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쌍용차 인수해줬으면 좋겠다"
삼성그룹의 자동차산업 투자를 바라는 목소리는 지난해 말부터 슬슬 나돌았다. 자동차업계가 경기침체를 견디지 못하고 휴업조치에 들어가는 등 어려움이 가시화됐기 때문이다.
급기야 지난 9일 상하이차가 쌍용차 법정관리를 신청하기에 이르자 기다렸다는 듯한 모양새의 발언이 터져나왔다. 쌍용차 살리기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 14일 아주대 특강에서 "돈 많은 삼성이 쌍용차를 인수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해 수면 아래에 머물렀던 소문을 공론화했다. 이날 김 지사는 "이건희 전 회장이 차도 좋아하고 돈도 있으니 이럴 때 (쌍용차를) 맡아서 성공시키면 안 좋겠나"는 말까지 했다. 또 <MBN>은 "삼성만 나서준다면 그런 좋은 그림이 어디 있겠나"는 청와대 고위관계자 발언이 있었다는 보도를 내 여론의 관심을 키웠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삼성의 자동차산업 재진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현금유동성이 국내에서 가장 풍부한 삼성그룹이 쌍용차 지분을 매입하고 연달아 르노삼성과 GM대우까지 인수, '한국계 기업'으로 되찾아온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아직 르노삼성 지분 19.9%를 보유하고 있다. 이 시나리오가 이뤄진다면 국내 자동차시장은 단숨에 현대기아차그룹과 삼성차의 양자구도로 재편될 수 있으며 삼성차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쌍용차)과 소형차(GM대우), 중형차(GM대우, 르노삼성), 대형차(르노삼성, 쌍용차)에 이르는 풀-라인을 보유하게 돼 처음부터 경쟁력을 갖고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
더군다나 자동차산업이 이미 기계산업에서 전자산업으로 변모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삼성전자·삼성SDI 등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갖춘 삼성그룹으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으며 삼성생명·삼성증권 등 제2금융권의 경쟁력도 삼성차가 초반 경쟁력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전망도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실제 삼성SDI는 지난해 6월 세계적 부품업체인 보쉬와 손잡고 하이브리드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업체를 만들었다.
"삼성, 자동차산업 진출 다시 욕심낼 이유 있다"
이런 가설의 현실화를 뒷받침하는 금융권의 리포트도 나왔다. 최대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20일 리포트를 통해 "삼성그룹이 IMF 당시 자동차산업에 진출했다 실패했지만 다시 욕심을 낼 만한 이유는 있다"고 지적했다.
최 연구원은 근거로 △삼성이 들어와서 2강 체제가 구축되면 독과점에 따른 산업경쟁력 약화를 막을 수 있고 △국내 자동차산업이 흔들리고 있어 여론이 힘을 받쳐주며 △지역경제와 정치권 분위기도 우호적인데다 △삼성의 진입장벽도 상대적으로 낮고 △삼성그룹 차원에서도 새 성장동력을 찾아야 할 때라는 점을 들었다.
▲지난 13일 오전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협력업체 간담회에서 쌍용자동차 박영태 상무를 비롯한 업체 관계자들과 정부측 관계자,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해 지경위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
삼성 "소문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 못 느껴"
하지만 이런 주장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 지적이 더 힘을 얻는다. 지금처럼 경기 침체가 극심한 상황에 삼성이라고 새 사업에 뛰어들 여력이 어디 있느냐는 말이다.
실제 삼성전자의 경우 주력사업인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 분야에서 험난한 한 해를 보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기존 사업을 꾸려나가기에도 바쁜 와중에 새 사업으로 눈 돌릴 여력이 없다는 얘기다.
반도체사업의 경우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 경쟁업체 중 유일하게 흑자를 냈지만 올해는 험난하다. 일부 생산량 조절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마저 나오고 있다. 수요처인 PC, 백색가전 등에서 대규모 감산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아직 정확한 규모의 반도체 설비투자 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역시 수년 간 대만, 일본 패널업체 등과 대규모 설비투자 경쟁을 벌여왔던 LCD의 경우 차기 설비인 8-2라인 투자가 이미 지연된 마당이다. 올해 세계 경제가 침체의 바닥을 탈출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한 과감한 투자를 약속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지난해 12월 10일 열린 '2008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국제컨퍼런스'에서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입사 이래 이런 어려움은 처음이다"라고 얘기했다. 삼성전자는 자타공인 '국내 최강'이지만 경기침체의 어려움을 비껴가지는 못한다. ⓒ뉴시스 |
정치권 희망과 달리 기존 완성차업체 주인이 삼성그룹에 자동차를 떼 줄 리가 만무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GM대우는 매각 가능성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앞으로 자동차산업에서 소형차량 비중이 점차 커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소형차에 경쟁력을 가진 데다 신흥시장을 탄탄히 다져놓은 GM대우를 GM이 버릴 리가 없다는 얘기다.
삼성그룹 내부 사정 역시 새 투자를 논할 만큼 녹록치 않다. 최근 인사개편을 거치면서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한 데다 경기침체 여파로 구조조정도 고려하는 마당이라 자동차산업 진출을 논하는 것 자체가 뜬금없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더군다나 삼성그룹의 전통적 투자원칙도 자동차산업 재진출과 상관없다는 점도 자동차산업 진출 가능성을 '소설'로 만든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삼성그룹은 '실패했던 사업에는 재진출하지 않는다'는 내부 원칙을 갖고 있다. 자동차산업에 다시 뛰어들 리가 없다"고 단언했다.
강윤흠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외부에서 단순히 최근 자동차업계 상황을 끼워 맞춰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것 같다"며 "아직 경기침체가 초입인지 바닥인지도 모르는 판이라 지금은 떨어낼 것은 떨어내야 하는 시기이지 새 투자를 물색할 때가 아니며 삼성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한화그룹의 사례를 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도 자동차 산업 진출설에 대해 "입장이라고 내놓을 만한 얘기가 없다.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못 느낀다"며 "지금 (새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여력도 안 되고 입장도 아니다. 새사업 진출이라는 게 얼마나 많은 투자와 사전 계획을 마련해야 하는 건데…"라며 진출설을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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