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소득 상위 10%와 하위 10% 사이의 임금격차는 2003년 기준으로 5.6배에 달한다. 우리 사회의 임금소득 불균형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주장 마저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통계결과와 주장들은 사회 양극화 문제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주요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다.
사회 양극화 해소 혹은 축소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흔히 '최저임금제'를 든다. 최저임금제는 국가가 노사간의 임금결정과정에 개입해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그 이상의 임금을 지급할 것을 법률적으로 강제하는 제도다. 저임금 일소, 노동소득불평등 완화, 소득분배구조 개선 등이 목표다.
최저임금제는 그 취지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줄기차게 제기돼 왔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해 대폭 인상할 것을 요구했고, 재개는 지나친 최저임금 인상은 자칫 중소기업 대량부도사태를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반박해왔다.
이런 가운데 노동계는 최초로 현행 최저임금제도 개정법률안을 마련했다.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23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최저임금연대'와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이 '최저임금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한 것.
14일 오후 민주노총·한국노총·단병호 의원 공동주최로 이와 관련 입법공청회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개최했다. 이날 공청회 역시 노동계와 재개, 정부 대표간 격론이 벌어졌다.
***노동계, "최저임금 수준 OECD 국가 중 최하위"...근로자 임금 평균 50%는 되야**
주제발표에 나선 주진우 민주노총 비정규실장과 정길오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현행 최저임금제의 문제점과 개정법률안의 내용에 대해 발표했다.
주 실장은 ▲지나치게 낮은 최저임금 수준 ▲최저임금결정 과정의 비민주성과 비합리성을 최저임금제 관련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주 실장은 "한국의 소득불평등 수준은 매우 심각한 반면, 이를 완화하기 위해 마련된 최저임금 수준은 지나치게 낮다"며 "일각에서는 최저임금제도가 있으나 마나하다고 혹평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주 실장에 따르면, 기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OECD 국가 중 소득불평등 정도가 최고 수준이다. 일단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대표적 지수인 '지니계수'는 지난 1996년 0.298에서 2000년 0.358로 급등해 OECD 국가 중 멕시코(98년 0.494), 미국(2000, 0.368)에 이어 3번째로 높다.
또 임금소득 상위 10%와 하위 10%간의 임금격차를 보면, 2000년 4.9배, 2001년 5.2배, 2002년 5.5배, 2003년 5.6배로 빠른 속도로 증가해 OECD 국가 중 임금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4.3배)보다 크게 높다.
반면 최저임금수준은 최저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주 실장은 "현행 최저임금 수준은 임금노동자 평균소득에 비춰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또한 실제 최저생계비에도 턱없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통계청의 '도시근로자 3인가구 실태생계비' 대비 최저임금 추이를 보면, 1988년 27.8%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하다 2003년 4/4분기 현재 26.8% 수준에 불과하다. 국제비교에서도 평균임금대비 최저임금비율 기준(2002)으로 1일 8시간 근무자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26.9%에 머물렀다. 이는 OECD 국가 중 미국과 함께 최저 수준이다.
이에 따라 노동계가 마련한 최저임금제 개정법률안은 최저임금을 대폭 상향 조정하는 내용을 명문화 하고 있다. 즉 최저 임금결정 기준 항목에 "전체근로자 임금 평균의 50%이하가 되어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와관련 정길오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OECD는 저임금을 '상용직 중위임금의 2/3'로 정의하고 있다"며 "최저임금제가 취지에 맞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전체 근로자 임금 평균의 절반은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 정책본부장에 따르면, 저임금 수준으로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서유럽 국가는 상용직 중위임금의 1/2~2/3을, 미국, 캐나다, 일본 등은 사용직 중위임금의 40~50%로 정하고 있다.
***정부-재계,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 기업 도산-고용 불안 부를 것"**
한편 노동계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재개와 노동부의 반박도 만만치 않았다. 즉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은 고용 불안정 등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형정 노동부 임금정책과장은 "법안 취지에 최대한 부합하도록 법안을 만드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노동계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전체 노동시장에 미칠 여파에 대해 충분히 고려했는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박 과장에 따르면, 미국의 진보적 학자들도 최저임금의 인상이 저소득 층이나 전체 노동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급격한 인상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즉 사용자들의 지불능력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법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강제할 경우 공장문을 닫아버릴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박 과장은 "전체 근로자 임금 평균 50%선을 최저임금으로 정하면, 최저임금이 65%나 급상승하는 결과를 낳는다"며 "더구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법안에 최저임금의 하한선을 법으로 정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재계의 의견도 노동부와 동일했다. 김정태 경총 상무는 "최저임금인상이 마냥 긍정적이기만 한가"라며 "최저임금 사업장은 대부분 중소기업인 현실에서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은 기업 도산과 고용감소라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함께 김 상무는 최저임금 수준이 낮지 않다며 노동계와 상반된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그는 "최저임금을 산정할 때 고정상여금은 제외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근로자가 받는 임금수준은 노동계 주장처럼 근로자 임금 평균의 1/3선은 충분히 넘고 있다"며 "경제규모가 상이한 선진국과 최저임금액의 절대적 수치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1인당 국민소득 대비 최저임금은 75.7%로서 미국(39.8%), 일본(51.5%) 등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며, 영국 등 일부 유럽국가들을 제외하면, 다른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노동계-재계, "공익위원, 노사협의 통해 선임해야"**
이날 공청회에서 논란이 된 사항 중 하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익위원 선출에 대한 이견이었다.
주진우 실장은 "우리의 최저임금 결정 주체는 공익위원"이라며 "정부가 정책결정과정에 이익집단의 참여를 보장하는 위원회 가은데 최저임금위원회처럼 공익위원이 실질적인 결정권한을 갖는 경우는 극히 없다"고 지적했다. 즉 노·사 대표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공익위원이 막강한 결정력을 가졌다는 주장이다.
정길오 정책본부장도 "노사양 단체의 검토없이 노동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공익위원을 위촉하는 현 제도는 중립성이 훼손되고 노사당사자로부터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개정법률안에는 공익위원 선임 방식에서 노사단체의 추천과 투표방법에 의하여 공익위원을 선임하도록 되어 있다.
김정태 상무도 이에 대해서는 의견을 함께했다. 김 상무는 "노무현 정부 이후 친 노동인사들이 공익위원에 선임되면서 사용자들은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며 "공익위원의 중립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노·사 대표가 논의를 해 공익위원을 추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부는 이 의견에 반대를 명확히 했다. 박형정 과장은 "공익위원은 단순히 노사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노동계와 사용자가 대변하지 못하는 공익을 최저임금결정에 반영하는 것이 공익위원의 존재이유"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개정안처럼 공익위원을 노사협상을 통해 결정을 하면 공익위원 선출 과정이 자칫 정치화 될 수 있고, 존재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노동계-재개-노동부의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이날 입법공청회는 3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노동계의 의견을 담은 단병호의원 발의의 개정안과 현행 법안을 일부 수정한 정부측인 조정식 열린우리당 의원 발의 개정안이 함께 상정된다. 이날 입법공청회는 국회 환경노동상임위원회에서의 격론의 전초전이었다.
이날 공청회는 이재영 민주노동당 정책실장 사회로 노동계에서는 주진우 민주노총 비정규실장, 정길오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이, 재계에서는 김정태 경총 상무, 정부에서는 박형정 노동부 임금정책과장이 참석했다. 이밖에 시민사회 몫으로 김진 참여연대 실행위원이 함께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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