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판매수준이 급감하는 이유는 경기 위축에 따른 소비둔화세 심화와 맞물려 금융경색으로 자동차 할부판매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돈줄이 막히자 금융권은 신용등급 최상위층이 아니면 아예 대출 자체를 꺼려하고 있다.
판매 부진으로 자동차업계 실적 악화가 심화하자 업계 노동자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일부 업계는 아예 휴업에 들어가는 등 노동시장도 크게 위축되고 있다.
현대·기아차 판매대수 30% 이상 감소할 듯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대자동차의 11월 내수 판매실적은 지난해보다 30%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에는 약 5만5000대 가량이 국내에서 팔렸다.
21일 서성문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11월 내수부문의 판매실적은 4만대를 밑돌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보다 30% 가량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수 부진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월 판매실적 기준으로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렸던 지난달에도 현대차의 내수실적은 1년 전보다 4.5% 줄어들었다. 기아자동차는 신차효과로 지난달 국내에서 3만3609대를 팔아 6년 만에 최고의 성적을 거뒀으나 이번 달 성적은 지난달의 70%선에도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수입차 판매 실적도 2005년 수준으로 떨어져
지난 수년 간 꾸준히 국내 시장점유율을 늘려온 수입차 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11월 16일 현재까지 월간 수입차 판매대수는 약 1200대 정도. 월말이 돼도 총판매대수는 3000대를 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3187대를 팔았던 지난 2005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수입차 판매 실적은 이미 지난달부터 부진이 심화됐다. 지난달 주요 수입차 업체 중 전월에 비해 판매량을 늘린 브랜드는 재규어(36대→42대)와 사브(13대→22대) 등 단 두 브랜드 밖에 없었다. 나머지 판매량은 모두 줄어들었다. 특히 국내에서 가장 많은 차량을 판매하는 수입브랜드인 혼다의 경우 지난달 판매량은 693대에 불과했다. 전달(1299대)에 비해 거의 절반으로 떨어진 수치다.
▲주요 수입차 브랜드의 10월 국내 판매실적. 내수침체로 판매량이 증가한 업체를 찾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프레시안 |
실물경기 위축·할부금융 부진이 원인
자동차 판매가 이처럼 줄어든 가장 큰 까닭은 물론 실물경기가 본격적으로 위축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21일 통계청이 발표한 3분기 가계수지동향 분석을 보면 소득 5분위별 가계 중 2~4분위의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이 모두 지난해보다 줄어들었다. 2분위 계층의 근로소득은 전년동기대비 0.2% 감소했으며 3, 4분위 사업소득은 각각 5.9%, 1.5% 감소했다.
소득이 줄어든 마당에 물가는 그간 많이 올라 가계는 소득수준을 가리지 않고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가계의 실질지출은 지난해보다 2.4% 줄었다. 실질구매력이 있는 계층이 이처럼 돈을 풀지 않으니 자동차 판매가 늘어날 리가 없다.
대출금을 착실히 갚을 능력이 있는 안정적인 소득원이 있는 사람도 자동차를 살 수 없도록 만드는 원인은 또 있다. 금융부문의 유동성 부족이 심화하면서 할부금융권 분위기도 냉랭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관계자는 "수입차의 경우 수요 둔화보다 금융위기 여파가 더 크다. 대출금리가 워낙 높은 상황이니 모 업체의 경우 대출금리 14.5%를 4.5%로 깎아주는 파격적인 조치를 내놨지만 팔리지가 않는다"며 "그나마 수요만의 위기라면 프로모션을 강화하면 되지만 지금은 마땅한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며 혀를 찼다.
실제 금융권이 돈줄을 바짝 죄면서 신용등급이 건실한 사람이라도 자동차 구입을 위한 대출을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전문직을 가지고 주택대출이 없으며 1억 원 이상 예금을 가진 정도의 사람이 신용 3등급 정도를 받는데, 캐피탈사에서는 이들에게도 대출을 꺼려한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은행의 BIS비율 보고가 예정된 다음 달에는 이와 같은 경색이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은행의 자산건전성 관리가 심화하면 당연히 리스, 캐피탈사도 더욱 돈줄을 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성문 연구위원은 "지금과 같은 신용경색이 계속 이어진다면 내년 전망도 불투명하다"고 했다.
▲현대자동차의 분기설 영업이익과 순이익 추세. 2분기까지만 해도 견조한 모습을 보이던 실적은 올해 3분기 갑자기 급락했다. ⓒ프레시안 |
파급효과 확산 추세…감산, 감원, 부품업체로 위기 전이
문제는 경기위축이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어 수출전선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동차업계는 재고분 해소를 위해 공장가동률을 줄이는 모습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10월 미국시장 판매량은 전달에 비해 15.9% 줄어든 2만820대다. 이 때문에 현대자동차는 현지 공장 가동률을 줄이기로 했다. 회사 관계자는 "올해 말까지 앨라배마 공장의 경우 매주 금요일을 쉬는 날로 정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기존 재고분이 많은 데다 앞으로도 상황이 어떻게 급변할지 불투명하기 때문에 탄력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비중이 특히나 높은 GM대우는 다음달 22일부터 8일 간 부평과 군산, 창원 등 모든 공장이 가동을 중단한다. GM대우의 10월 수출대수는 6만4791대로 지난해보다 11.5% 감소했다. 내년까지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봄까지도 일부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방안 역시 검토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GM대우의 경우 신입직원 채용 계획도 취소한 상태다. GM대우 노조 김윤복 교육선전실장은 "수출비중이 높은 브릭스 쪽, 특히 동유럽 경기침체가 심화해 생산량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간 공장에는 차종 생산라인 재설비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르노삼성은 본사 타격의 여파로 인력 감축도 고려 중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매니저급 이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는 방안이 내부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프랑스 본사 최근 이력 4000여명 감원을 결정했다.
장기간 심각한 수준의 실적부진이 지속된 쌍용자동차의 경우 생산라인 인력 재배치에 들어가 유휴인력 350여명을 대상으로 유급휴업에 돌입했다.
완성차업체가 입는 타격은 고스란히 부품업체로 전이되고 있다. 당장 GM대우 창원공장과 현대자동차 공장 2차 납품업체인 알루미늄 부품 제조사 대영금속이 지난 18일 돌아온 3억9400만 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됐다.
'GM대우도시'나 다름없는 인천과 군산은 연쇄부도를 막기 위해 시 차원에서 GM대우 살리기 운동에 들어갔다. 공공기관 업무용 차량을 전부 GM대우차로 바꾸고 공무원 대상 차량판매 홍보 등에도 나섰다.
인천의 경우 부품업체까지 포함해 GM대우 관련 노동자가 3만여 명에 달한다. GM대우 군산공장의 수출액은 군산시 전체 수출액의 70%다. GM대우 침체는 회사만의 침체로 끝나는 게 아니라 동종업계 노동자 가계의 위기로 전이되고 나아가 지자체 전체를 뒤흔드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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