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스·도로, 모두 추경으로 보조금 지급
강 장관은 9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 도로공사에 고속도로 통행료 동결에 따른 손실분을 보조금으로 메워주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하반기에도 고속도로 통행료 등 정부 통제가 가능한 중앙공공요금 15종 중 11종 가격을 동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데 따른 후속조치다.
강 장관은 또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 상반기에 동결된 이유는 참여정부가 지난 1월 당정협의를 통해 결정했기 때문이다. 새 정부도 합리적이라고 생각해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강 장관은 전날(8일) 예결위에서 약 1조250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을 집행해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에도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강 장관은 이어 "한국전력과 가스공사에 대한 보조금 지급은 정부의 약속이었다"며 "요금만 동결해 놓고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격 인상 요인이 많다"며 정부를 압박하던 김쌍수 한전 사장에 보조를 맞춰 강 장관이 이와 같은 입장을 일방적으로 밝히자 당장 일부 여당 의원부터 반발했다. 시장경제 논리와 맞지 않다는 이유다. 한나라당의 대표적 경제통 중 하나인 유승민 의원은 "민간 회사도 아닌 공사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 굉장히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며 강 장관에 날을 세웠다. 그는 이어 "유가가 다시 폭등하거나 원자재 가격이 다시 폭등하면 또 이런 정책을 쓸 것이냐. 이런 정책을 쓰면서도 이 정부가 시장경제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의원의 말을 액면 그대로 지지하기는 어렵다. 정부의 보조금 지급은 공기업보다는 민간 기업이 대상이 될 경우 공정경쟁 위배 등 더 문제가 커지기 때문이다. 당장 강 장관도 "국회 동의 없이 공기업에 돈을 주겠다고 먼저 말한 것은 급해서 그랬던 것이다. 죄송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기배반하는 강 장관…야당 "적반하장이자 후안무치"
하지만 강 장관이 발표한 요금동결 방침을 보며 많은 이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경영효율화'가 정부 공기업 정책의 절대가치인양 기업의 체질개선을 강조하던 경제팀에서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물가가 많이 오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의 전기요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아 현실화는 피할 수 없다는 주장도 다수 의견이다.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만큼 추가적 세금 투입으로 가격인상 압력을 줄이는 것을 검토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일 수 있다.
그런데 강만수 팀은 추가 세금 투입을 뒷받침할 증세를 계획하지 않았다. 거꾸로 사상 최대 규모의 감세를 택했다. 감세를 하면서도 정부 보조금을 늘린다는 계획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앞으로도 공공요금의 비효율성이 쉽게 개선되지 않을 문제임을 감안하면 감세로 인한 부담은 지금 당장 국가 재정을 압박하지 않는다 쳐도 앞으로 두고두고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일부에서 결국 이번 공공요금 동결 조치가 "공기업 민영화를 위한 명분 쌓기용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책의 앞뒤가 맞지 않으니 '이만큼 공기업의 방만함이 심각하다'는 것을 국민에게 알려 '민영화를 통한 효율화 외에는 길이 없다'는 주장을 이끌어내려 한다는 얘기다.
당장 야당 의원들이 '대국민 협박'이라며 발끈하고 나선 데서 강만수 경제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읽을 수 있다.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법에도 없는 추경안을 제출해 놓고 야당과 국민을 협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유선진당 류근찬 의원도 성명을 내고 "공기업 민원을 해결해주지 않으면 요금을 올리겠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적반하장이자 후안무치의 극치"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도 "강만수 경제팀의 조처는 결국 '대안은 가격 인상인데 물가 쪽에서 문제가 있으니 세금으로 메우는 것이다. 이게 안 되면 공기업 경영 합리화를 위해 민영화를 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논리를 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만수 팀은 여전히 '안정'과 '성장'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고환율 정책을 추진하다 뒤늦게 환시장 방어에 나선 강만수 팀에 왜 금융시장 노동자 95%가 불신을 보내는지, 아직도 '747'을 읊조리는 강 장관에 왜 시장이 '안정이냐 성장이냐'를 끊임없이 묻는지, '보조금이 과연 시장경제 하에서 맞는 얘기냐'고 왜 국회의원들이 자꾸만 되묻는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경제팀 수장으로서 강 장관이 시장과 정치권의 신뢰를 얻기 위한 방법은 결국 정책으로 진정성과 신뢰성을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는 앞으로 더욱 강 장관을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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