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하고도 엉뚱한 질문 하나. 4년 후에 치러질 총선과 대선의 승자는 누가 될까? 답은 한나라당이다. 단, 지금과 같은 정치지형이 계속 유지될 경우에 말이다. 언뜻 이런 예측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율이 참혹하리만큼 낮은 데다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맞은만큼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필패는 예정된 수순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차기 총선 및 대선에서 필승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감안하면 그같은 생각이 한낱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첫째, 이명박 정부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실정을 거듭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30%를 훌쩍 넘는다. 반면 제1야당인 민주당의 지지율은 한나라당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렇다할 반등의 기미조차 없다. 다른 정당들의 지지율이야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아무리 패악(悖惡)을 부린다 한들 많은 수의 유권자들이 다른 정당을 한나라당의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여전히 대한민국에는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한 한나라당에 표를 던지는 유권자들이 전체 유권자 가운데 30%내외는 족히 된다는 점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지난 97년과 2002년 대선과정과 결과를 복기해보면 금방 알 수 있겠지만,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이기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외부 환경(외환위기, 남북관계 경색 등)과 대내적 역량(DJ와 노무현이라는 걸출한 후보, 호남 및 충청이라는 확실한 지역적 지지기반, 진보개혁진영의 전폭적 지지 등)이 구비됐음에고 불구하고 이인제와 김대업이 없었다면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패배시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둘째, 경제위기도 그리 믿을 것은 못된다. 이번 경제위기가 미증유의 것이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고 선거는 아직 4년이나 남아있다. 선거 전에 경제가 회복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의미다. 97년 대선은 IMF구제금융이 결정된 직후에 치러진 터라 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이번 경제위기가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오히려 4년 후에 경제위기가 수그러들고 회복되는 국면이라면 여당에 유리하면 유리했지 불리할 것은 없다. 경제위기가 외부에서 기인했지만 이를 주체적 역량으로 극복했다는 식의 주장에 동의할 유권자들은 의외로 많을 것이다.
셋째, 여론지형도 한나라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촛불집회로 혼쭐이 난 한나라당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방송장악시도를 계속하고 있는데다 조중동 및 재벌들의 방송 겸업도 허용하려고 하고 있다. 만약 정부와 여당의 뜻대로 미디어 환경이 재편되면 가뜩이나 비대칭적인 여론지형이 더욱 정부.여당에 유리하게 형성될 것이다. 현재도 과점신문들이 미치고 있는 해악이 하늘을 찌를 지경인데 방송마저 이들의 손에 넘어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DJ-노무현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에도 없는 것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위에서 열거한 한나라당 필승론의 근거들은 지금과 같은 정치지형이 4년 후까지 온존하고 제 정당들이 한나라당의 실수에 기대 집권을 도모할 경우를 상정한 것에 불과하다. 만약 한나라당을 극복할 대안으로 유권자들에게 인정받는 정당이 출현한다면 사정은 이전과는 전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유권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정당이 출현해 기존의 정치지형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정당이 정치혐오증에 걸린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한국사회의 각 부면을 근본적으로 개혁할 프로그램을 갖추고 이를 실천할 의지를 지닌 정당이 바로 그런 정당이 아닐까 한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공과(功過)가 혼재하는 탓이다. 수구진영과는 다른 차원에서 만약 지난 10년을 실패로 규정한다면 이는 신자유주의를 발전적으로 극복할 국가발전모델이 부재한 데다 이의 추진을 담보할 정당이 변변치 않았던 때문이었다고 평가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MB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압승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걸었던 국민들의 기대와 열망이 좌절된 데 따른 퇴행적 반응 때문이었다.
새로운 정당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넘어서지 못한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희망의 구심점이 될 수 있고 한나라당을 대체할 대안정당으로 유권자들에게 각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MB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도 도리 없이 포획당한 신자유주의 발전모델을 발전적으로 지양할 수 있는 국가발전모델은 현실적으로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정도일 것이다.
물론 이른바 노르딕 모델이 흠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한국적 특수성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인류가 고안한 국가 발전모델 가운데 북유럽식 사민주의만큼 성장과 분배, 형평과 효율을 아우르면서 인간적 존엄을 보장하는 모델도 찾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유럽식 사민주의가 지니고 있는 단점이나 한국적 상황과의 적합성 등의 문제는 비교적 사소한 부분이다.
북유럽식 사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을 어떻게 구성할 지도 쉽지 않은 문제다. 현실 정치지형을 살펴보면 진보신당과 민주당 좌파, 여기에 시민사회진영까지 아우르는 사민주의 정당의 창당이 실현가능성이 가장 높다. 물론 진보신당과 민주당 좌파의 차이점이 생각보다 훨씬 클 수도 있을 것이고 시장에 대한 진보신당의 시선이 지나치게 차가울 수도 있을 것이며 시민사회 진영 내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사민주의 정당에 참여할 능력과 의지를 지닌 그룹이 거의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신당과 민주당 좌파, 시민사회 진영이 손을 잡고 사민주의 정당을 조속히 창당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막을 방법이 전혀 없고 이는 대한민국이 희망마저 사라진 동토의 왕국이 된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난마처럼 얽힌 현 정국에서 누군가가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사민주의 정당을 만들어 국민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은 다른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줄 수 있는 정당의 창당이 긴절하다. 당장 사민주의 정당 창당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 꿈과 희망을 조직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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