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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여름, 그 많던 강사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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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여름, 그 많던 강사들은 어디로 갔을까?

[기고] 마음대로 '처분'되는 비정규직 강사들

강사에겐 방학은 안팎으로 참 피곤한 계절이다. 강의하러 나가지 않는 나에 대한 배우자의 눈총이 편치 않고, 그렇다고 학교에 나가도 딱히 공부할 장소가 없어 이리 저리 공간을 찾아 전전긍긍해야 하고. 그러던 차에 사소한 사건이지만 사소하지 않은 사건이 하나 터졌다.

반년 전 부산대 인문대에서 강사에게 연구할 공간을 마련해주는 믿지 못할 일이 생겼다. 아~ 뭔가 힘들게 요구하기 전에 사전배려를 받아본 게 부모님 말고나 있었던가. 사실 강사들은 뭘 요구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지만, 아무리 힘들게 요구해도 뭣하나 제대로 관철되는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아주 수월하게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을 얻은 것이다. 이름하여 "강사 연구실"! 나는 흔한 아파트 선전에서 볼 수 있는 유토피아를 상상하며 그곳으로 입주(?)했다. 언젠가 이 공간이 금방 인문대 측에 의해 다른 공간으로 전용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강사 특유의 병리적 불안을 지우지 못한 채로.

협소하지만 그런대로 만족스런 그 공간이 열린 후 차츰 공간의 질서가 잡혀갔다. 그런데 어느날 학장의 이름으로 날벼락 같은 공고가 붙어 있었다. 그 대략적 내용인 즉슨, 강사의 강의 준비만을 위해 그 공간을 특화하겠다는 목적으로 늦게까지 남아 24시간 공개하는 것을 불허하며, 불허된 시간에 그 공간을 사용할 때, 학장의 승인 하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인문학 수업준비라는 것이 사적 논문연구와 무관한 것도 아니고, 6시 이후에는 무슨 이유로 수업준비를 못하게 하는 것일까? 다 알다시피 6시후를 제한하는 것은 완곡하게 공간 사용을 막자는 의도 아닌가? 그것도 사실 텅빈 공간과 책상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을 이렇게 사용하기 어렵게 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검증되지 않은 강사라는 모욕도 참아야하는 데다, 도덕성마저 의심 받아야 하는 것인가?

그 공고를 읽고 나서 겨우 사라졌던 불안감이 다시 병처럼 도졌다. 왜 다들 이렇게 일방적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일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기득권자와 약자의 관계를 여지없이 폭로하는 알레고리인 듯하다. 정말 강사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마음대로 '처분'해도 되는 존재인가? 그들의 개인사에도 '시간강사'라는 흔적이 남아 있었을 텐데.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났다. 그나마 사적 공간이 있어 연구에 전념하실 수 있는 여유로운 분들이 연구 공간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강사들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인가? 더군다나 필자를 더 슬프게 하는 건 이런 사건이 일어난 곳이 '인문대'라는 사실이다. 인문학이라는 게 사실 다른 어떤 학문보다 인간적인 삶과 자유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학문인데, 이런 곳에서 생짜배기 권력을 라이브로 경험할 줄이야. 인문학의 위기는 결국 인문학을 몸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인문학자들에게 있는 것이었다.

결국 이번 방학에는 강사연구실에 강사가 사라지고 있다. 이제 그들은 어디서 전전긍긍하고 있을까? 이글을 쓰는 나도 현재 강사연구실 밖이다. 너무 우울해서 나는 그 도저한 권력의 장에서 글을 쓸 수도 없고, 책을 읽을 수도 공부도 할 수 없다. 적어도 그곳은 내게 또 하나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어쩌면 사소하게 생각될지도 모르는 이 작은 사건에서도 필자는 비정규직의 실태를 본다. 심지어 평생을 살던 터전에서 쫓겨나는 철거민들의 실태마저 이 작은 권력 관계 안에 체현되어 있다. 시간강사들은 어디서든 불시에 해고되고 불시에 쫓겨난다. 결국 약자들은 이처럼 불시에 닥칠 권력의 '처분'만을 받을 수 권리밖에 없을까? 그나마 이런 '처분'에 저항하는 사람들(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이 투쟁을 1000일 넘게 끌고 가고 있다. 언제쯤 그 '대책 없이' 낙천적인 사람들의 손이 올라가게 될까.

이렇게 사전예고도 없이 공개적으로 비판을 쏟아 놓은 것에 대해 어쩌면 인문대 학장께서 파울을 당한 느낌이 드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같이 생활하고 강의하는 강사들의 견해조차 수렴치 않고, 이렇게 부당한 일을 일방적으로 당한 강사로서는 거의 퇴장수준에 걸맞는 백태클을 당한 느낌이다. 물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으니, 그 공간의 운영질서에도 문제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곳을 사용하는 강사들의 자율적인 질서에 맡겨두면 될 것이다. 강사들의 인격을 최소한이나마 생각한다면, 인문대는 이런 질서를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게다가 그 공간은 그분이 아끼고 사랑하던 제자가 공부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학장님은 제자가 공부하는 공간을 없애버린 기본도 안 되는 선생이 된 셈이다. 아마 기껏 배려했더니만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나는 감히 이렇게 혐의를 두고 싶다. '민간독재'의 수준을 보여주는 현정부의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양상을 학장께서 은근히 모방하고 계신 건 아니냐고. 왜, 폭력은 모방된다고 그러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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