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에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택시들이 잘만 선다. 오히려 손님의 가격 흥정에 응하는 택시마저 있다. 손님이 평일보다 없는데 연료비는 뽑아야 하니 택시들도 애가 탄다. 손님과 기사의 권력이 한순간에 뒤바뀌는 때가 휴일의 끝자락이다.
많은 택시들이 여전히 장거리만 고집하는 이유, 법을 무시하고 합승을 요구하는 이유는 운전기사들이 먹고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제가 이처럼 어려워 졌는데도 택시는 너무 많고 연료비는 지나치게 올랐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는 '장거리를 뛰어야' 하고 자잘한 법은 다 무시하고 '밟아야' 한다.
그래서 택시 운전기사들이 들고 일어났다. 택시제도를 개혁하고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달라고 정치권에 요구했다. 정부 차원에서 과다공급 문제를 해소해 달라고 말했다.
몇몇 정치인이 이 문제를 담은 특별법안을 내놓았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1일 택시산업 구조조정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보이며 화답했다. 현실화할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
"신규 진입을 막아라"
지난 9월 10일. 한나라당 허태열 최고위원과 김기현 4정책조정위원장이 여의도 렉싱턴 호텔을 찾았다. 전국에서 모인 택시연합회·개인택시연합회 관계자들과 만남을 위해서다. 이들은 지난 총선에서 택시산업 관계자들의 집중 지지를 받았다. 이날 자리에서는 택시산업 특별법 제정 방안이 거론됐다.
이날 논의된 내용들이 1일 당정 협의안으로 발표됐다. 택시 공급을 줄여 기사의 생활안정을 도모하고 택시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차별화 지원에 나선다는 것이다. 허태열 한나라당 의원은 2일 곧바로 관련법을 발의했다.
내용을 뜯어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택시산업의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관행처럼 굳어진 양도·양수를 금지해 신규진입을 보다 어렵게 하자는 게 골자다. 또 지자체별로 차등 제한을 둔 택시 총량규제를 지키지 않는 곳에 불이익을 준다는 안도 나왔다.
▲29일 오후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전국택시노동자연합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
서울시에 따르면 11월말 현재 서울시내 하루 택시 운행량은 약 5만500대로 버스(7500대)의 6.8배에 달한다.
이마저도 중간에 쉬는 택시를 빼 실질 운송량보다는 작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전국자동차노조연맹 위성수 차장은 "실제 조사결과 서울시내 하루 운행량이 버스는 약 7746대며 택시는 회사택시와 개인택시를 합해 약 7만2000여 대로 집계됐다"고 말했다.
택시 공급이 왜 이처럼 많이 늘어났을까. 첫 번째 이유는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직장에서 퇴출된 사람들이 운전대를 잡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자체가 선거철마다 개인택시 사업 대기자를 풀겠다는 선심성 공약을 내놓으면서 공급이 확 늘어났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임성운 국장은 "과잉공급은 오래된 문제다. 개인택시 허가권을 가진 지자체장들이 선거철마다 택시사업 대기자를 상대로 허가를 내줬다. 정부의 총량제 규제가 먹혀들 리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1997년 서울시내 택시가 6만8000여 대였으니 근 10여 년 사이에 이런 이유들로 서울시내에만 약 4000여 대의 택시가 늘어난 셈이다. 반면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점차 택시 이용객수는 줄어들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1년 택시이용객수는 97년 12억3700여 만 명에서 지난 2004년에는 9억1000만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수요가 줄어드는 반면 공급은 지속적으로 늘어나니 자연 기사에게 돌아오는 몫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LPG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데…
경쟁과열에 더해 비용도 늘어났다. 연료비는 지난해와 비교하면 약 1.5배 정도로 올랐다.
LPG 수입업체는 이번 달에도 공급가격을 리터당 100원 가량 올려 올해에만 세 번째 인상을 단행했다. 국제유가가 하락하기 전에 결정된 LPG 선물가격이 이제야 현실화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휘발유가격이 리터당 1300원대로 떨어진 마당에도 LPG 값은 1130원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해 하루 평균 4만 원가량 하던 원료비가 지금은 5만 원을 훌쩍 넘는다.
연비로 보면 1리터 주유에 휘발유 차량은 12km 정도를 달리지만(중형차 기준) LPG 차량은 채 8km를 못 간다. 이미 LPG 차량 운전자가 더 손해를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임 국장은 "서울의 경우 사납금(회사택시 기사가 회사에 매일 지불해야 하는 돈)이 약 9만6000원 선이다. 돈을 벌든 못 벌든 무조건 내야 한다. 그런데 회사에서 LPG충전요금은 전액 지원하지 않는다. 보통 25리터 정도만 지원한다. 나머지는 운전자가 넣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LPG 25리터를 충전하는 데 대략 3만 원가량이 든다. 하루 12시간 일하는 기사의 경우 하루 보통 1만 원 이상을 자기 월급에서 추가로 기름 값으로 지출해야 한다. 이렇게 지불해도 기사가 돈을 많이만 벌 수 있다면 큰 타격은 없을 듯도 싶다. 과연 택시기사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돈을 벌까.
▲LPG값 인상, 공급 과다로 인해 길가에 줄지어 서 있는 택시는 주요 언론의 단골 보도메뉴 중 하나가 됐다. ⓒ뉴시스 |
야간에 법 위반해야 하루 5만 원 겨우 벌어
보통 회사택시 기사들은 한 달을 반으로 쪼개 절반은 낮 12시간, 절반은 야간 12시간 동안 근무한다. 기름 값, 밥값 등을 따져보면 낮에 일하는 동안에는 사실상 자기 돈을 보탠다. 밤에 일하는 동안 바짝 벌어야 낮조로 일하면서 생긴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 지난 1991년부터 택시를 몰았다는 강창성 씨(53)는 "낮조는 하루 1만 원 정도 적자다. 밤조로 뛰면 운 좋을 때 5만 원 정도를 벌 수 있다"고 말했다.
"하루 2교대로 26일 만근하면 보통 110~130만 원 정도를 번다. 그런데 야간조로 뛸 때 세우는 손님 아무나 다 태워서 가자는 데로만 가면 여기서 15만 원 정도는 더 빼야 한다. 야간에 장거리, 합승을 해야 이익이 많이 남는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야간에 '바짝 벌어야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게는 150만 원도 번다.
택시기사들도 손님 태우지 않을 때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그렇지만 사납금을 일정액 내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오전반은 매일 5000원에서 1만 원 정도 손해를 본다. 그걸 야간반, 그것도 밤 12시부터 2시 사이에 다 메워야 한다. 법을 지키라고 강요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이마저도 요즘 들어 더 힘들어졌다. 경기침체가 심각해지면서 손님이 예전보다 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강 씨는 "8월보다 한 달 수입이 20~30만 원 줄어들었다. 원래 택시는 하절기가 비수기고 10월부터 손님이 늘어나는데 지금은 점점 줄어든다. 이해가 안 갈 지경"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그래도 사정이 낫지 않을까. 경기침체 여파를 맞으면서 택시회사도 휘청거리고 있다고 강 씨는 말했다. 하루 수익금의 40% 가까이가 연료비로 쓰이는 데다 차량 부품 값도 25% 정도 올랐기 때문이다. 강 씨는 "회사에 가보면 마당에 그냥 놀고 있는 택시가 30~40대다. 기사들이 돈을 못 버니 다 그만두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자기 차량을 가진 개인택시 기사들은 사정이 낫지 않을까. 사납금 부담도 필요 없고 일하는 시간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차량을 구입하는 데 든 비용 때문에 더 고되다는 게 기사들의 증언이다. 특히 택시업계의 오랜 관행인 양도·양수로 인해 떠안은 빚이 만만치 않다.
한 택시기사는 "개인택시를 시작하려면 보통 8000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 이 중 번호판 값이 6500만 원이다. 이게 일종의 재산권이다보니 양도·양수 과정에서 이 정도 금액이 관례처럼 굳어졌다"고 밝혔다. 택시 사업권을 사는 데 드는 돈에다 각종 차량유지비 등을 포함하면 보통 개인택시 기사들은 돈을 벌어서 빚을 갚기도 빠듯하다.
정치권 "택시 어려움 줄이겠다…다만 대중교통화는 무리"
정치권에서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면을 고려할 때 택시기사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기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김기현 한나라당 4정책조정위원장은 "양도·양수 금지는 어디까지나 신규진입을 제한하는 것이라 구조조정 요구에 부족한 면이 있다는 말을 알고 있다. 물론 적극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면서도 "이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개인택시 전부를 보상할 경우 수조 원의 돈이 필요한데 이를 감당하기는 무리다. 현실적으로는 오랜 관행으로 굳어진 양도·양수 부문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구조조정과 함께 택시업계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도 초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택시업자들의 볼멘 소리만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택시산업 자체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김기현 한나라당 의원은 택시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대표적 정치인 중 하나다. 하지만 그들이 내놓은 특별법에도 택시업계 종사자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이끌기는 미흡하기 때문이다. ⓒ뉴시스 |
정부가 지원과 함께 마련한 '채찍'도 있다. 벌점제를 보다 강화하고 벌점이 누적될 경우 회사의 감차, 기사의 면허정지 등 강력한 법 시행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를 위해 택시운행정보가 고스란히 저장될 수 있는 전자식 운행정보기록기를 모든 택시에 의무화한다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같은 정부의 대책에도 택시업계는 여전히 불만이다. 정부의 지원책은 법적 구속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이상 효과적인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이양덕 차장은 "우리의 가장 큰 목표는 택시가 대중교통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것이다. 국민 수송율을 보면 택시가 44.4%로 버스에 필적한다. 대중교통으로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택시업계가 이토록 택시의 대중교통 수단 인정을 바라는 이유는 정부의 보조를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법'이 문제다. 법적으로 택시는 대중교통 수단의 정의를 만족하지 못한다.
'대중교통의육성및촉진을위한법률'을 보면 대중교통의 요건 중 하나가 노선여객이다. 정해진 구간을 다녀야 대중교통으로 인정받는다는 말이다.
택시는 이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택시업계의 희망은 법률안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어렵다. 지금 정치권에서 낸 특별법은 어디까지나 '부족함을 누구나 인정하는' 택시산업 구조조정을 위해 쓰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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