을 더 사야 한다. 도대체 이토록 무리한 외통수가 강행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이명박 정부의 두 가지 고집이 영향을 미쳤다.
첫째, 이명박 정부는 작년 주식시장 손실로 호되게 홍역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식투자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 국내주식 비중을 작년 목표 보다 낮게 설정해선 안 된다는 고집이다. 올해 주식투자 비중은 낮아진 주가 상황을 감안하여 12%를 준거로 수립되는 것이 옳은 길이다. 그런데 작년에 달성하지 못한 17%가 올해 목표로 등장했다.
둘째, 올해 일정 수준 이하로 주가가 하락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고집도 작용했다. 국민연금기금의 주식비중 하한선을 현재 비중인 12%로 배수진을 친 것은 올해 주가가 1100선 이하로 내려가는 것을 막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작년에도 확인했듯이, 이 경우 다른 투자자들은 국민연금기금의 주가 방어를 활용해 자신의 위험을 회피하는 이익을 취할 것이다. 특히 해외 투자자가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고집인가? 지금까지 국민연금에 대한 사회적 불신의 뿌리는 정부의 부당한 기금운용 개입에서 시작되었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는 공공자금이라는 명목으로 국민연금기금을 함부로 사용했었다. 이제 이명박 정부는 주가 방어에 국민연금기금을 동원하는 조짐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주가 3000을 선전하며 스스로 펀드투자자로서 나선 이명박 대통령으로선 당연한 일일지 모르나 대다수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노후 보루가 무너지는 일이다.
▲ 증권사 객장 풍경. ⓒ연합뉴스 |
국민연금기금 주식투자 목표 비중 낮추어야
이제 국민연금기금의 어처구니없는 올해 주식투자 계획은 재수정돼야 한다. 국민의 소중한 연금보험료로 모여진 국민연금기금이 이렇게 방치될 수는 없다. 다음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조속히 올해 주식투자 목표 비중을 하향 재수정해야 한다. 근래 주가가 1100선 이상에서 머무르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우선 주식의 목표 비중을 12~15% 범위 내로 수정해 투자 하한선을 7~10%로 낮추어야 한다. 최소한 국민연금기금을 '외통수'에서만은 구출해야 한다.
둘째, 이번 기회에 고위험 고수익 전략을 연기금에 적용하려는 기존의 방침을 백지화하고, 대신 안정적 운용전략을 기조로 삼아야 한다. 현재 정부는 국민연금기금의 중기(2010~2014) 자산배분안을 마련하고 있다. 작년 연금공단 이사장이 주식투자 비중을 40%까지 늘리겠다고 공언한 내용도 사실은 이명박 정부가 작년에 마련한 중기(2009~2013) 자산배분안에 의거한 것이었다. 작년 이후 경제위기는 국민연금기금에게 안정적 자산운용원칙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채권 중심의 운용전략을 밑거름으로 삼으며 점차 서민임대주택, 요양시설, 생태환경 인프라 등 공공적 사회기반시설 투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 연금가입자는 외국과 달리 공적연기금을 싫어한다. 이유 있는 분노이다. 그래서 국민연금기금을 자꾸만 떠나려 하고, 이 틈을 이용해 정부와 시장 세력은 국민연금기금을 민간위탁하려 하고(현재 관련법안 국회 계류 중), 주식시장 부양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국민연금기금의 의사결정권을 민주화하고, 외통수에 처한 국민연금기금을 구할 자는 연금가입자뿐이다. 어디 연금주권운동을 기대할 수는 없을까?
* <프레시안> 경제칼럼 '밥&돈'을 통해 국민연금 등 사회공공성 의제를 꾸준히 제기해왔던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이 '오건호 칼럼'을 시작한다. 오건호 실장은 공공부문, 국가재정, 사회복지 등 '공공경제' 문제에 대해 글을 연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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