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역사교과서를 자신의 입맛대로 수정, 변경, 왜곡하려는 시도가 점입가경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자칭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의 요구에 이어 상공회의소, 국방부, 통일부, 한나라당 등은 한국의 근현대사 역사교과서가 '좌'편향적이라며 대폭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아니 수정 요구가 아니라 자신의 비뚤어진 세계관을 국민과 청소년들에게 강제하고 주입시키려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뉴라이트나 극우보수 성향 정치인들은 파행을 넘어 민주주의의 기본 룰을 파괴하는 폭거와 폭력적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지난 5월 뉴라이트의 대안교과서 출판기념회에 참석하여 "우리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평가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뉴라이트의 대안교과서 출판을 계기로 걱정을 덜게 되었다"는 최소한의 역사의식도 없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 좌편향이니, 북한의 지침에 근거하여 쓴 글이니, 북한 교과서를 베낀 것이니 하는 극우 이념적 선동을 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민생문제를 은폐하거나 희석시키려 하는 것이 저들 뉴라이트의 속내이다.
제주 4.3민중항쟁을 좌익의 폭동으로 몰아가고, 이승만의 부정부패와 분단고착화 행위를 부정하면서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고, 일제시대 사회주의세력의 항쟁과 투쟁의 기록을 삭제하고, 미국에 부정적인 역사서술을 변경시키려하는 것은 지난 한국 민주주의 투쟁의 성과와 역사를 송두리째 엎어버리고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역사 교과서를 다시 복원시키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의 근현대사 교과서는 좌편향이기는커녕 근본적으로는 여전히 과거의 보수적 우경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뉴라이트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중요한 서술지점에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서술을 회피하거나 우익의 논리를 수동적으로 따라가고 있다. 이것은 교과서가 다른 문서들과는 달리 상황과 정세와 정치논리에 따라 조변석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일정 이해할 수 있다. 과거 독재정권과 권력자들의 정치논리에 의해, 은폐되고 왜곡되고 억압되었던 역사의 기록들이 조금씩 진실의 자리를 찾아가면서 교과서에 반영되고 있지만 그 진실이 드러나고 기록되는 속도와 폭은 여전히 미흡하기만 하다. 그러나 뉴라이트의 선동과는 달리 뉴레프트는 진실의 힘을 믿기에 교과서의 문구 하나하나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한국사회가 87년 민중항쟁을 계기로 민주주의가 진전하고, 국민들의 역사의식, 시민의식, 권리의식이 향상해왔지만 과거 수십년의 독재정치, 극우정치, 냉전정치의 잔재들을 충분히 청산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이 독재와 냉전의 극우세력들은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막강한 경제적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들은 잠시 숙였던 머리를 다시 꼿꼿이 치켜들고 과거의 그 시절로 모든 것을 되돌리려 하고 있다. 교과서문제는 이들에게 이념의 전쟁터인 것이다.
교과서는 과연 좌편향인가?
그래서 과연 교과서의 내용이 좌편향인지, 아니면 여전히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역사서술에 이르지 못한 우편향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 단원명 : 대한민국의 수립
<두산동아> 252쪽은 "일본은 1950년대 초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주권을 회복하였다. (…)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은 오늘날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적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있다"고 서술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의 경제부흥이 아시아에서의 강력한 반공블럭 형성이라는 미국의 아시아 정책의 직접적인 산물이라는 객관적 사실이 누락되어 있다. 또한 전후 일본 민주화의 실패와 좌절이 아시아 주변국에게 지속적인 위협요인이 되고 있으며 그것이 현재의 과거사문제, 영토문제의 근본배경이라는 점을 외면하고, 경제력이라는 측면의 서술로 한정하고 있다.
<두산동아> 260쪽은 "조선 건국준비위원회에 가담하지 않은 민족주의세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지한다고 선언하고 미군 진주 직후에 한국민주당을 창당하였다"고 되어있는데, 이것은 엄밀히 표현하면 '민족주의세력'이라기보다는 '우파 혹은 보수적 인사'라고 서술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두산동아> 273쪽 "(4.3사건) 이에 대해 미군정 당국이 군정 경찰과 서북청년단을 추가로 파견함으로써 제주도민과 군정경찰 및 서북청년단 사이에는 대립과 갈등이 증폭되었다"고 서술되었다. 그러나 이 구절은 가장 합리적인 핵심인 서북청년단이라는 민간단체가 사실상 아무런 법률적 근거도 없이 법집행기구의 업무를 담당했고, 이 과정에서 대다수의 희생자들이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사적-공적 폭력에 의해 생명, 재산, 자유가 유린당했다는 점이 전혀 표현되어 있지 않다.
<법문사> 243쪽 "1940년대 충칭에 자리 잡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 한국독립당 등 우익계열의 독립운동단체들을 한국독립당으로 통합하여 그 지지 기반을 강화하였다"고 서술하였는데, 이것은 40년대 중국관내에서 임시정부 중심의 건국 준비활동에서 민족혁명당 계열의 좌익세력이 임정에 가담한 것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중앙교육진흥연구소>의 270쪽에 "김원봉을 임시정부에 참여시켜…"라는 구절을 "김원봉을 비롯한 사회주의계열의 인사들을 임시정부에 참여시켜…"로 표현하는 것이 올바른 것과 같은 맥락이다.
<법문사> 250쪽 "(이승만의 정읍선언) 이것은 한국민주당을 비롯한 우익세력의 지지를 받았다"고 서술하였는데 한민당과 함께 우익정당의 대표격이었던 한국독립당에서는 즉각 반대성명을 발표하였고, 많은 우파인사들도 반대 입장을 밝힌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법문사> 258쪽 "중국과 군사비밀협정을 맺어 5만여 명에 이르는 조선인 동북의용군을 인민군에 편입시켜 군사력을 강화시켰다." 이러한 서술은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전쟁 발발 이전 북한이 중국이나 소련과 군사협정을 맺었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중국내전에 참여했던 조선인 병사들이 북한으로 귀국하여 북한의 개전준비에 도움을 준 사실은 있지만 '비밀협정'이라는 정치적 공식행위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이것은 대한교과서의 261쪽에도 마찬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중앙교육진흥연구소> 275쪽에는 "3년간의 미군정의 실시로 남한에는 미국식의 민주정치제도, 개인주의적 사고방식, 자본주의 생활방식 등이 보급되기 시작했다"고 서술되었는데 이런 것들이 보급되었는지도 의문이며, 이런 평가의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고교국사를 비롯하여 많은 교과서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 등 '법통'이라는 표현이 많이 보이는데, 이것은 근대 국가의 건설과 헌정체제 수립에서 정통성의 기준은 인민주권, 법치주의 등 근대적 입헌체제의 원리를 잘 반영하고 있느냐의 문제이지 누가 더 적자이냐의 봉건적 논리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 개념이다.
* 중단원명 : 민주주의의 시련과 발전
<두산동아> 296쪽 "이러한 상황에서 박정희 정부는 남북대화를 제의하여 국제적 데탕트에 적응하는 한편, 1971년 12월에는 점증하는 소요사태와 학생운동에 대처하기 위하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정치적 통제를 강화하였다." 이러한 모호하며 핵심을 빗나가는 서술은 정직하게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남북대화를 제의하면서 국제적 데탕트에 적응하는 듯하였으나, 이내 시위와 학생운동에 대한 강경대처를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정치적 탄압의 강도를 높여나갔다"라는 서술로 바뀌어야 한다.
<대한교과서> 272쪽 "5.16은 헌정체제를 국민 스스로가 아닌 일부 군부세력이 무력으로 정지시킨 최초의 사례였고, 이는 훗날 신군부의 12.12, 5.18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서술에는 5.16의 핵심인 헌정체제를 무력으로 전복한 불법쿠데타의 역사적 법률적 문제에 대한 지적이 전무하다. 276쪽 5.18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서술에서도 핵심적 내용인 시민을 향한 발포 사실, 발포명령자의 문제, 시민군들이 계엄군의 발포로 사망한 사실에 대해서 정확하게 서술되어 있지 않다. 278쪽에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기소와 투옥사실을 서술하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면복권되어 풀려났다는 사실이 누락되어 있다. 이것은 청소년들에게 이들 두 전직 대통령이 자신의 죄에 대해 사법적 대가를 치른 것으로 오해하게 할 수 있다. 이들이 죄의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다.
<천재교육>의 294쪽 "한국 중앙정보부를 창설하여 중요한 정보를 정부에서 독점하면서 개인적인 정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구절에는 중앙정보부, 안기부로 이어지는 한국 정보기관의 폐해는 정보독점과 남용보다는 입법, 사법, 행정의 국기기관 위에 군림하는 초헌법적 기구로서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국민이 통제할 수 없는 무소불위의 기관이었다는 점이 전혀 표현되어 있지 않다. 300쪽 유신체제의 정치적 탄압사례에 김대중 가택연금, 3.1민주구국선언 등이 있는데, 여기에 반드시 인혁당 사건이 포함되어야 한다. 유신체제의 폭력성과 야만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의 하나가 인혁당 사건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최근 대법원의 재심에서도 무죄가 확인된 것처럼 '사법적 살인'임을 분명히 서술해야 한다.
<고교국사>의 127쪽 "직선제 개헌과 민주헌법제정을 요구하는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는 구절은 당시 시위의 요구가 헌법개정으로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노동, 경제 등 다방면에 걸쳐 민주적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분출되었다는 점에서 "직선제 개헌을 비롯하여 정치, 사회, 노동 등 다양한 방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는 서술로 바꾸는 것이 올바르다.
'통일정책과 평화통일의 과제' 단원에서 <두산동아>의 313쪽을 보면 북한의 경제사정이 악화되고 경제난이 지속되고 있는 것의 원인으로 북한 체제 내부의 비효율적 군비증강노선, 폐쇄적 체제 등을 들고 있는데, 이와 더불어 북한 경제난의 한 요인으로 미국의 대북 봉쇄정책으로 인한 세계경제로부터의 고립이라는 점도 서술되어야 한다.
이외에 '경제의 발전과 사회.문화의 변화'라는 단원에 대한 교과서의 서술에서는 해방이후 농지개혁에서부터 재벌의 성장과 폐해, 노동운동과 경제구조 등에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별도로 서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귀속재산 불하와 원조물자의 분배과정에서의 수많은 파행과 편법들, 삼성재벌의 사카린 밀수사건 등 재벌 특혜와 노골적인 정경유착의 역사, 경제성장 과정에서의 노동자들의 희생과 노동운동의 성장과정 등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서술되지 못한 지점들이 교과서 속에 적지 않게 보인다. 그러나 상공회의소의 교과서 수정의견서를 보면 자본주의과 기업에 대한 부정적 서술이 지나치게 많다고 비판하는데,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생각이 든다.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뉴라이트의 선동과 공세는 학문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연구와 그 사실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치열한 사색과 고민의 결과이기는커녕 자신들의 비뚤어진 이념적 안경으로 세상을 재단하려는 정치적 유치함의 결과이다.
짧은 단상으로 교과서의 보수적, 우편향적 서술들에 대해 언급했다. 진보진영에서 본격적인 검토가 이루어진다면 현행 교과서의 좌편향이 아니라 보수적 우편향적 서술과 문제점들이 더 많이 발견될 것이다. 평범한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상식적인 역사의식을 가진 시민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어떠한 편향들이 문제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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