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예가 불황기 때 붉은색 립스틱이나 미니스커트가 인기를 끈다는 말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여가를 해소하려는 욕구가 커져 PC방이 인기를 끈다는 말도 있다. 맥주 판매량이 줄어들고 소주 판매가 는다는 말 또한 여기서 유래한다.
실제 최근 들어 특정 상품의 판매량은 불황을 무색케 할 정도로 예전보다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이들이 상종가를 치는 이유가 '불황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무리라는 게 현장에서 직접 뛰는 관계자들의 증언이었다. 불황을 이기는 상품은 자기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었다.
립스틱·소주…판매 '순풍'
붉은색 립스틱이 예전과 달리 인기를 끄는 것은 사실이다. 1일 아모레퍼시픽의 '라네즈' 브랜드 홍보대행사 비쥬컴에 따르면 라네즈의 립스틱 판매율은 올해 9월말을 기준으로 작년보다 44%가량 늘어났다.
대신 매년 10% 이상씩 성장세를 보인 립글로스 매출은 올해 들어 1~2%가량 늘어나는데 그쳤다. 라네즈의 인기상품인 '스노 크리스탈' 립스틱은 최근 트렌드와 달리 짙은 붉은색상이 주력이다.
이는 지난 몇년 간 지속된 입술화장품계 분위기를 확실히 벗어난 것이다. 지난 수년 간 일명 '쌩얼 화장(화장을 했지만 안 한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화장기법)'이 유행하면서 색이 진한 립스틱이나 아이섀도 사용빈도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였다.
비쥬컴 관계자는 "작년에 립글로스 1개당 립스틱이 1.6개 정도 팔렸다면 올해는 2.3개가 팔리고 있다. 일부 품절사태도 날 정도"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 소주판매량도 크게 늘었다. 올해 10월까지 진로 소주 판매량은 작년보다 7.2% 늘어난 4805만여 상자다. 매달 5000여 상자 가까이 팔리는 데다 연말 송년회 효과까지 더한다면 진로의 소주 판매량은 지난 2005년 5674만 상자를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불황에 소주 판매량이 늘어난다'는 속설이 딱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다시 붉은색 립스틱이 인기를 끌고 있다. ⓒ라네즈 제공 |
온라인게임 산업은 '제2 중흥기'
이처럼 특정 산업이 최근 불황기에도 성장세를 구가하자 이런 현상을 데이터화해 산업 전망에 이용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불황 산업의 대표격인 온라인게임 산업이 예다. 주진석 삼성증권 수석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경쟁이 심화하고 있지만 온라인게임 산업은 최근 경기침체와 소비위축에 따라 이용자수 증가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주 연구원에 따르면 취업률과 게임이용시간은 -0.7의 상관계수를 가진다. 취업률이 1 낮아지면 게임이용시간은 0.7 늘어난다는 뜻이다. 불경기로 취업률이 낮아지면 대신 온라인게임 수요는 늘어난다는 게 통계로 증명된 셈이다.
실제 최근 온라인게임 산업의 경우 '불투명하다'던 종전 전망을 비웃듯 새 성장시대를 열 것이라는 예상마저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좋다.
NC소프트는 최근 출시한 대작 <아이온>이 큰 인기를 끌면서 온라인게임 선두주자 위상을 굳히는 모습이다. <아이온>은 유료화 전환 이후에도 18만 명 이상이 게임을 이어가면서 순식간에 PC방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여기에다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으로는 세계 최고 판매량을 기록한 블리자드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도 새 확장팩을 내놓아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NHN의 한게임이 최근 내놓은 테트리스는 게임계에도 복고 열풍을 일으키며 오픈 한 달만에 누적 이용자수 320만 명을 넘어섰다.
분위기가 이처럼 좋아지는 상황에 더해 오는 3일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게임산업 진흥 중장기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 업계에는 오랜만에 화색이 감돌고 있다.
'불황특수'로 부르기는 무리
하지만 이들 히트 상품이 '불황이라서' 인기를 끈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각기 나름대로의 매력과 경쟁력을 갖춘데다 산업의 특성 자체가 '불황을 덜 타는' 성격을 지녔다는 점이 있어 불황기에도 성장세를 누린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립스틱이 당장 그렇다. 일단 특정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붉은색 립스틱을 내놓은 브랜드가 별로 없다. '불황기에는 짙은색 립스틱이 유행한다'는 속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신세계 백화점 관계자는 "올해 겨울 트렌드는 스모키 화장이라 이와 조화가 어려운 컬러인 붉은색 립스틱을 주력으로 하는 브랜드는 별로 없다"며 "판매하는 사람들도 '속설은 과장인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최근 립스틱 판매 호조는 어떻게 봐야 할까. 원래 화장품 산업이 꾸준히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었다는 점을 이유로 꼽아야 한다고 업계는 말한다. 신세계 백화점 측은 "국내 화장품 시장 자체가 연평균 30% 가까이 고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며 "화장품 업계가 상대적으로 불황을 덜타는 편"이라고 했다.
▲NC소프트가 야심차게 내놓은 MMORPG <아이온>. 이 게임은 유료화 시작에도 90% 가까운 이용자가 남아 업계에 화제를 뿌리고 있다. ⓒNC소프트 제공 |
오히려 진짜 이유는 겨울방학 특수와 맞물려 대작 출시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개발사가 내놓은 게임 자체가 예전보다 탄탄한 게임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꼽아야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불황타는' 불황 산업도 존재…"소비자 변화에 적응해야"
속설과는 정반대로 '불황을 겪고 있는' 불황 산업마저 존재한다. '불황기에 뜬다'던 속설과 정반대 현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복권이 대표적이다. '경기가 어려우면 복권 판매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속설과 달리 판매액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였다.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312회차(11월 22일)까지 복권 누적판매액은 약 2조 원. 연말까지 합산하더라도 2조2000억 원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복권 판매액은 지난 2003년 3조8242억 원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판매액이 줄어드는 추세다.
온라인게임과 함께 대표적 불황기 여가산업으로 꼽히는 영화계 분위기 역시 '불황효과'가 무색할 정도로 좋지 않다.
CJ CGV에 따르면 10월 CGV를 찾은 전국 관객 수는 약 888만 명이다. 지난해보다 6% 가량 증가했지만 전달보다는 8%가 넘게 줄어들었다. 올해 들어 총 누적관람객 수로 조사하면 1억2500여만 명으로 작년에 비해 650만 명, 재작년 보다는 1500여만 명이나 감소했다.
관객이 이처럼 줄어드는 가장 큰 까닭은 양질의 콘텐츠가 제대로 생산되지 않는 데 있다. 최근 영화계마저도 경기 불황 유탄을 맞아 제작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CGV는 새 개봉작을 거는 데 어려움을 겪자 아예 '앙코르 장르 영화제'를 개최, 인기 있었던 영화를 싼 가격에 재상영하는 이벤트를 최근 시작했다.
사례를 종합하면 불황 효과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게 보다 정확한 설명으로 보인다. 소비자의 취향 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 제품 자체가 얼마나 경쟁력을 갖고 있느냐, 그리고 경기변화에 얼마나 '둔감하냐'가 불경기 성패를 가르는 핵심요인이었던 셈이다. 이훈영 경희대 교수(경영학)는 "'불황마케팅'이 따로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기 변동에 따른 소비패턴 변화에 잘 적응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불황 산업'으로 창업 해보시겠다고요? 경기 불황기, 하루하루가 불안한 직장인이라면 자연스레 '나도 창업이나 해 볼까'하는 생각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창업의 성공률은 그만큼 낮아지기 마련이다. 결국 경기를 덜 타거나 불경기에 상대적으로 성공 확률이 높다는 업종의 창업을 고려하는 게 현명해 보인다. 대표적인 게 PC방과 만화책 대여점. 상대적으로 실패확률이 낮고 안정적인 이익을 낼 것으로 보기 십상이다. 그러나 실제 장사를 하는 업주들은 '쉽지 않다'고 손사레를 쳤다.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만화대여점을 운영하는 김영주 씨(42, 가명)는 "초기 투자비용과 월세 등을 다 따져보고 신중히 창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남편과 함께 1년 전부터 24시간 만화 대여점을 운영한다. 평수는 지하 60여평 규모. 초기 투자비용만 1억2000만 원 정도가 나갔다. 절반 이상이 만화책을 들여오는 데 쓰였다. 이 비용은 지속적으로 소요된다. 신간을 한 번 들여올 때마다 통상 10만 원 정도가 나간다. 여기에 월세, 전기세 등을 생각해야 한다. 특히 초기에는 손님이 거의 찾지 않아 홍보에도 큰 신경을 써야 한다. 김 씨는 과연 불황효과를 누리고 있을까? '아니다'는 게 김 씨의 말이다. 그는 "추석 이후에는 오히려 손님이 갑자기 줄어들었다. 단골 손님을 몇 명이라도 확보해야 일당 30만 원은 떨어진다. 각종 비용을 따지면 이 정도는 벌어야 유지가 가능한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PC방은 어떨까? PC방 역시 기기 업그레이드 비용이 만만치 않다. 요즘에는 가정에도 워낙 고성능 PC가 널리 보급됐기 때문에 PC 성능이 뒤쳐진다면 손님은 곧바로 발길을 돌리기 일쑤다. 대림역 부근에서 업체를 운영하는 최명호 씨(38, 가명)는 "PC 성능이 뒤쳐지면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매일 같이 오던 손님이 발길을 딱 끊는다. 컴퓨터 관리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PC방의 돈벌이 수단인 온라인게임 대부분은 유료화 돼 개발사에 지불해야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IPCA) 관계자는 "온라인게임 초창기 때만 해도 게임업체가 PC방에 큰 비용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모 인기 게임의 경우 개인이 시간당 66원을 지불하는 반면 PC방은 무조건 257원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비용문제가 점점 커지자 최근 IPCA는 국내 최대 온라인게임사인 NC소프트의 게임 대신 CJ인터넷의 <프리우스>를 대신 마케팅해주는 신경전에 본격 돌입했다. '박리다매'형 창업은 어떨까? 가격이 싸고 품질이 비교적 괜찮은 저가형 '1000원숍' 등이 최근 들어 큰 인기를 끄는 것은 사실이다. 저가형 생활용품점 유통사인 다이소 관계자는 "9월 이후 확실히 고객 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작년보다 30% 정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작정 이 업종을 창업 아이템으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저가쇼핑몰이 인기를 끈다는 소식에 이 분야 경쟁도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다이소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이 오른 데다 경쟁업체도 많이 늘어 이익률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했다. 회사보다 더 어려운 건 가맹점이다. 서울 모처에서 가맹점을 운영하는 이명희 씨(가명)는 "불황이라고 이런 가게를 내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우리에게 문의를 오는 사람도 몇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3년을 못 버티고 다 나간다"고 말했다. 일단 일손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들어간다. 작은 평수라 하더라도 재고를 쌓는 공간 활용까지 감안하면 최소 3명은 필요하다는 게 업주의 말이다. 그만큼 비용 부담은 늘어난다. 게다가 이 분야가 불황을 타고 뜨다보니 회사에서는 소형평수로는 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목 좋은 곳에 대형 매장을 열 자본금을 모으기란 쉽지 않다. 이 씨는 "목 좋은 곳만 장사가 잘 되지 가맹점 대부분은 어렵다. 함부로 창업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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