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당혹스럽다. 고백컨대 우리 집엔 달러가 없다. 그 흔한 해외여행 한 번 다녀온 적이 없기 때문에 달러를 손에 쥐어본 일이 없다.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2달러짜리 지폐조차 만져본 일이 없다. 어떤 사람은 쓰다 남은 동전으로만 500달러를 갖고 있다는데 도대체 나는 뭐했을까 싶다. 시류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느낌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이 또한 당혹스럽다. 설령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해도 달러를 손에 쥐고 있을까 싶다. 100달러면 13만원, 500달러면 65만원이다. 결코 적지 않은 그 돈을 장롱 한 구석에 방치해놓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은데 한나라당 의원은 아니라고 한다. 집집마다 100달러, 500달러를 갖고 있는 건 기본인 것처럼 말한다. 세상물정에 너무 어둡다는 느낌에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않을 수가 없다.
치우자. 느낌은 일기장에나 쓰는 것이니까 그만 하자.
이건 어떨까? 행간이 너무 넓다. 그래서 도드라진다. 김영선 의원이나 양정례 의원의 제안은 하나의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달러가 부족하다는 사실, 외환 유동성 위기에 빠질지 모른다는 예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임의로 설정한 전제가 아니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는 임태희 의원이 확인했다. "외환 유동성의 확보가 가장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외환 보유고가 많아도 쓸 수 없는 것이면 소용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달라도 한참 다른 얘기다. 정부와 여당이 지금까지 해왔던 주장과는 궤를 달리 하는 말이다.
얼마 전까지 힘주어 말했다. 우리나라 외환 보유고가 이천 몇백억 달러라고, 외환 보유고 순위가 세계 몇위라고 힘주어 강조하면서 외환위기는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랬던 정부와 여당이 하루아침에 말을 바꿔버렸다.
그 '하루아침'에 급변상황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해 몇 차례 푼 것 외에 달러가 뭉텅이로 빠져나갔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환율 방어용으로 풀었다는 달러도 이천 몇백억 달러에 견주면 그리 큰 지출이 아니라고 정부 먼저 강조했었다.
애당초 정부의 설명과 여당의 주장이 잘못돼 있었다는 얘기다. 이천 몇백억 달러라는 숫자 타령이 결국은 위기를 축소키 위한 수사에 불과했었다는 얘기다. 장롱 속의 달러 동전까지 끌어모아야 할만큼 위기를 키웠다는 얘기다.
'외화통장 만들기 운동'이나 '제2의 금모으기 운동'을 읊조릴 계제가 아니다. 그렇게 힘주어 제안할 염치 또한 없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도대체 외환 실태가 어떤지 낱낱이 공개하는 게 먼저다. 이런 조치가 외환시장의 혼란을 키운다면 최소한 정부 정책이 어떻게, 얼마나 잘못됐었는지라도 고백해야 한다. 고백에서 그칠 게 아니라 실정의 책임을 묻는 조치를 내놔야 한다. 당신이 국가를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기 이전에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먼저 실토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먼저 다짐해야 한다.
하지만 말이 없다. 제2의 금모으기 운동을 제안 받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고백'은 뒤로 하고 '바람'만 읊조린다.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하긴 어렵다. 민간 차원에서 (먼저) 하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고 훈수 두듯 말한다.
영락없다. 숭례문 복원비 모금운동을 제안했던 경우와 너무나 흡사하다. 뭐가 문제인지 짚기 전에 먼저 틀어막고 보자는 심산이나, 원인제공자는 뒤로 숨기고 피해자에게 '도리'를 요구하는 행태나 모든 게 너무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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