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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 어때요, 40년이면 이제 그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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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 어때요, 40년이면 이제 그만 됐어요"

살아 있는 전태일,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에게 붙는 칭호다. "노동자도 사람이다"를 외치며 산화한 전태일 열사의 뜻을 평생 온 몸으로 이어 온 이소선 여사가 올해 팔순을 맞았다.

사단법인 전태일기념사업회는 그의 팔순을 기념해 헌정 문집 <조선 질경이 이소선>을 발간한다. 여러 사람의 기억으로 재구성되는 이소선 여사의 치열한 삶은 깊은 감동과 함께 노동운동 또 우리의 삶에 큰 자극이 될 것이다.


<프레시안>과 전태일기념사업회는 이 책에 실린 글 가운데 9편을 골라 연재한다. 전태일기념사업회는 오는 12월 5일 오후 6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팔순 잔치 겸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1995년에 어머니와 독일에 갔었죠. 그 때 저는 책에서나 보던 전설의 그 인물 '이소선'을 만난다는 생각에 한껏 들떴어요. 근데 비행 중에 골초인 어머니가 비행기의 맨 뒷자리로 가서 담배를 계속 피우시는 거예요. 당황한 여성 승무원(독일인이었죠)이 어머니한테 금연이니 빨리 담배를 끄라고 영어로 계속 경고를 하는데도, 어머니는 아랑곳 않고 피던 담배를 끝까지 피우셨죠. "알았어, 알았어. 다 피면 내 자리로 갈게." 한국말로는 그렇게 중얼중얼하시면서 얼굴로는 영어라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짓고 의연한 태도로 듣는 척을 안 하니 이 승무원은 계속 흥분해서 어머니께 더 강력한 경고를 날렸죠. 그래도 어머니는 못 알아듣는 척 끝까지 다 피우고서야 자리로 돌아가셨어요.

그 모습을 보고 저는 많이 놀랐죠. 굉장히 고상하고 점잖은 어머니를 상상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내 예상을 단박에 뒤엎는 모습이었어도 오히려 그 모습이 더 좋았어요. 나중에 어머니께 그 때 얘기를 하니 어머니는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시면서도 "야, 내가 누구 말도 안 듣는 사람인데 지 말 듣고 담배를 끊겠냐, 나는 담배 못 끊어. 하루 종일 비행기 타고 가는데 어떻게 담배를 안 피고 가냐" 그러셨죠. 그래 대한민국에서 나랏말 안 듣기로는 첫손가락에 꼽히는 분인데 그 고집을 누가 당하겠나. 역시 그래서 이소선이구나 했어요.

생각보다 밝고, 생각보다 우아 떨지 않아서 어머니가 좋아졌는데, 알게 될수록 굉장히 사람을 아껴주셔서 그게 또 좋았어요. 그 연세의 어른들답지 않게 '사랑한다'는 말씀도 잘 하시고, 잘 안아 주시고 다정다감한 애정 표현도 잘 하시구요. 참 사랑스럽다 느껴요. 내가 남자라면 매력을 느낄 만한 여성이죠.

언젠가 농담처럼 어머니 첫사랑이 누구였어요 하고 물으니 펄쩍 뛰시면서 "어떤 글 쓰는 사람이 내 얘기를 책으로 쓰겠다면서 투쟁한 얘기는 안 물어보고 첫사랑 어쩌고 저쩌고 해서 내 그런 얘기 같으면 안 쓴다고 했다" 하셨죠. "원래 글쟁이들은 사랑 얘기를 제일 좋아해요."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솔직히 저도 어머니 투쟁한 얘기는 이제 더 안 듣고 싶어요. 전태일 엄마로 평생 투쟁만 하고 살아온 얘기는 이제 할 만큼 하셨잖아요.

그냥 누구 아내, 누구 엄마 말고, 여자 이소선 얘기가 듣고 싶어요. 그래도 어머니는 자신이 투쟁한 얘기, 태일이의 뜻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부끄럽지 않게 싸운 얘기들만 하고 싶어 하시잖아요.

저는 전태일의 어머니가 아닌 그냥 여자 이소선, 인간 이소선의 얘기를 글로 담고 싶었어요. 평생을 전태일의 엄마로만 살아오셨는데 이제 그 강박을 벗고 한 번쯤은 그냥 이소선이 되어보면 안될까. 여자로 살아온 삶, 피우지 못하고 시든 꿈, 가슴에 꼭꼭 싸매두고 한번 풀어보지도 못한 얘기들을 해 보면 안 될까 싶어서요.

근데 어머니는 굉장히 완강하셨죠. 어쩌면 전태일의 엄마 이소선이 아닌 그냥 이소선의 얘기는 영원히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어머니에게 태일이는 자식 태일이가 아니라 그냥 이소선 자신이니까….

어머니께 드릴 글 하나 써 달라는 얘기를 듣고 어제 밤, 1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를 다시 찾아 봤어요. 어머니 모습을 보려구요.

<민들레-한 많은 어버이의 삶>.

1998년 겨울에 시작된 유가협(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부모님들의 421일 농성을 기록한 영화 아시죠. 10년 전에 KBS에서 방영된 그 영화를 보다가 너무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났어요. 영화를 보고 난 후에 퉁퉁 부운 눈으로 여의도에 있는 유가협 농성장에 통닭을 싸들고 찾아갔던 일도요. 나처럼 울다가 옷가지를 들고 달려온 어느 아주머니와,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 왔다던 학생들도 있었죠.

10년 만에 다시 본 영화의 느낌은 우선, 반가웠어요. 낯익은 어머니, 아버지들의 10년 전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그 담엔 슬펐어요. 10년 전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어머니, 아버지들의 모습을 보니까.

그리고 눈물이 났어요. 이 분들의 아픔이란 게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 한들 잊혀지거나 해결될 수 있는 아픔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어머니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웃는 거 찍지마"라는 소리였어요. 웃다가도 "슬퍼야 하는데 웃어대서 어쩌냐"고 탄식을 하고, 어머니의 단짝 배은심 어머니는 "내가 한열이를 보고도 눈물이 안 나니 미친년이지…" 그러면서 또 웃으세요. 웃음이 죄가 되는 엄마들…하긴 어찌 안 그러겠나 싶어요.

시멘트덩이를 매단 채 바다에서 발견된 자식, 행방불명 됐다가 변사체로 발견된 자식, 몸에 총을 3발이나 맞고 목숨을 잃은 자식, 쓰레기장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된 자식, 물고문 당하다 죽은 자식, 스스로 목을 맨 자식, 제 몸에 불 지른 자식, 저마다 너무나 끔찍한 고통 속에 죽어간 자식들의 어미들인지라 웃는 자기의 모습을 스스로가 견딜 수 없으신 거겠죠.

영화 속에서 어머니가 어느 아버지의 아주 특별한 사연을 얘기하고 계셨어요. 강제징집을 피해 도망 다니던 스물 두 살짜리 아들을 온 친척을 총 동원해서 끌고 와 군에 보낸 사연이요. 그 아들이 군에 끌려가면서 "나는 군대 끌려가면 죽어요. 지금 못 보면 다신 나를 못 보는 거예요. 그래도 엄마 소원이라면 가서 죽어드릴께요." 그렇게 엄마를 원망하면서 갔는데, 정말로 군대 복무 중에 그 아들이 쓰레기장에서 불에 탄 채로 발견된 거요. 엄마는 그 길로 정신을 놓고 호수에 빠져 목숨을 잃었고, 아들과 아내를 잃고 유가협 활동을 하고 계신 그 아버지의 기막힌 사연을 얘기하면서 어머니가 탄식하셨어요.

"우린 지가 죽었든 누가 죽였든 죽인 걸 알잖아. 근데 의문사는 너무 불쌍해, 너무 불쌍해……."

▲ "사람들은 어머니한테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그 말이 어머니한테 굴레 같아요. 어머니가 평생을 가슴에 품고 있는 아들의 마지막 말처럼요." ⓒ프레시안

영화는 누가 어떻게 죽였는지 아직 진상규명이 안 된 의문사 유족들과, 의로운 죽음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명예회복 유족들 사이의 갈등까지 그대로 보여주대요. 결국 진상규명과 보상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다시 투쟁의 장으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그런 갈등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마음 아픈 일이었죠. 어쨌든 사람 사는 곳이면 셋만 모여도 의견 차이가 있고 갈등이 있게 마련이지만, 유가협의 부모님들만큼은 다툼 없는 청정지역으로 남아 주셨으면 하는 마음 때문에 더 안타까웠는지도 모르겠어요.

영화에서도 그런 모습이 그대로 보이지만, 제가 곁에서 지켜본 어머니는 갈등이 있을 때 이를 피하기보다는 부딪쳐서 해결하는 쪽에 가까우신 것 같아요. 보통 운동진영의 어머니들은 주로 집회와 투쟁하는 현장에서 모습을 볼 수 있잖아요. 행사장의 젤 앞에 앉아계시거나, 아니면 싸우고 계시거나 둘 중 하나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어머니들의 모습인데, 어머니는 좀 달랐어요.

어머니는 청계노조와 반평생을 함께 하셨죠. 그것도 뒤에서 기침하고 있는 어른이 아니라 조합원들과 함께 노동조합의 모든 투쟁을 함께 하면서요. 나는 운동권 어른들 중 집회나 행사 때 말고 실제 노동조합에서 함께 일상을 함께 하신 분을 잘 보지 못했어요. 보통 어른이라 하면 어느 누구에게도 욕먹지 않고, 듣기에 좋은 소리 해 주고, 적당한 체면치레로 대접받으며 품위 있게 사는 분들을 떠올리기 쉽죠.

그런데 어머니는 어른이라기보다는 활동가에 더 가까운 모습이에요. 꼭 좋은 소리만 하지도 않고,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어떨 땐 안 좋은 소리도 들어가면서도 할 말을 하시는 게. 아마 노동조합 투쟁을 통해 단련된 활동가여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좋아요. 살아 움직이는 그 생명력과 생기가 좋고, 배짱이 있어 좋고, 고상한 척 하지 않아서도 좋아요.

이제야 말이지만 어머니한테 고백할 얘기가 있어요. 독일 다녀오고 나서 처음 유가협 찾아가서 어머니들 뵜을 때 속으로 좀 놀랐어요. 어머니들이 계신 공간이 슬프고 우중충한 회색빛일거란 제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온통 경쾌한 웃음이 넘치고 있어서요. 순간 실망이랄까 배신감이랄까 그런 야릇한 맘이 스치는 거예요. 그리움과 회한이 가득한 손으로 자식들 사진이나 쓰다듬고 있을 줄로만 알았던 엄마들이, 그걸 자식 잃은 어미의 당위라고 생각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새로 산 옷의 디자인에 대해, 어제 새로 한 머리에 대해, 근처에 새로 생긴 식당의 음식 맛에 대해 즐거운 수다를 나누고 계신 거예요. 그런데 내 맘이 왜 이렇지? 엄마들의 밝음에 왜 내가 서운하지? 잠깐이지만 내가 느낀 서운함과 배신감이 미안해서 얼른 얼굴을 바꾸고 엄마들께 인사를 드렸죠.

문득 언젠가 봤던 TV프로가 생각났어요. 구구절절한 사연들로 자식을 해외 입양 보내야 했던 엄마들이 외국인으로 자란 친자식들을 만나는 프로그램이요. 몇 백 미터 앞에 있는 자식을 기다리고 섰는 엄마의 얼굴은 모두 초조했고 그 초조함에는 만 가지 아픔이 담겨있었죠. 전 국민이 보는 공중파 방송을 통해 자식 버린 어미임을 밝혀가면서 그 자리에 서 있는 엄마들의 맘은 오죽했을까. 어떤 엄마는 말했어요. 살다보면 웃을 일이 있는데, 나는 아들 그렇게 보내고 이날 평생토록 소리 내어 웃어본 일이 없다고. 모두 곤궁했던 시절,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장난으로 일어난 일이건만 그녀는 평생 그 죗값을 치르며 살아온 거죠.

그런데, 울면서 넋두리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유독 미용시술을 한 눈썹이 도드라지게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아니 자식 입양 보내고 웃지도 못했다면서 얼굴 가꾸려고 눈썹 문신을 다 했네, 마치 그 프로그램이 주는 온전한 감동을 그녀의 문신한 눈썹이 빼앗기라도 한양, 야박하게도 저는 그녀를 비난하고 있었어요.

눈썹 문신은 아주 흔한 일인데, 여러 명이 몇 달 동안 돈 모아서 미장원이나 찜질방에서 큰 맘 먹고 하는 간단한 일인데, 날마다 눈썹화장 하는 게 번거롭고 귀찮아서 하기도 하는 일인데, 화면에 잡힌 그녀의 눈썹도 아주 예전에 한 듯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는데…. 하루가 십년같이 고역인 일상에서 어느 한 날 큰 맘 먹고 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아는 사람이 딱한 그녀의 처지를 위안하듯 기분전환으로 해 주었을 수도 있는데, 저는 왜 그녀의 눈썹이 못마땅했던 것일까요. 마치 자식을 잃은 엄마들이 어제 한 머리와 오늘 산 새 옷에 대해 얘기 하는 걸 보고 배신감을 느꼈던 것처럼요.

물론 자꾸 볼수록 웃음 속에 가라앉아 있는 엄마들의 슬픔이 보였어요. 그렇게 모여 일상이 주는 소소한 얘기들을 나누면서 서로의 상처를 위무하고 있을 뿐, 슬픔이 '인'이 박힌 엄마들의 진짜 모습이요. 어떤 엄마는 우리 슬픔은 죽어야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죠. 파마가 아주 잘 나왔다고 추어주는 말에 함박웃음을 짓고, 새로 산 옷이 잘 어울린다며 샘을 내는 다른 엄마들에게 우쭐함을 보이는 엄마들. '자식의 죽음'이란 빼앗긴 날개옷 때문에 원치 않는 고통에 빠졌을 뿐, 평범한 일상이 주는 소소한 행복들에 즐거워하는 엄마들은, 천상 여자였죠. 투사도 뭣도 아니 그냥 여자들. 잠시나마 날개옷 입고 마실 다니던 '여자'이고 싶어, 미용실에 가서 파마를 하고, 고운 새 옷도 사 입어보지만, 다시 고통스런 '엄마'로 돌아와야 하는 게 그녀들의 현실이잖아요.

자식 보낸 엄마가 어떻게 눈썹 문신이나 하고 누워 있을까, 자식 잃은 엄마들이 어떻게 웃고 앉아 있을 수 있을까, 나처럼 덜 된 인간들의 야박한 비난은 아마 엄마들의 고통을 더 묵직하게 했을 거예요. 나 또한 '엄마' 아닌 '여자'로 살고 싶어 온전히 혼자인 프라하 여행을 계획하며 얼마나 들떴었는데, 나 홀로 여행을 못마땅해 하는 남편이 그렇게 야속했으면서 이 어리석고 간사한 마음이라니요.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고통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저도 힘든 일을 겪었어요. 태어나자마자 아이가 큰 수술을 해야 했죠. 아이의 상처가 내 잘못인 것만 같아 죄책감에 날마다 울었어요.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일상은 여전한 것이어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TV를 보며 웃기도 하고, 심지어 새 옷을 사 입기도 했어요. 아이 낳고 붓기가 안 빠진 얼굴 때문에 외출할 때면 화장도 더 열심히 했구요. 엄마가 되었어도 출산 전 '여자'였던 나를 여전히 잃고 싶지 않았어요. 누군가는 아이 수술을 앞두고 옷이나 사러 다닌 못된 엄마라며 나를 비난했을지도 모르죠. 엄마들을 처음 봤을 때의 나처럼요. 어머니의 눈썹을 보면 그 때 제 마음이 생각나서 죄스럽죠. 한 번도 말한 적은 없지만 저 혼자 그래요. 어머니 죄송해요 하고….

사람들은 어머니한테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그 말이 어머니한테 굴레 같아요. 어머니가 평생을 가슴에 품고 있는 아들의 마지막 말처럼요.

"내 생애 못 다 굴린 덩이를, 덩이들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우리에겐 전태일이 영웅이고 본받아야 할 위인이지만, 어머니한테는 참 나쁜 아들이겠죠. 엄마를 이렇게 아프게 하고, 다른 길로 한눈 팔 수도 없이 평생을 꼼짝 못하게 한 아들이요. 엄마 마음을 들판보다 더 허하게 만들고, 엄마 눈물도 사막처럼 다 말라버리게 하고, 엄마 가슴을 타들어간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지게 한 원망스런 아들요.

세상의 어떤 엄마가 바라겠어요. 아들이 죽어서 영웅이 되는 걸. 평범하게 입에 밥 들어가는 거 보고, 품 안에서 잠들고, 그렇게 자라는 모습만 볼 수 있어도 좋은 걸. 아니 못나도 좋으니 그저 곁에 두고 볼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는 게 어미의 마음인 걸. 세상의 모든 어미들은 이미 충분히 힘들고 넘치도록 슬픈데…. 운명이 참 가혹해요.

어머니가 언젠가 그러셨죠. 울지 않는다고. 태일이가 죽기 전에 엄마 손을 잡고 엄마 울지 말고 내 말 똑똑히 들으라고 그랬다고. 가끔 보는 저인지라 어머니 우는 모습을 못 본 것 같아요. 아들도 엄마 말 안 들었는데, 엄마만 아들 말 들을 필요 없잖아요.

그냥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그러세요. 힘들면 힘들다 하시고, 아프면 아프다고 하세요. 기분 나쁘면 나쁘다, 속상할 땐 속상하다 말하세요. 울면 어때요, 약한 모습 보이면 어때요, 40년이면 이제 그만 됐어요.

어머니가 어떤 모습이어도 저는 어머니가 좋아요. 아들 하나 잃은 대신 새로 얻은 수많은 어머니 자식들도 그럴 테고, 어머니를 아는 다른 모든 사람들도 아마 그럴 거예요. 전태일의 엄마다워서가 아니라 이소선이라는 사람 자체가 좋다구요.

태일이 엄마가 아니었어도 이소선은 아마 그렇게 살았을 거예요. 남의 아픔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옳지 않음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투쟁하는 모든 사람을 아껴주고, 참 많이 사랑해주는 그런 삶을요.

이 말을 꼭 해 드리고 싶어요. 참 좋은 당신이 있어 참 좋은 아들이 나올 수 있었다구요.

그래서 어머니가 좋다구요.

갑자기 추워진 날, 전태일이 맺어준 아름다운 인연, 선옥이가 드려요.

이선옥 선생은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감상문 공모에서 대상을 받았고, (사)전태일기념사업회 '사람세상'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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