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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 첫 무효 판결…충격에 휩싸인 은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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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 첫 무효 판결…충격에 휩싸인 은행들

비판 여론에 손실 부담까지…중소기업 소송 늘어날 듯

법원이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 가입에 따른 환손실을 본 모나미, 디에스엘시디가 제기한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30일 받아들였다.

앞으로 유사한 피해를 본 중소기업의 집단적 대응이 강화될 전망이다. 그만큼 시중은행의 부담은 더 커지게 생겼다. 키코를 판매한 국내 은행 대부분이 단순히 상품을 사들여 중소기업에 소개해 준, 일종의 '금융상품 소매상'역할을 했기 때문에 손실 무효분을 책임져야하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이동명 수석부장판사)는 이날 모나미와 디에스엘시디가 SC제일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옵션계약 효력정지가처분신청에 대해 "본안 판결 선고시까지 모나미 및 디에스엘시디와 SC제일은행 사이의 키코계약 중 해지 의사를 송달한 올해 11월 3일 이후 구간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11월 3일 이후 두 회사가 은행과 맺은 키코계약은 무효라는 얘기다.

중소기업 법적 대응 강화될 듯

근거로 재판부는 은행과 기업의 계약이 신의칙에 반한다는 점과 적합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들었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 두 기업이 키코로 입은 손실에 대해 "계약의 기초가 된 객관적 사정이 계약 후 현저히 변경되고 이를 당사자들이 예견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당사자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생긴 것"이라며 "계약의 구속력을 인정하는 것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면 장래의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키코 계약에서 환율이 급등하면 모나미 등에 무제한의 손실이 생기고 이는 회사의 거래 목적이나 재무구조, 영업상황, 위험관리 능력 등에 비춰 적합하지 않으므로 은행이 손실을 제한할 수 있는 다른 거래 조건을 모색해 권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아 적합성의 원칙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키코 계약 자체가 은행의 사기라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재판부가 사실상 중소기업의 손을 어느 정도 들어줌에 따라 단체소송 등 은행을 상대로 한 중소기업의 대응은 보다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지난달 97개 중소기업이 단체로 "키코 상품 자체가 불공정 거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며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 본안 소송 판결이 대기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국제통상실 관계자는 "재판 결과가 나온 후 공대위에 추가 가입 여부를 문의하는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며 "그 동안 '갑'이었던 은행을 상대로 한 소송에 반신반의하던 기업들이 (승소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재판부에서 '손해배상 청구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미 재판부에서 은행의 잘못을 인정했다는 것"이라며 "이번 사태가 은행의 공적 역할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환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와 소송을 위임받은 4개 법무법인(대륙, 로고스, 안세, 프라임)이 지난달 3일 오후 2시30분경 97개 기업의 소장을 서울중앙지방법원(서초동)에 제출했다(사진제공 : 중기중앙회). ⓒ프레시안

은행, 안 그래도 따가운 여론인데…

은행에 이번 판결은 당연히 '재앙'이다. 금융위기가 불거지며 거세졌던 비판 여론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은행은 키코 사태를 떠나 금융위기에 사회적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여론을 감내해야 했다. 당장 정부의 정책 금리 움직임과 상관없이 대출금리를 때맞춰 내리지 않아 가계와 기업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목소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가계대출의 경우 지표가 되는 CD금리가 좀처럼 꿈쩍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있지만 이 역시 은행의 '공적' 기능 회피에 대한 면죄부가 되지는 못했다.

이번 판결로 사실상 그 동안 제기된 비판 여론에 근거가 마련됐다. '은행의 공적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는 중소기업의 목소리가 곧바로 거세지는 게 근거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경제위기가 심화하니 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은 해줄 생각도 않으면서 대기업 대출은 늘렸다. 정부가 아무리 돈을 풀면 뭐하나"며 은행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미 키코 사태로 은행과 중소기업의 소위 말하는 '갑-을 관계'가 여론에 직접 오르내렸고 키코 판매 실적을 늘리기 위해 은행이 이를 이용했다는 사실도 언론을 통해 드러난 마당이다. 은행으로서는 이번 기회에 관계 주도권 회복을 노리는 기업체의 공세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무엇보다 키코 계약 무효화가 현실화할 경우, 은행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손실액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당장 하나은행은 태산LCD와의 키코계약 여파로 손실을 떠안으며 대손충당금 2507억 원을 쌓은 결과 8년 만에 3분기 적자를 냈다. 당시 하나은행이 키코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루머가 나돌 정도로 여파는 컸다.

중소기업의 소송이 무서운 이유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키코 피해 사례를 신고한 170여개 기업의 총 피해액은 원-달러 환율 1300원 기준으로 약 1조8000억 원이며 앞으로 은행에 갚아야 할 돈은 최대 1조2000여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개별 업체가 매달 약 1550억 원을 은행에 갚아야 한다는 말이다.

연간으로 본다면 부담은 더 커진다. 유진투자증권의 내년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1분기 만기가 돌아오는 키코 계약은 전체 판매액의 22.8%에 달하는 18억 달러다. 연간 만기도래액수는 44억 달러로 올해 30억 달러보다 더 크다.

이들 손실액이 만에 하나 전부 무효 판결을 받는다면 이 부담은 고스란히 판매사인 은행에 돌아오게 된다. 외국의 설계사에서 자금 회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한다면 중소기업의 부담은 곧 은행의 부담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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